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와 학위는 무관하다
백독을 하면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고? 천만의 말씀! 역시 직접 겪어보지 않고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된다. 아마도 천독(千讀)은 넘었으리라. 주역(周易)이라는 경전은 해설을 제외하면 450 문장에 불과하니 가능한 일이었겠다 싶다. 그렇더라도, 저절로 암기가 될 만큼 읽었어도 뜻이 통하지 않아 진저리를 치고 있던 어느 날, 선잠 끝에 꿈을 꾸었다.
낭떠러지를 따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협로 위.
한 무리 수도승들이 있고, 나는 그 행렬을 따라 걷고 있다.
문득 어떤 수도승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낭떠러지를 향해 던졌다.
갓난아이였다.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지체 없이 낭떠러지 아래로 몸을 날렸다.
간신히 아이를 한 손에 안고, 절벽에 돋아난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수도승을 올려다보았다.
수도승의 검은 눈들이 조롱하듯 웃고 있었다.
손의 촉감이 이상했다.
아뿔싸! 내 품 안에 있는 것은 나무인형이었다.
수도승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나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야 말았다.
꿈에서 깨어나자 너무도 선명하게 주역이 나무인형으로 오버랩되었다.
지도교수에게 주역으로 논문을 쓰겠다고 '비타협적'으로 선언한 것은 주역의 아우라에 현혹된 객기였다. 박사과정에 입학한 지 꼬박 10년이 지나도록 주역이라는 텍스트는 도무지 장악되지 않았다. 이해되지 않는 텍스트에서 글감을 길어 올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주역 그 자체가 아니라 주역에 대한 누군가의 해석을 연구하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속수무책으로 논문 제출기한을 넘겨버렸다. 공부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절대 학위라고 대답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일하는 틈틈이 독학사로 대학졸업 자격을 취득하고, 아내에게 살림을 맡긴 채 경제적 유용성과는 거리가 먼 철학 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한 나로서는, 아내를 볼 면목이 없었음은 물론, 바람 빠진 풍선처럼 의기소침해졌다.
그러던 차에 들려온 '대학원 설립 30주년 기념 논문 제출기한 도과자 구제기간'이라는 소식은 마치 하늘이 내려준 동아줄 같았다. 그러나 설렘도 잠시, 지난 10여 년 동안 논문을 제출하지 못한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었다. 누구에게는 기회이겠지만 나에게는 기회가 아니었다. 결국, '구제'받기 위해서 먼저 이행해야 할 사전 절차에 대한 안내 메일을 받고 마지막 절망을 곱씹으면서 잠이 들었는데, 거짓말처럼 저 꿈이 찾아온 것이었다!
주역에서 살아있는 아이와 같은 비전(秘傳)의 메시지를 구하겠다는 집착에서 벗어난 순간, 애당초 내밖에 존재하는 그런 절대적인 메시지는 없다고 생각한 순간, 지난 10여 년 동안 공부한 내용들이 제자리를 찾아 빠르게 정리되기 시작했다. 주역의 메시지는 '이것이다'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없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료는 많았다. 유가와 불가와 도가로 분류되는 역학자의 해석을 그대로 드러내고, 서로 다른 해석의 실마리가 어디서, 왜 발생하고 있는지 설명하면 될 일이었다.
장구한 역학사가 내놓은 해석들은 백인백색이다. 그 수많은 해석들에 기대어 역학사의 울창한 숲 속을 헤매다 보면, 미로에 갇혀 포기하기 십상이다. 마침내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스스로 길을 내는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백인백색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스스로 길을 낸 자 모두 경험한 바, ‘해답은 각자의 몫’이라고 하지 않고 자기 해석의 탁월성만을 주장한다면, 자신의 밖에서 처방을 구하는 후학들의 시행착오는 되풀이되고 역학은 필요이상으로 난해하고 고통스러운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비의(秘意)를 구하는 열쇠는 자신에게 있다! 단, 주역을 읽기 전에는 반드시 감정을 잠재우고 모든 욕심을 털어내야 한다. 욕심이 있는 자의 손에 있는 열쇠는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양 제가(諸家) 공통의 명제이기도 하다. 욕심을 버리고 온전한 자유를 획득한 순간, 풀리지 않던 난제의 해법이 선명하게 떠오를지도.
그런데 대강 이러한 논지의 결론으로 논문이 마무리되자, 뭔가 기시감이 들면서 허탈한 느낌이 들었다.
욕심부리지 말아라!
수많은 강의를 듣고, 책을 사고, 읽고, 생각한 끝에 얻은 결론은 어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