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열 번째 직장과의 달콤한 안녕을 고하며
이전 글에서 약국 아르바이트 일을 계속하는 중이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하고 부당한 해고를 당하여, 그 뒤로 1년여 시간 동안 겨울잠을 자듯 고갈되었던 에너지를 다시 축적해 나갔다.
문득 물음표가 두둥실 떠올랐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은 과연 평온한 잠을 자고 있는 것일까? 그 어떤 동요나 떨림 없이 그저 단잠을 푹 자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았다. 희뿌연 미래에 대한 걱정과 주변 사람들의 성장 속도에 발맞추어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감에 쉽게 휩싸이곤 했다.
칠흑 같은 밤을 견디고 지나던 중... 자! 이제 겨울잠에서 깨어날 시간이 되었다. 여명이 강하게 밝아오고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보물을 찾기 위해 구인구직 어플을 붙들고 살던 어느 날, 찾았다, 열 번째 보물!
<공유오피스 관리직>
-하루 3시간
-주 5일 근무
-공휴일 휴무
-집에서 멀지 않고, 급여도 나쁘지 않음
면접을 보았고, 합격을 하였으며, 봄, 여름, 그리고 가을을 지나던 중이었다.
따스한 봄에는 새로운 일에 대한 불안감이 극심하여, 나는 진정으로 일을 해낼 수 없는 불능의 상태인가에 대한 숱한 고민을 하며 조금씩 더디게나마 성장하였다.
뜨거운 여름에는 어느 정도 적응을 하여 최선과 열심을 다하며, 일상적으로 잔잔하게 존재하는 적절한 불안감과 함께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그리고 여름보다 차가운 가을이 되었다. 최근 직장 내 업무환경 변화를 경험하며 제대로 시린 아픔을 겪게 되었다.
어느 순간 검은 그림자가 조금씩 드리워지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날들이 늘어갔다. 아마도 내 마음이 나에게 보내는 절실하고도 긴급한 신호였으리라. 이 상태로라면, 이 시그널을 무시한 채 점점 더 악화된다면, 또다시 응급실에... 그리고 정신건강의학과 보호병동에 또 입원을... 불길한 예감이 불쑥 나를 찾아왔다. 기나긴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번 고민은 정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고 길었다. 이대로 도망치게 되면 나는 또 어디를 향하여 걸어가야 하는 것일까? 그저 도망쳐도 되는 것인가? 인내하고 견뎌야, 감내해야 하는 성장통이지는 않을까? 정해진 답이 없는 문제를 푸는 듯한 난감한 나날들이었다.
숱한 고민 끝에 나는 결국 나를 보호하기 위해 체념하였고, 남편과의 끝없는 대화 끝에 이번 직장은 여기까지임을 받아들이기로 결정을 내렸다.
결정을 내린 다음날, 나의 정신건강의학과 외래 진료 날에 남편은 연차를 쓰고 나와 함께 병원에 다녀왔다. 나의 상황 설명을 다 들으시고, 이런 내 상태에 대한 남편의 궁금증 질문에 교수님은 이렇게 답변하셨다.
“이렇게 조울증이나 우울증 환자 같은 분들 특징이 사람들 눈치를 많이 봐요.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보나, 날 좋게 봐야 하는데, 부정적으로 보면 안 되는데... (그러다가 힘들어지는 것일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우리 환자들이 착한 거야. 자신감을 가져야 해요! “
그러고는 약을 소폭 증량하시고, 다음 외래 날짜를 앞당기셨다. 주관적으로 내 상태가 ‘좋음’과는 거리가 떨어져 있다고 스스로 느끼고 있었지만, 늘어난 알약 개수와 짧아진 외래일자 간격으로 객관적인 ‘좋지 않음’에 불이 켜진 것이었다. 솔직해지자면 물론 속상했지만, 한편으로는 교수님 말처럼 자신감을 가져볼 필요가 있겠구나 또 한 번 새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윤홍균 선생님의 <자존감 수업>이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고, 팀장님과의 퇴사 면담을 거쳐, 다음 근무자에게 할 인수인계 종료, 즉 마지막 근무일까지 일주일 정도의 시간을 앞두고 있다. 이 괴로움 가득한 곳에서 탈출할 예정이라는 사실이 짜릿하면서도, 다시 내 눈앞에 펼쳐질 망망대해를 헤엄쳐 나아가야 할 앞 날이 막막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33살의 나이에 열 번째 퇴사라니.. 그렇지만 정말 멋지지 아니한가! 다시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함으로 중무장해야 할 시간이다. 완전히 고꾸라지기 전에 미리,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의 선택을 한 것이다. 앞으로의 힘찬 도약과 새로운 활약을 기대하며 소리 높여 외쳐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칠전팔기 재도전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