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 바다와 오방색, 그 사이에서 만난 ‘나다움’의 미학
통영 미륵산 자락, 전혁림 미술관의 외벽을 장식한 타일 그림들이 먼저 우리를 맞이했다.
한동안 민화의 대담함과 소박한 아름다움에 빠져 지냈던 나에게, ‘통영의 피카소’라 불리는 그의 세계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해방감으로 다가왔다.
중학교 2학년,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며 남들의 시선에 예민해진 딸의 손을 잡고 미술관에 들어섰다. 그곳에는 96년의 시간 동안 멈추지 않았던 색채가 펼쳐져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전혁림의 코발트블루였다.
“이게 통영 바다 색 이래.”
내 말에 아이는 한참을 캔버스 앞에 머물렀다.
중앙의 유행을 따르기보다 고향 통영에 머문 그의 삶은, 거친 파도를 견디며 제자리를 지키는 바위처럼 느껴졌다. 나는 아이 옆에 서서 조용히 말을 건넸다.
“이런 색은 여기 아니면 잘 안 나올 것 같지?”
아이는 그림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뭔가 여기라서 나오는 색 같아.”
잠깐 생각하더니 덧붙였다.
“좀 불안했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자기 스타일 만들고 싶었나 봐.”
그 대답 속에서 나는 아이가 느낀 작은 용기를 보았다.
전시실의 작품들은 서양의 입체적인 형식을 닮아 있으면서도, 그 안을 채운 색은 고구려 벽화와 민화의 오방색에 가까웠다. 방향과 계절, 기운을 담고 있던 색들이 전혀 다른 형태 안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아이는 한참을 보다가 말했다.
“옛날 색인데도 하나도 촌스럽지 않아. 오히려 더 멋있어. 뭔가… 다 이유 있는 색 같아.”
단청 전시를 보러 다니며 익숙해진 색이라서인지, 아이의 눈에는 그 조합이 자연스럽게 읽히는 듯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오래된 색인데도 지금이랑 잘 어울린다.”
전시실을 나서며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삶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90대에도 “아직 젊다”라고 말하며 붓을 놓지 않았던 화가의 태도는, 이제 막 자신의 길을 찾고 있는 아이에게 조용한 메시지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가볍게 말을 꺼냈다.
“나중에 너도 오래 계속하고 싶은 거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남들이 정해준 거 말고, 네가 좋아하는 걸로.”
미술관을 나서는 길, 통영의 바다는 그림보다 더 깊은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중심이 아닌 곳에서, 유행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완성된 그의 색은 이제 아이의 마음속에도 작은 씨앗처럼 남아 있을 것이다.
엄마가 아껴온 색과,
아이가 발견한 감각이 만난 어느 오후.
그날의 바다는 오래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