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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kaya Lee Sep 16. 2015

염소치즈의 맛



염소치즈가 있다.

단어 그대로, 소의 부산물이 아닌- 염소에게서 난 젖을 이용해 만들어지는 치즈.



염소치즈의 맛이 있다.

설명만으로는.... 모를 일이다. 기어이 한 차례 맛봐야만 한다.

얼음처럼 쨍-한듯, 톡 쏘는 신맛이 감도는 한편

치즈의 묵직하고 진득한 맛과 달리, 명징하면서 알싸한 내음이

혀의 미뢰와 콧속 후각세포를 동시에 감싸고 돈다.



맵시나게 차려입고, 진한 향수를 뿌린 뒤 킬힐을 또각거리며 거리를 나서는      

여성의 실루엣을 눈과 콧김으로 훑는................. 이미지랄까.

갓 내온 캔버스만큼이나 새하얀 백색 빛이 감도는 것이,

푸르스름한 기운마저 표면에 서려 있어 나이프를 가져다 대기 조심스러워진다.

뿐만 아니라 뭐랄까, 마치 마리화나같은 특유의 금속성 내음도 어려 있어,

중독된 금단의 과실마냥 유독 생각이 나는 때가 있다. 

특히나 염소치즈는 산딸기잼이라든가 꿀과 같은 진하고 새콤한 단맛과 함께

어우러지면 그 특유의 맛이 더욱 배가되는데,

따끈하게 갓 구운 빵에 듬뿍 얹어 먹는 경우라면................. 더할 나위가 없는 법.




















그들의 시작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마도 앞자리에 앉은 친구가,

곧 헤어질 커플이로군, 하고 중얼거리지만

않았더라면, 아마도 나는

그들의 '대반전' 따위 전연 눈치채지 못한 채로

오늘의 식사를 마무리했을 것이었다.



낮은 어조로 끊임없이 웅얼거리던

그 커플은 급기야, 이 좁다란 가게 안에서,

점차 목소리를 높여가며 빠르게 그들의 언어로

감정을 고조시키기 시작했다.

반면, 어쩌면 당연히- 가게 안은 점점 더

고요해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모두들 나지막한 침묵 속에 눈동자만 마주쳐가며

포크며 나이프를 놀리던 찰나,

나는 정말로 깜짝 놀랐다.

막 이제 테이블에 등장한 내 접시- '유기농 꿀과 호두를 곁들인

염소치즈 토스트' 위로 벼락같이 뭔가가 휙, 날아와 코 언저리로 낙하했다. 



















   백색 거즈같이 희디흰, 내 접시 위

   가지런히 놓인 염소치즈 위로,

   둔탁하게 반짝이는 녹색 반지 하나가....

   마치 케이크 위 딸기마냥 '다소곳이' 놓여 있었다. 







.........................................


식당 안은 일순간 침묵에 휩싸였다.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순간 밀어닥친

그 적막감과 먹물같이 흐르는 긴장감을.

아마도 여자가 일부러 내 접시를 향해 그 반지를

던진 것은 아닐 것이다.

화가 나서 테이블에 내동댕이친다는 것이,

어쩌다 우리 쪽으로 방향을 틀어 튀는 바람에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겠지.

울 것 같이 당황한 표정으로 멈칫하던 여자는,

모두가 한마음으로 그 반지의 행방을

눈으로 좇고 있을 때,

마침내는, 그 여자는,

자리를 박차고 바깥으로 뛰어나가버렸다.


.........................................


두번째 침묵. 누구도 말 한 마디 없었다. 








한동안 멍한 침묵이 흐르던 가게 안에서,

마침내 맞은편 자리의 '그 청년'이 조용히

의자를 젖히고 일어나더니, 내 앞으로 와

정중히 사과했다.


............... 미안, 너무 미안해요.

뭐라 할 말이 없네요.

죄송하지만, 이 메뉴 새로 빨리 다시

내어주실 수 없을까요? 제가 내겠습니다.

미안해요, 서둘러서 좀 부탁해요.


나는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신경쓰지 않아도

정말 괜찮다고 열심히 말을 건넸지만,

남자는 잠자코 지갑을 꺼내들더니,

곁에 섰던 종업원에게 지폐를 한 장 건네며

뭐라고 다시 낮게 웅얼거리더니....


미안합니다, 정말, 나를 향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나서 조용히 식당 문을 나섰다. 







나무문 건너로 슬쩍 들여다보이는 주방 안에만 분주한 기운이.... 가득했다. 

이내 새로 만들어진 내 메뉴가 다시 테이블로 건네졌고, 나는 먹음직스럽기 그지없는

큼직한 치즈와 잔뜩 발린 꿀 한 입을 크게 베어물었는데, 그 맛이, 참.


쇳가루처럼 쨍-한 그 맛이, 유독 뇌리에 새겨질 듯 강하게 났다.

빛을 잃고 다소곳이 놓여 있던 아까의 그 반지가 그대로 치즈 속으로

녹아든 것만 같았다. 유독 새빨갛게 달아올랐던 청년의 양쪽 귓불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다시금 웅성거리기 시작한 식당.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나자, 종업원이 이내

먹음직스러운 케이크 한 조각을 내려놓았다.


아.... 이건 우리 메뉴가 아닌데요,

우리는 디저트를 주문하지 않았는데요-


그가 대신 주문한 겁니다, 종업원은

짤막하게 대답하며 살짝, 희미하게 윙크를 했다. 


한 폭의 그림같이 예쁘게 진열되어 있던 케이크는

겉보기와 꼭 같이 달고 맛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혀끝에 그녀 '반지의 맛'이

감도는 듯해 결국 아메리카노 한 잔을

더블샷으로 주문하고 말았더랬다. 

아까 그 청년의 눈동자처럼 씁쓸한 뒷맛이

잔 속에서 일렁거렸다.







반지를 집어던져 치즈에 처박고 뛰어나간 여자와 그 연인의 뒷이야기는....

어떻게 진척이 되어나갔을까. 

때때로 가지런히 잘려 눈부신 흰 속살을 자랑하고 있는 염소치즈를 마주할 때면,

반지의 환영을 본다. 구릿빛 나선 끝에 에메랄드색 보석이 사뭇 영롱하게 반짝이던

그 순간의 그 반지를. 





그리고 홀로 남겨진 대 비극 속에서 마지막까지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그 청년도.

식당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던 동물의 머리뼈처럼 새하얗게 빛나던 창 밖 햇살과,

뛰쳐나간 두 연인의 테이블에 놓였던 흰 카라꽃 세 송이마저도.


그런데 그러고보니- 대망의 신파극 속 '주인공'이었던 그 녹색 사물은 정작

어디로 가버린 걸까?

누구도 주인공의 조용한 퇴장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리도 가만히.


연애사의 비극은 과연,

초연한 것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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