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 대지의 숨결을 닮아, 나만의 영토를 일구다

by 맑고온화한








[대지]의 마지막 장을 덮고 마음에 남은 것은 가문의 부흥이 아니라, 그 모든 시간을 온몸으로 버텨낸 오란의 존재였다.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녀의 자리는 늘 조용하지만 또렷하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취보다 삶의 기반을 꾸준히 만들어온 사람, 오란은 이 이야기를 끝까지 지켜낸 단단한 뿌리처럼 느껴진다.



그녀의 삶에서 발견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태도였다. 기근으로 남쪽으로 피난 갔을 때, 혼란한 약탈의 틈에서 부잣집 비밀 장소에 숨겨진 보석을 손에 넣던 그 장면이 오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것은 단순한 생존 본능이 아니라, 가족의 앞날을 내다본 조용한 판단이었다.



오란은 침묵했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강인함은 스스로 선택한 결과라기보다, 선택할 수 없었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길러진 것일지도 모른다. 분노하거나 억울함을 표현할 언어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시간 속에서, 침묵은 저항의 방식이 아니라 생존의 형태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침묵은 존엄이었을까, 아니면 체념이었을까. 아마 오란의 삶 안에서 그 둘은 선명하게 나뉘지 않았을 것이다. 표현할 언어를 끝내 갖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자리를 지켜낸 것 자체가 하나의 존엄이었다고 나는 조심스럽게 결론 내린다.



다만 그 강인함이 더 이상 체념의 방식으로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든다.

그 바람이 오늘 나의 일상을 만든다. 오란의 단단함 위에 세상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힘을 더해가기 위해, 책을 읽고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다양한 신문으로 세상의 흐름을 살피는 시간을 하루하루 쌓아간다. 오란이 침묵으로 삶을 버텨냈다면, 나는 이해한 것을 마음속에만 두지 않으려 한다. 그것이 그녀의 삶을 오늘의 방식으로 이어가는 하나의 길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오란이 일구어낸 그 대지 위에서, 흔들림 없이 뿌리내리되 천천히 가지를 넓혀가는 삶. 오늘도 나는 그 땅 위에서 나만의 자리를 조용히 다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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