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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kaya Lee Sep 12. 2015

동타이루에서 국숫값 벌기



상하이를 방문할 때면

빠뜨리지 않고 꼭 한 번은, 들르게 되는 곳이 있다.


다른 이들에게는 그다지 흥미롭지 않을지라도,

나에게만은

매력적인 어떤 곳





동타이루 골동품 시장에 간다.



얼마나 오랜 세월 묵었는지 알 수 없는

온갖 세간살이에서부터

'진짜' 명·청 시대 유물이라고 한사코 주장하

 청동 화병, 들어올리기도 힘든 묵직한 벼루,

이 빠진 옥 찻잔에서부터 닳아빠져 새겨진 글자가

거의 보이지도 않는 소뿔 도장이라든지

춘화첩, 새빨간 표지의 마오쩌둥 어록,

꼭 애들 장난감 같아 보이는 마오쩌둥 손목시계,

진시황 능에서 발굴된 병사의 모습을 그대로 본 뜬, 세계사 시간에 수도 없이 봐온지라

제법 익숙한- 사람만큼이나 큰 키의 동상들.

다양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공기 자체가 눅지근한- 잿빛을 띄고 있는

먼지투성이 골목으로 터억, 하고 들어서면

그때부터 보이지 않는 기싸움과 눈치작전이

본격 시작될 예정이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골동품 구경은 늘 흥미롭다. 양쪽 길로 주루루 늘어선 끝도 없는 가게들은

몇 군데 지나치다 보면 이내 엇비슷한 품목의 구성이나

싸구려 혹은 가짜 티가 번연히 드러나는 조잡한 물건들의 행렬로 실망을 안길 수도 있겠지만,

즐기려는 마음으로 판매대를 샅샅이 훑다 보면 의외의 품목이 빛을 반짝, 나에게만 반짝,

간혹 '그럴싸한' 신호를 보내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열심히 발품을 팔며 눈을 치뜨는 보람이 있다. 





산처럼 잔뜩 쌓여 있는 잡동사니들 사이에서 쓸 만한 기념품 혹은 이야깃거리를 골라내며

나의 안목을 시험하는 것도 벼룩시장을 찾는 묘미 중 하나다. 

게다가 '성공적인' 시장 방문기의 주된 척도가 되어주는... 다름아닌 흥정의 묘미란.



매번 속아넘어가는 듯한 수 차례의 흥정이 번거로워 이곳을 기피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이게 또 여러 차례 '도전'하다 보면 대충 나만의 흥정 수법이 생겨나고,

가게 주인의 미묘한 표정을 읽어내는 긴장감이 감돌기도 하고,

어느 정도의 선에서 흥정을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인지,

말마따나 '감'이 오기도 하기에 하면 할수록 재미가 들린다.

또 서로간에 번연히- 속이 들여다보이는 제스처임에도 불구하고

짐짓 져주는 듯한- 정말 모르고 있는 듯한- 적당히 눙을 쳐가며

각자의 연기에 심취해 옥신각신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너무 얼토당토 않은 가격을 재미삼아 불러버리면, 팩, 하고 사납게 화를 내며

뒷통수에 대고 중얼중얼 욕을 해대는 영감쟁이들도... 간혹 있기에 말이다.

괄괄하고 배 나온 풍채 든든한 아저씨들이 웃통 벗고 화 버럭 내면,

이거 대낮에도 은근히 무섭다... 주위에 누구라도 없을 때라면 조금 더.










































언제부터인가 시장을 돌다보면 자주 눈에 띄는

다양한 중국 사람들의 모습을 꼭 닮게 만든

자기 인형이 갖고 싶었다. 

서너 군데 가게를 돌며 부르는 가격대의

평균값을 셈한 다음,

본격적인 흥정에 접어들기로 한다. 









- 이거.......... 얼마예요? 예쁜데.

- 150위안.

- 엥? 꾸에이쓰러!!!! 비싸 죽겠네!!!!

   안 사, 안 살래요, 너무 비싸다.

- 그럼 조금 깎아줄게. 120위안.


아니 아저씨, 그래도 너무 비싸... 

- 나 가격 대강 알아요. 저번에도 여기 와서 이거 봤어요.

- 그럼... 110에 줄게. 110위안 어때?


......................... (만지작만지작)

- 그럼 니가 원하는 가격을 말해봐.


(괜히 생각하는 척)


- 그럼, 니가 원하는 가격 말해보라니깐? 여기다 찍어 봐, 자!

이쯤 되면 이렇게 말하면서 휴대용 계산기를 내미는 게 정석.


.........................

자못 고민하는 척을 하다가... 아니예요 됐어요, 다음에, 나중에...

- 얼마? 니가 생각하는 가격은 얼만데?

- 70위안요.

- 안돼 안돼, 90! 그 이상은 안 돼. 그게 마지막이야.

- 음... 지금... 돈이 없어요... 안 되겠네... 그럼 안되죠 뭐, 다음 번에 다시 올게요, 꾸벅.

돌아서는 찰나,




- 샤오지에!!!!

.........................?!!

- 하오, 그럼 그렇게 한다! 치스(70)!!!!

- 하오더!

   쎼쎼, 하오더, 하오더, (한껏 과장된) 쎼쎼~~ 

   그리고 저기 저 도장은 얼마인데요?

- 100.

- 왜 100... 저기서는 60 달라고 하던데.

- 어디? 어디서? 누가? 저기서? 흐으음........ 알았어, 그럼 나도 이것까지 60에 줄게.





이런 거짓말같은 일이 가능한 곳이기에,

나는 이곳을 탐방하는 일이 즐거워진다.

어느 곳이나 사람 사는 곳은 마찬가지라는 생각도 들고,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제각기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려 애쓰는 이 광경이

찰나의 희극 같다는 생각마저 문득 들기에.


낡은 우표첩이나 빈 과자 깡통, 

집에 가져가면 엄마에게 핀잔이나 듣기 딱 일쑤인

도자기 인형이나 조개 껍질 무리 등이

어느 순간 얼마나 살갑게 우리 눈에 추억으로 스며드는가. 

때 묻고 성가시지만 한 조각 추억 깃든 물건에 조금이라도 흥미가 있는 이들이라면,

여유자적하게 이곳을 한 번쯤은 둘러볼 일이다.

'낡고 오래된 것'들이 차차 스러져 간다.

이곳도 언제 그 운을 다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동타이루 시장 안에서는 먹거리 판매대를 찾을 수 없기에

힘겨운 사투를 마치고 나면 근처 가까운 골목의 국숫집에 들러

소고기 육수를 훌훌 말아낸 국수 한 그릇쯤은 먹어줘야 하루의 탐방기가 마무리된다. 

진지하게 열심으로 에누리에 임한 덕에, 오늘 하루 국수 한 그릇 몫은

푼푼이 벌어낸 듯한 뿌듯함에 절로 배가 불러온다. 


무수한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쌓인 채 새 주인을 기다리고,

누군가의 생계를 위한 활기와 때로는 악다구니가 넘실대는 곳이기에

동타이루의 남루함은   

초라하거나 빈약하지 않고,

분 바른 상하이의 솔직한 뒷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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