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 소파 좀 빌려줄래? (2)

다시 소파를 빌리러 베를린으로

by 비바제인


기차로 다섯여 시간을 달려 도착한 베를린 중앙역은 수도인 만큼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 안에는 양복을 입고 서류가방을 든 직장인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쇼핑을 하는 젊은 엄마들, 배낭을 들고 여행을 떠나는 가족들로 가득했다. 플랫폼에 서있는 기차들은 이름만 들어도 이미지가 떠오르는 유명한 유럽의 여러 도시들로 승객을 실어 나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호스트와 만나기로 한 날짜보다 하루 먼저 도착했기에 미리 예약해놓은 근처의 게스트 하우스로 발길을 옮겼다. 도착해보니 내가 묵게 된 곳은 규모는 여느 소규모 게스트하우스와는 달리 호텔만큼 큰 건물이었다. 결제한 금액을 생각해보니, 순간 이곳이 맞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카운터에서 예약정보를 확인하고 배정된 방으로 들어가 보니 그제야 가격이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방안에는 철제 침대와 사물함 그리고 거울과 시계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건물의 지하에는 펍이 있었고 그곳에서는 매일같이 여행자들을 위한 파티가 열렸다. 혼자 파티를 즐길 마음의 여유는 없었기에 3개의 2층 침대가 놓인 6인실방 가장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숙소를 빠져나왔다.


독일의 지하철인 우반(U-Bahn)을 타고 처음으로 향한 곳은 베를린 티브이 타워(Berlin Fernsehturm)였다. 사실 특별한 행선지 없이 길을 나선 터라 게스트하우스 로비에서 가져온 시티맵 들여다보며 길을 찾아야 했다. 호스텔 주변의 눈에 띄는 건물들을 머릿속에 기록하고 지도에서 역들을 확인하고 경로를 상상해보고서야 발걸음을 뗄 수 있었다. 독일 어느 곳이나 비슷한 지하철 역사의 풍경을 지나 바깥으로 나오니 별천지가 펼쳐졌다. 독일어보다 영어가 더 많이 들리는 상점들, 거리와 담벼락에 빽빽하게 새겨진 그래비티와 포스터들 그리고 사람들의 얼굴과 몸에 수놓아진 피어싱과 타투들이 베를린에 대한 첫인상들이었다. 외국인과 관광객이 넘쳐나는 베를린에서는 나의 존재는 굉장히 희미했다. 서울을 떠나온 후 잊고 지냈던 대도시의 익명성이 주는 편안함이 반갑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이곳에서도 간혹 아이들이 유독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경우는 있었다. 마치 신기한 무엇을 발견한 듯 뭐에 홀린 듯 쳐다보는 애들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부모가 다그치듯 불러야 그제야 나에게서 눈을 겨우 떼는 아이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괜히 머쓱해져서 먼저 시선을 다른 곳으로 거두곤 했는데, 베를린에 도착해 마음이 조금 편해지자 장난기가 발동했다. 넋을 잃고 나를 구경하는 아이들에게 이상한 표정을 지어서 놀라게 하고는 유유히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뚜벅뚜벅 걷고 있는데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카메라에 메모리카드를 넣었었나?' 아뿔싸,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기숙사 책상 위에 챙겨놓았던 메모리카드의 모습이 사진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베를린 여행에 핸드폰으로만 사진을 남기기에는 너무나 아쉬웠다. 급하게 근처에 전자제품을 파는 곳을 찾아 쇼핑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카메라에 맞는 메모리카드를 찾아 계산을 하고 나오니 이미 해는 지고 밖은 어두워져 있었다. 허무한 마음으로 광장 주변을 걸어가는데 그곳에는 작은 야시장이 부활절을 맞아 열려있었다. 기념품을 사는 연인들과 주전부리를 사서 먹는 가족들 사이에서 쓸쓸함에 허기가 들었다. 커리 부어스트를 하나 사들고는 벤치에 앉아 조용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내가 있는 곳이 베를린의 알렉산더 광장(Alexander Platz) 주변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한나 아렌트가 처음으로 독일 경찰에게 체포되었을 때 지나갔던 그곳이구나. 베를린의 구석구석에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러자 근사한 걸 하지 못해도 좋으니 베를린에선 온전히 나만을 위한 여행을 즐기고 싶어 졌다. 광장에서 커리 부어스트와 딱딱한 빵으로 조촐한 식사를 마치고 내일 만날 호스트는 어떤 사람일까 생각하며 숙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다음날 다시 무거운 백팩을 메고 중앙역에서 베를린 중심가로 향하는 우반을 탔다. 호스트와는 이미 전날 어디서 몇 시에 만나자는 약속을 해놓은 상태였다. 약속시간보다 먼저 도착해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는 나에게 호스트 L이 다가왔다.


"안녕? 너 제인 맞지?"


환하게 웃으며 손을 건네는 L에게선 햇볕에 잘 말린 빨래 냄새가 풍겼다. 우리는 함께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을 향해 걸었다.


"베를린은 처음이야?"

"응, 생각보다 크고 멋있다."

"그래? 다행이네. 너 서울에서 왔다 그랬지? 나도 아시아에 가본 적 있어!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하거든. 베를린에서 어디갈지는 정했어?"


길을 걷는 동안 우리 사이에는 여행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대화들이 오갔다. 그리스에서 교환학생을 했다는 그녀의 영어는 꽤나 유창한 편이었지만 독일어 억양이 뚜렷했다. 그새 자신감을 찾은 나는 영어를 쓴다는 압박감 없이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내었다. 복작복작한 시가지를 벗어나 주택가에 다다른 지 얼마 안돼 그녀가 한 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 왔어! 나는 이 건물 이층에 살아” 올려다본 곳엔 오래되었지만 반듯하게 지어진 전형적인 독일 공동주택이 있었다. 플랫에 들어서자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오래된 바닥이 삐걱하며 인사를 건넸다. 삼일 동안 머무르게 될 공간은 그녀 방의 작은 소파 겸 간이침대였다.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크기의 소파 위에는 그녀가 미리 정리해놓은 이불과 베개가 놓여있었다. 그 옆에 짐을 내려놓고 그녀가 있는 부엌으로 나갔다. 짧은 잡담 후에 우리는 간단하게 규칙들을 만들었다. 부엌용품과 화장실에 있는 용품 등은 사용해도 되지만 개인용품은 건드리지 않을 것, 함께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일정을 조율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각자 보내기로 하였다. 나 또한 그녀는 나처럼 이곳에서 여행자가 아니기 때문에 나의 일정을 모두 함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나에게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무엇을 타고 가는 게 빠른지 등을 설명해 주었고 이틀 후 시내에서의 점심식사를 약속하고 집을 나갔다. 나도 짐을 챙겨 플랫을 나서려는 순간 화장실에서 누군가가 웃통을 벗은 채로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녀가 말한 플렛 메이트 었다. 그는 한 손으로는 허리에 감싼 수건을 쥐고, 다른 한 손을 나에게 뻗으며 인사를 했다.


"어, 너구나. 이미 얘기 들었어.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고 재밌게 놀다가!"


평소라면 놀랐을 테지만 나는 이미 우리 플랫의 세 남자들에게 익숙해진 터였다. 나도 태연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고마워, 집이 예쁘네!"


그렇게 그날은 베를린의 뮤지엄들을 돌아보며 혼자 관광을 이어갔다. 베를린의 날씨는 초봄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혹독했다. 한국에서 영하의 겨울과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을 매년 겪으며 자라왓지만, 뼛속까지 차가워지는 것만 같은 축축한 냉기와 시도 때도 없이 사방으로 내리치는 진눈깨비에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에 나가 저녁 늦게까지 밖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베를린의 뮤지엄들 때문이었다. 도착하자마자 페르가몬 뮤지엄에서(Pergamonmuseum)부터 알테스(Altes), 노이에스-뮤지엄(Neues Museum)까지 이틀간을 이동시간과 식사시간을 빼고는 뮤지엄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뿐만이 아니라 야외에는 유대인 추념공원, 베를린 장벽 위의 그라피티가 인상적인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가 나의 발길을 이끌었다. 사방이 역사와 예술의 성지같이 느껴졌다. 그 재서야 비로소 내가 독일에 와있다는 게 진정으로 실감이 났다. 베를린에 머물게 된 셋째 날 다시 아침 일찍 일어나 베를린 시내로 향했다. 오전에는 다시 뮤지엄을 둘러보았고 점심이 되자 L과의 점심식사를 위해 약속 장소로 향했다. 간단한 독일식 식사를 하며 우리는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그녀는 나에게 저녁에 친구들과 선술집(Bar)에 가기로 했는데 원한다면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나는 흔쾌히 승낙했고 저녁에 옷을 갈아 입고 그녀와 함께 다시 시내로 나갔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었는데, 밖에서부터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병맥주를 들고 계단에 걸쳐 앉거나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태우고 있는 젊은이들이 선술집 바깥뿐만 아니라 안쪽에도 즐비했다. 먼저 자리를 잡고 앉으니 얼마후에 그녀의 친구 두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술을 시키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건물 전체를 울리는 것 같은 음악소리와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는 우리의 대화를 오래 이어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영어를 잘하는 그녀와 달리 친구들은 독일어가 편한듯했고, 나는 아직 간단한 독일어 회화조차 어려웠기 때문에 소음 속에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결국 삼십 분도 지나지 않아 우리는 말없이 서로만 멀뚱멀뚱 쳐다보게 되었고 그녀들은 독일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어색해짐을 느끼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내가 자리로 돌아오자 그녀들의 대화 또한 잠시 끊겼다.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속이 안 좋다 하며 먼저 집으로 가겠다고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어두운 베를린의 밤거리, 하하호호 사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비집고 한참을 걸어가니 그녀의 플랫이 눈앞에 보였다. 왠지 모를 안도감을 안고 열쇠로 문을 열려하는데 문은 열리지 않고 자물쇠만 돌아갔다. 낡은 건물의 낡은 열쇠가 말썽을 일으킨 것이었다. 내가 어쩔 줄 모르며 애꿎은 열쇠만 하염없이 돌리고 있자 안에서 인기척이 났다. 다행히도 그녀의 플랫 메이트가 집에 있던 것이다. 그는 잠이 덜깬 얼굴로 빠르게 문을 열어주고는 "이 집 문 열기가 원래 힘들어, 노하우가 있어야 해"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방으로 사라졌다. 방 안으로 들어오자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내일은 베를린을 떠나 집으로 가는 날이었다. 이렇게 무기력하게 있는 것조차 시간낭비라고 느껴졌다. 비스바덴에서부터 챙겨 온 미술도구를 꺼내 방안에 걸려있는 그녀의 사진을 그림으로 남겼다. 상냥하게 대해준 그녀에게 좋은 기억을 남기고 싶었다. 밤늦게 들어온 그녀는 내 안부를 짧게 묻고는 피곤하다며 잠을 잔다고 했다. 어쩐지 방 안의 공기가 어젯밤보다는 조금 차가워진 것 같았다.




베를린의 마지막 날은 부활절이었다. 그녀는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와 함께 머핀을 굽는 것을 도와주기도 하고 테이블 세팅을 하며 친구들을 기다렸다. 친구들이 하나씩 오고 부엌이 가득 차기 시작하자 나는 점점 그녀의 옆을 떠나 거실로 옮겨 앉게 되었다. 친구들과 웃으며 수다 떠는 모습을 보자니 한국의 친구들이 생각났다. 잠시 보고 말 사람들이 아닌, 나와 오랜 세월을 함께한 친구들에 대한 생각은 어느새 어젯밤의 불편한 기억으로 이어졌다. 식사 준비가 끝나자 모두 거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다시 나에 대한 짧은 질문들과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침묵에 쫓기듯 다시 입을 열었다.


"나, 오늘 돌아가 곧 기차가 올 거야."

"너 시간 잘 봤어? 오늘부터 서머타임(Summer Time, 독일어로는 Sommer Zeit)이 시작돼서 아마 한 시간 먼저 가야 할걸?"

L의 친구 중 한 명이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며 대답했다.


그제야 다시 핸드폰을 확인하니 나의 시계와는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있었다. 맙소사, 기차는 한 시간 40분 후가 아닌 40분 후에 오는 것이었다. 나는 부랴부랴 그녀에게 선물을 주고 짐을 챙겨 중앙역으로 향했다.


"L, 짧지만 덕분에 값진 여행이 되었어. 너무 고마웠어!"

"아냐, 우선 서둘러! 기차에 타면 연락 줘! 잘 가!"


그렇게 나는 다시 나의 도시 비스바덴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탔다. 여행의 처음과 끝이 모두 서툴렀지만 용기를 낸 덕분에 알찬 부활절 방학을 보낼 수 있었다. 베를린에서 남긴 많은 사진과 영감들은 언어의 장벽이 주는 단절감에서 오는 좌절 또한 잊게 해 주었다. 비스바덴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메모장에 짧은 글을 남기고 잠시 눈을 붙였다. '다음 목적지: 뮌헨'.




눈 내리는 베를린 돔
다리 위를 달리는 우반. 베를린에서 나의 주요 교통수단은 우반과 두 다리였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의 벽화 그리고 거리의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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