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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리미 Oct 19. 2024

갑자기 베트남으로 떠난 나의 편(남편)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지난 화요일, 오랜만에 지방 출장을 가 있던 남편으로부터 느닷없는 연락이 왔다.

“나, 베트남으로 떠나야 할 것 같아!”


 나의 배우자는 기계를 다루는 회사의 관리직무를 맡고 있다. 지방 출장이 종종 있는 직무인데, 내가 어딘가가 아프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팀장님을 비롯한 팀원들이 많은 배려를 해준 덕분에 남편은 다른 팀원들보다는 출장을 비교적 적게 가는 편이었다.

 이번에 떠난 지방 출장은 팀의 많은 인원들이 함께 떠난 것이었는데, 회사의 깜짝 새 프로젝트가 급작스럽게 진행되어 이미 출장을 떠나온 많은 이들이 목요일 아침 비행기를 타고 함께 베트남에 가야 하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베트남 출장 명단에 남편의 이름이 처음에는 없었다고 한다. 팀장님께서 또다시 배려를 해주신 것이리라. 그러나 남편은 내 인생의 히어로이기도 하지만, 소속 팀의 에이스 역할 또한 도맡고 있다. 여러 팀원들이 조심스럽게 다가와서는 베트남 출장에 함께해 줄 수 없겠냐고, 배우자의 허락을 받아와 줄 수 없느냐고 간청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나에게 연락을 하게 된 것이었다.


 남편은 이번 출장이 본인의 업적 평가에 굉장히 큰 영향을 줄 것 같다며, 설렘 반(성과적으로) 걱정 반(나를 걱정하는)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나의 생각을 물어보았다. 글쎄, 이러한 부연설명을 듣고 나서 가지 말라고 훼방을 놓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일단은 남편을 진정을 시킨 후, 조금의 고민을 한 끝에, 베트남의 맛있는 간식을 많이 사 오는 조건으로 진행시키라고 명했다.

 사실은 나도 같은 비행기를 타고 쫄래쫄래 쫓아가고 싶었지만, 회사의 사활이 걸린 중대한 출장 건이라고 하니, 나의 존재가 짐이 될 수는 없었기에.. 더불어 야망가 남편의 큰 성과를 위하여 한 발 양보하기로 마음먹었다.




 지방 출장에서 돌아온 수요일 늦은 저녁, 부산스러운 짐 싸기가 시작되었다.

“돼지코 어디 있지? 아, 베트남 220V구나!”

“샤워필터 가져가야 하나? 필리핀에서는 어땠지?”

“기압 귀마개 찾았다! 어디 갔나 했네. “

“환전은 얼마를 해야 할까?”


 월요일에 떠났던 지방 출장지에서 수요일에 돌아왔으며, 목요일에 다시 베트남으로 떠나 그다음 주 월요일 새벽즈음 한국에 도착하는, 매우 빡빡한 일정이다. 그 말인즉슨, 일주일이나 남편과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비교적 안정적인 몸과 마음의 상태로 지내고 있는 나이지만, 남편은 나를 두고 국경선을 넘는 것에 대하여 꽤나 걱정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많이 단단해졌다고 자부하므로, 남편을 안심시키고자 나는 잘 지낼 것이라고 확언하며 남편을 꽉 안아주었다.


 남편은 두둑하게 용돈을 챙겨주며, 밥과 약을 잘 챙겨 먹으라는 당부와 함께, 짐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서너 시간 짧은 잠을 청한 뒤, 목요일 이른 새벽에 떠났다.




 오늘은 그 3박 4일 여정의 셋째 날인 토요일, 시곗바늘은 오후 4시를 향해 흘러간다.

 그동안 나는 흥미진진 맛집 탐방을 다녀오고, 동생 부부의 코스트코 나들이를 함께 하였으며, 본가에서 나의 사랑 반려견 소그미와 뒹굴거리는 시간도 보냈다. 남편이 짬을 내어 걸어오는 전화로 우리는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고 있다. 남편은 출장지에서의 일들은 매우 고되고, 좌충우돌 난리법석이라고 알려준다. 나는 밥도 약도 잘 챙겨 먹고 있다고, 기분의 변화나 큰 문제는 아직까지는 없다고 전한다.


 아니 사실 조금 솔직해지자면, 남편이 출국한 목요일 아침부터 분리불안 증상이 스멀스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처럼 너무 보고 싶고, 그립고, 아주 약간의 불안감을 감지했다. 아, 역시 나는 안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밀려오기 직전에,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떠올려보았다. 나에게는 엄마와, 아빠와, 동생 둘과, 소그미와, 친구들과,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님과 연구선생님, 그리고 필요시 복용할 수 있는 약까지, 언제나 나를 지켜주는 내 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힘들면 언제든지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들을 꼼꼼히 기억하며, 하루를 다시 시작하였다.




 그렇게 하루, 이틀, 어느덧 삼일째 되는 날의 절반 이상을 무사히 흘려보냈다. 다행히도 지금 이 순간까지는 교수님과 연구선생님, 그리고 필요시 약의 도움은 요청하지 않은 상태이다. 지금 이 순간, 나 스스로가 아주 대견하고 기특할 뿐이다. 나의 오랜 벗인 조울증과 다투지 않고 사이좋게 시소를 타는 방법을,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연마하고 터득하게 된 것이 아닐까?

 비록 누군가에게는 짧다면 짧은 일주일이라던가, 그저 남편이 출장을 떠났다는 사소하고 별 것 아닌 일상일 수도 있을 테지만, 나에게는 나의 괄목할 만한 성장을 꼭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나날들이었다. 이러다 언제 또 그랬냐는 듯 부지불식간에 조울증과의 사이가 나빠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상승과 정체, 약간의 하강, 그리고 다시 상승하는, 크게 바라보면 우상향 하는 곡선을 그려보리라 다짐하는 토요일의 한적한 오후 한가운데를 질러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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