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다음 층을 쌓아가는 시간
경남도립미술관 《겹겹의 시간》 전시실, 김미숙 작가의 〈피에타〉 앞에서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전시장 2층, 도슨트의 낮은 목소리가 공기 중에 잔잔히 퍼졌다.
“이 작품은 피에타를 연상시키지만, 옻칠의 층을 통해 ‘가라앉는 슬픔’을 이야기합니다.”
검은 옻칠 바탕 위로 자개가 은은하게 명멸했다.
눈물처럼 맺힌 빛, 그 위로 흩뿌려진 금분. 익숙한 형상이지만, 이곳의 피에타는 유독 느리고 고요했다. 슬픔이 터져 나오기보다, 오랜 시간 천천히 가라앉아 제자리를 찾은 듯한 평온함이 있었다.
수없이 덧칠하고 말리기를 반복하는 옻칠처럼, 감정 또한 그렇게 층층이 쌓여가는 것일지 모른다.
곁에 있던 딸이 내 손을 꼭 잡으며 물었다.
“엄마, 저 사람 왜 저렇게 안고 있어? 아파 보이는데… 참 따뜻해 보여.”
그 맑은 말 한마디에 마음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작품을 보며 떠오른 얼굴은 나의 엄마였다.
한때는 내가 품에 안겨 울던 아이였지만, 이제는 내가 엄마의 손을 잡고 병원을 가고 약을 챙기는 사람이 되었다.
어머니가 나를 품던 시간은, 어느새 내가 어머니를 품어야 하는 시간으로 돌아와 있었다.
도슨트의 설명이 이어졌다.
“옻칠은 기다림의 재료입니다. 한 번 칠할 때마다 시간이 쌓이고, 그 두터운 층이 결국 안에서부터 빛을 냅니다.”
그 말이 오래도록 귓가에 남았다.
내가 엄마에게 기대어 있던 시간과, 지금 엄마가 내게 기대 오는 시간.
겹쳐진 세월은 아프면서도 이상하게 아름다웠다.
작품 속 마리아의 표정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고요함.
자개의 빛이 스칠 때마다, 그 안에 응축된 시간이 조용히 반짝였다.
전시장을 나서며 딸에게 나직이 말했다.
“언젠가 너도 엄마를 이렇게 안아줄 날이 오겠지?”
딸은 다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잡은 손의 온기가 오래 남았다.
〈피에타〉 앞에서의 시간은 이미 내 안에 스며들어 천천히 쌓여가고 있다.
그것은 슬픔이라기보다, 사랑이 한 겹 더 깊어진 순간에 가까웠다.
삶은 결국 겹겹의 시간이다.
그리고 ‘품는다’는 것은, 결국 돌아오는 사랑의 형태라는 것을 조금씩 알아간다.
오늘의 이 순간도, 그렇게 조용히 쌓여 하나의 빛나는 층이 되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