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드 연기

서로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들에 대해

by 맑고온화한


화면이 꺼진 뒤에도 한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영화의 잔상이 천천히 눈앞을 맴돌았다.

이동휘가 뾰족한 귀를 붙인 채 카메라 앞에서 울부짖던 장면,

진지할수록 더 우스워지는 그 얼굴.


그런데 그 우스움은 가볍게 지나가지 않았다.

사람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자기 자리를 밀고 나가야 하는 얼굴들.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등을 떠밀며 “원래 그런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고,

그 말이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더 불편했다.


마음 깊이 내려앉은 건 엄마의 뒷모습이었다.

사람들 앞에서는 늘 밝게 춤추고 노래하던 사람,

웃음이 먼저이고 슬픔은 언제나 뒤에 숨겨두던 사람.


그런데 병실에 혼자 남겨진 순간,

몸을 흔들던 리듬은 끝내 울음으로 무너진다.

춤을 추다가 울고, 웃다가 주저앉는 사람.

아프다고 말하지 못해 몸으로 대신 말하는 사람.

그 뒷모습에는 보이는 삶과 혼자 견디는 삶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오래 남은 건 엄마가 담배를 피우며 흘린 한마디였다.

“이거 하나 피운다고 오늘내일 죽냐.”


위암 수술을 앞두고 같은 말을 했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그때는 그 말이 너무 야속해서 그저 울기만 했다.

지키고 싶은 마음과 이해되지 않는 마음이 부딪힌 자리에서.


영화 속 엄마의 얼굴을 본 뒤에야 조금 알 것 같았다.

그건 체념도 무너짐도 아니었다.

병 앞에서도 끝내 ‘나’로 남아 있으려는,

말로 다 설명되지 않는 버팀 같은 것이었다.


아버지도 그러셨을까.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 혼자 계실 때는 어떤 얼굴을 하고 계셨을까.

나는 아직 그 얼굴을 모른다.


어쩌면 모르는 채로 남겨두는 것이,

한 사람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주인공은 다시 분장실 의자에 앉아 뾰족한 귀를 붙인다.

강요 때문도, 시선 때문도 아니다.

자신을 바라보며 웃어주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 하나로 사람은 다시 무대에 올라간다.


나도 그렇다.

불안이 밀려오는 날에도, 미래가 흐릿해지는 날에도,

아이의 숨소리를 들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는다.


엄마가 떠난 뒤 거실에서 혼자 울던 장면에서 숨이 막혔던 건,

아버지를 향한 미안함과 아직 다 전하지 못한 마음,

아이에게 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왔기 때문이다.


감정은 늘 정리되지 않은 채로 온다.


거창한 사랑이 아니어도 괜찮다.

완벽한 이해가 아니어도 괜찮다.

숨소리 하나, 눈빛 한 번, 밥 한 끼.

그 사소한 온기가 하루를 붙든다.


무너지는 날에도 다시 앉게 하고,

도망치려다가도 다시 분장실로 돌아가게 한다.


서로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는 못하지만,

서로의 삶을 계속 살아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