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야 날아가렴
“아니 이게 얼마만이야!”
“그러게요. 벌써 이 년만 이네요. 잘 지내셨어요?”
“맞아. 저번 장례식 때 보고 못 봤으니 말이다. 매번 이렇게 슬픈 일이 있어야만 보는 거니? 너무 아쉽다.”
고모님은 웃으며 내게 말을 건네셨지만 눈에는 금방이라도 똑 흘러내릴 눈물이 가득했다. 이 년 전 이 장례식장을 찾았을 때도 지금처럼 비가 부슬부슬 내렸지만 지금과 다르게 그때는 여름이었다. 검은색 우산 대신 초록잎으로 무성한 나무 그늘이 있었고 교회 앞에도 그 옆을 지나는 사람들이 흘깃거릴 정도로 장례식 장을 가득 매운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엄숙한 장례미사 분위기로 사람들의 긴장감이 넘치려 할 때는 까르르 웃음소리로 어른들이 죽음의 그림자에 압도되지 않게 해주는 아이들이 있었다. 혹독한 겨울 얼은 땅 속 뿌리는 죽지 않고 살아 남아 이내 봄꽃을 틔우는 새싹처럼 아이들이 퍼트리는 삶의 에너지는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었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4월이 오기 하루 전 날 열린 장례미사에는 그때처럼 많은 조문객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없었다. 대신 한 줌에 잡힐 듯한 조문객들이 묘지 옆 작은 유리 건물 안에 듬성듬성 모여있을 뿐이었다. 창밖에는 봄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사방에선 노랗고 붉은 꽃들이 어린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듯 요란스럽게 깨어나기 시작했고 흐드러지게 핀 벚꽃, 목련꽃은 가지를 휘청이게 할 정도로 만개해 있었다. 그래서 장례식장을 흠뻑 적시는 비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조금 더 어색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삶의 한가운데에 마치 오물처럼 묻어있는 죽음을 더 현실감 있게 마주치게 했으니 말이다.
장례식장 안 의자는 삼십 개도 채 되지 않았으나 그곳의 모인 이들에겐 그 반을 채우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그리고 단 한 개의 의자 위에서만 눈물이 흘렀다. 돌아가신 할머님을 홀로 근 10년간 간호해 온 고모님이었다. ‘바바 캇챠', 남편은 돌아가신 할머님을 이렇게 불렀다. 바바는 러시아어로 할머니를, 캇챠는 할머니의 이름인 카트리나의 애칭이었다. 이 년 전 이곳에서 돌아가신 분은 바바 캇챠의 동생 ‘바바 아가샤’였다. 바바 아가샤에게는 자식이 둘 있었다. 하지만 바바 캇챠에게는 슬하에 자식이 없었고 캇챠의 남편은 10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났기에 그녀의 남은 생은 조카의 어깨에 기대어졌다. 장례식에 조문객이 유독 적었던 것도, 조문객 중 아이들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내가 바바 캇챠를 알게 된 것도 재작년 바바 아가샤의 장례식 날이었다. 몸이 불편한 탓에 장례식에 올 수 없었던 바바 캇챠는 동생의 장례식 날 태양이 저물 때까지 홀로 집을 지켜야 했다. 캇챠의 반짝이는 눈은 아흔이 훌쩍 넘었다는 것을 잊게 만들었다. 갈색 눈동자를 가진 처음 보는 동양인 여자를 관찰하는 캇챠의 초록색 눈동자 너머에는 어린아이가 수줍게 웃고 있는 듯했다. 캇챠의 손에는 빈틈없이 주름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맨질맨질한 촉감은 마치 아기의 손 같기도 했다. 소리 없이 웃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만개한 흰색 튤립을 닮았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내 나의 기억에서 어릴 적 돌아가신 증조할머니를 불러내었다.
증조할머니를 생각할 때면 가장 먼저 오래된 앉은뱅이 원목장 앞에 앉아 정갈히 머리를 빗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할머니가 참빗으로 머리를 빗으시면 사근사근 빗질하는 소리가 이부자리를 차지하고 누운 나의 귓가를 간질였다. 머리를 다 빗으신 후에는 물 흐르듯 숙련된 손짓으로 쪽머리를 말아 올리시고는 빠진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모아 말끔히 정리하셨다. 그리고는 바른 자세로 몸을 돌려 앉으시고는 나를 향해 손짓하셨다. '우리 예쁜 손녀'는 당시 나의 다른 이름이었다. 할머니는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었다. 친척들이 우리 집을 찾으면 증조할머니를 중심으로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둘러앉아서 이야기를 하시곤 했다. 그중에는 무릎을 꿇고 앉은 남자 어른도 있었지만 나의 자리는 항상 할머니의 무릎 위였다. “아니 이 녀석, 할머니 힘드시게 얼른 안 내려와?!”라고 낮은 목소리로 누군가 나에게 으름장을 놓으면, “됐다. 괜찮다.”라고 할머니는 대답하셨다. 친척 어른들은 매번 나의 이름을 홀랑 잊은 것처럼 장남인 오빠의 이름 뒤에 '동생'을 붙여 나를 불렀다. 그럴 때면 증조할머니는 들으라는 듯 '우리 제인이'하고 다정하게 나의 이름을 다시 불러주셨다. 증조할머니는 나의 보호막이었다. 세상의 어떤 차별도 뚫을 수 없는 그런 보호막.
바바 캇챠도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었다. 장례미사를 주관한 신부님은 캇챠의 이야기를 덤덤한 목소리로 짧게 들려주었다. 캇챠는 우크라이나에서 6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다. 캇챠의 아버지는 그녀가 아직 어릴 때 세상을 등지셨기에 캇챠는 엄마와 함께 다섯 동생의 가장이 되어야 했다. 18살에는 시베리아로 징집돼서 강제노동을 해야 했고 그곳에서 남편을 만났다. 하지만 그녀는 고된 노동 중에 사고로 평생 아이를 얻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녀는 가족들과 카자흐스탄으로 또 독일로 이주를 다녔다. 캇챠의 슬하에는 아이가 없었지만 주변은 항상 아이들 웃음소리로 넘쳐났다. 그녀는 조카들을 위해 케이크를 굽거나 손수 옷을 지어 입히기도 했다. 남편은 바바 캇챠를 떠올리면 그녀가 불러주었던 ‘독일 동요’와 그녀의 함박웃음이 생각난 다곤 했다. 캇챠는 어릴 적 우크라이나의 독일 마을에서 자랐고 학교를 다녔기에 독일 동요를 배울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나의 증조할머니의 역사를 잘 알지는 못한다. 일제강점기에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넘어가 증조할아버지와 힘들게 일을 하셨다는 것과 바바 캇챠처럼 자식이 생기지 않아 증조할아버지의 가족 중에서 아이를 입양했고 그것이 나의 할아버지라는 것이 내가 그녀에 대해 아는 전부이다.
캇챠가 한 생에 머물렀던 육신은 화장되었다. 묘지를 만들어도 후에 찾아오거나 묘비를 관리해 줄 자식이 없어서라 했다. 장례식 내내 멈추지 않고 내리는 비를 보며 시아버님은 말하셨다. “캇챠는 분명 자신의 시신이 화장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거야. 그녀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거든.” 증조할머니가 땅에 묻히신 그날은 아주 화창한 여름날이었다. 할머니는 세상이 떠나갈 듯 곡을 했다. 살아생전 그렇게 증조할머니 욕을 하던 할머니의 곡소리에 후회와 원망이 섞여있었다는 것을 알기엔 당시의 나는 너무 어렸다. 하지만 그로부터 이십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곡소리 대신 빗소리가 가득한 장례식이 더 낫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도 내 장례식에서는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자식을 낳지 않는다면 장례식 풍경도 이와 비슷하리라. 쓸쓸하겠지만 이미 떠난 이에겐 크게 신경 쓰이지 않을 테지. 삼 년 전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을 때 나는 친한 몇 사람에게 주책없이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결혼식은 마치 생전에 하는 장례식과 다름없다고. 독일에 돌아와서야 그 말을 들어야 했던 친구에겐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같이 고향을 떠난 이에겐 그 말속엔 어느정도 진심이 담겨있다. 비는 곧 우박으로 변했고, 시아버님은 자신의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묘지 한편에 모인 한 줌의 사람들은 서둘러 검은 그늘을 펼쳐 만들고는 산자의 도시로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또 한 사람의 세계가 사라졌다. 이십 년 전 나의 증조할머니의 세계가 사라졌듯이 말이다. 한 사람의 세계가 사라진다고 해서 우주가 멸망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죽음은 아주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일이어서 가족과 친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은 그 사소한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만개한 꽃을 바라보는 사춘기 소녀의 속눈썹에도, 한여름 밤 읽던 두터운 책의 마지막 장이 넘어가는 순간에도 그리고 부슬부슬 내리던 가을날의 비가 우박으로 변하는 그 찰나에도 죽음은 숨어있다. 그러나 그 뒷면에는 찬란한 삶이 이어지고 있다. 바바 캇챠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의 손을 잡고 나의 눈을 들여다보았을 때 그녀의 삶은 나에게로 전해졌다.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이 단 하나라도 이 세상에 있는 동안 그녀는 살아있는 것이다. 나의 증조할머니가 내 기억에 살아있듯이 말이다.
“바바 캇챠가 불러주던 노래 기억나?”
“그럼.”
“불러줄래?”
“새 한 마리가 날아와서 내 발치에 앉네. 부리에 물고 온 쪽지에는 어머니의 인사가 담겨있네. 다정한 새야 계속 날아가렴, 날아가서 어머니에게 인사와 사랑을 전해주렴. 아쉽게도 나는 너와 함께 갈 수 없으니 어머니께 날아가 키스와 사랑을 전해주렴. 새는 계속 날아 산과 계곡을 넘어갔네. 그리고 창가에 남은 아이들은 슬프게도 그가 가는 것을 보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