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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kaya Lee Sep 24. 2015

복숭아 찐빵의 도시

도시를 걷다 - #1



찐빵으로

말할 것 같으면,


셀 수도 없이 다양한 형상이 있고,

거웃한 녹두, 껍질 벗긴 새하얀 팥, 삶은 밤, 알알이 덩어리가 살아 있는 통팥,

샛노란 단호박잼과 우유크림과 초콜릿에 이르기까지....

가지각색의 소가 그 속을 채우고 있겠지요.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저는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복숭아 모양을 한,

옅은 입술연지 색깔을 지닌

복숭앗빛 찐빵을 주저없이 고르렵니다.


별 거 아녜요. 단지 주먹만 한 크기에 한가운데 부분이

새초롬이, 한 꼬집 위로 솟구친,

뾰족한 달덩이같은 모양새를 하고

그저 다시 분홍빛 나는 색소를 한 꼬집 반죽에 섞어

있는 듯 없는 듯 희미한 복숭아 껍질 빛깔을 흉내낸....

그런 찐빵인 것을.


찐, 빵, 이라는 말이 참 좋아요.

기교없이 수더분하면서도, 뭔가 그 속을 꽉 채우고 있는 충만함,

그리고 으레 떠올리게 되는- 김이 폴폴 오르는 뜨거운 막솥으로부터

손 안에 서둘러 쥐여지는 그 순간의 따뜻함,

아마 찐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친숙한 먹거리 아니겠어요.





타이베이台北라는 작은 도시에서는

그 복숭아 찐빵을 자주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민간신앙에 대한 믿음이 돈독한 그 나라에서는,

골목 어디를 가나, 어느 거리를 지나치나

마치 소꿉놀이 테이블처럼- 자신이 모시는 수많은 신들을 위해

소박한 젯상을 차려놓은 광경을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어요.


자그마하지만 정결한 차림대 위에

찐빵, 참깨과자, 밥 한 그릇, 갖가지 과일 등

간단한 주전부리와 내음 진한 향과 초를 밝혀 놓은....

간혹 금박을 입힌 종이나 가짜 돈을 함께 태우는 경우도 있어요.

그 소소한 풍광이 이 도시, 소박한 사람들의 하루를

행복하게 일구어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인가 봅니다. 





















































찐빵은 그중에서도 가장 흔하게, 낙낙한 모습으로,

과일들 사이에 다소곳이 놓여

남몰래 찾아오는 신을 배부르게 대접하기도 하고,

지나가면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아련하게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팥을 몹시 싫어하던 어린 딸아이에게

찐빵을 손수 빚어 먹이던

젊은 날의 엄마가 떠오르기 때문일까요, 아마도.

한사코 아무 속도 들지 않은 빵을 고집하는 딸내미가 못내 아쉬웠던지,

언제나 찐빵을 만들 때면 자그마한 복숭아 모양을 흉내내어

딸기즙을 쥐어짜넣곤 했던 젊은 날 엄마의 그 모습....


실은 직접 과일을 짜 즙을 넣게 되면,

물든 빛깔이 그리 선명하지는 못해요.

그래서 엄마의 복숭아 찐빵들은 늘

반쯤 익다 만 듯한 희미한 붉은 빛이 감돌아

그다지 먹음직스러워 보이지는 않았지만....

자극적인 인공 딸기향이 진동하는 진한 색소로 바꿔 넣는 일은 없었죠.

간혹 엄마에게 드문 외출이라도 있는 날이면,

희부윰한 복숭아 찐빵 여남은 개가

부엌 탁자 위 보자기 아래 놓여 있곤 했습니다. 





정성스레 신에게 바친 복숭아 찐빵의 숭고함만큼이나....

자식의 출출함을 달래주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이란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신실한 것이겠죠.

그래서 전 복숭아 모양을 한 찐빵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사랑하는, 사랑했던 사람을 가만히 떠올리며

여유롭게 음미할 수 있는 음식보다

세상에 맛난 것이 어디 또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요.


찐빵을 베어물며

낯선 이 골목 저 골목을

목적도 없이 헤매이는 한낮, 어느 날 오후.

타이베이는 그런 여행이 어울리는 도시입니다.



































복숭아 껍질을 벗기고 나서

손가락에 한동안 묻어나는

흠흠한 그 냄새도 너무 좋아요.

굉장히 달큰하면서도 다사로워서,

이 내음을 그러모아

그대로 병에 담아 향수로 만들었음 좋겠다, 고

생각한 때도 있었습니다.

꼭 무르익은 여름철의 복숭아여만 해요. 

농익은 복숭아의- 끈적하게 넘쳐나는- 그 즙을,

두 손에 뚝뚝 묻어나는 말캉한 그 즙을 

입가에 범벅해가며

채 씹지도 않은 복숭아 조각을 꿀떡거리던

철없는 옛시절을 소환해내는 그 복숭아 향으로요.













찐빵의 도시를,

복숭아가 나무에서 여물어갈 무렵, 

다시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엄마의 그것처럼 쫀득하면서도 포실한 

정성 가득한 맛은

여간해선 거리에서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래도 습관처럼 시장 한켠 백발 성성한 

토박이 할머니의 '떡집'으로부터

몇 개 남지 않은 찐빵 몇 개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오던 귀가길은, 저녁놀은....






무르익을대로 익은 복숭아 껍질 빛깔과 

몹시도 닮아 있어서, 

동행 없는 여행길의 나를, 외롭게 만드는 일같은 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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