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따뜻한 첩보, 내 아이라는 이름의 ‘휴민트’

by 맑고온화한

며칠에 걸쳐 호흡을 나누어 보았던 영화 [휴민트]의 마지막 장면이 마침내 끝이 났다. 아이가 학교에 가고 난 뒤 찾아온 고요한 거실, 홀로 앉아 마주한 화면 속 블라디보스토크는 차가운 첩보전의 열기로 가득했다. 처음에는 낯선 풍경과 비정한 서사에 선뜻 몰입하기 어려웠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영화는 단순한 첩보물을 넘어 내 삶의 화두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화면 너머 빈 책상이 놓인 딸아이의 방 문턱으로 자꾸만 시선이 머물렀다.



영화 속에는 대조적인 두 여성의 삶이 흐른다. 압도적인 실력으로 세상을 돌파하는 요원 ‘나나’와, 그 살벌한 전선 한복판에서 묵묵히 밥을 짓고 사람의 마음을 얻는 식당의 ‘채선화’.



사실 나는 내 아이가 나나처럼 서늘한 지성과 무너진 적 없는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 되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내가 늘 강조해 온 ‘준비된 자유’란 결국 거친 정글 같은 사회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날카로운 무기가 있을 때 얻어지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 나의 마음을 조용히 흔든 것은 오히려 채선화의 모습이었다. 무력이 아닌 신뢰로 사람을 움직이고, 결국 그들의 마음을 돌려 비극을 멈추게 하는 채선화의 단단한 유연함. 그 모습 속에서 나는 내 아이의 진짜 자화상을 발견한다.



내 아이는 차가운 이성으로 세상을 가늠하기보다, 호수처럼 깊은 마음으로 세상을 먼저 품는 아이다. 좋아하는 소설 속 주인공이 마주한 슬픔을 제 일처럼 아파하며, 책장을 넘기다 소리 없이 눈물짓던 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눈물은 활자 너머 타인의 생애를 온 마음으로 안아주던 다정한 배려였을 것이다. 길가에 스러진 작은 개미를 위해 흙을 덮어 무덤을 만들어주거나, 장애가 있는 친구를 향한 편견 어린 시선 속에서도 말없이 그 곁을 지키며 온기를 나누던 의연함 또한 아이가 가진 본연의 빛이다.



​누군가의 아픔에 먼저 마음을 내어주는 그 무해한 다정함이, 혹여 비정한 세상에서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내심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지금, 나는 안심한다. 인간 정보(Humint)의 본질은 결국 '마음'을 얻는 일에 있다는 것.

세상의 어떤 정교한 기술도 뚫지 못하는 벽을 허무는 가장 강력한 힘은, 결국 상대를 진심으로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이는 이미 ‘포용’이라는 이름의 단단한 집을 짓고 있다. 나나의 지성이 지도를 읽는 법이라면, 내 아이의 감성은 길 없는 곳에서 사람을 모아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쪽에 가깝다. 영화 속 요원들이 결국 국가라는 조직을 떠나 ‘이름 없는 개인’으로서 자유를 찾아가는 장면을 보며, 아이에게 남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영화의 막이 내리고 적막한 거실에 앉아 다시 생각해 본다.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총도, 정보도 아닌, 어떤 폭풍 속에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그것은 삶에서 예상치 못한 순간마다 꺼내 쓸 수 있는 하나의 예비비처럼 작용할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돌아올 아이의 웃음소리가 문득 떠오른다. 세상을 읽는 힘과 사람을 품는 온기가 함께 자라난다면, 그것만으로도 아이의 삶을 버텨낼 기반은 충분해 보인다. 언젠가 더 거친 세상을 마주하더라도, 그 안에서 스스로 길을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런 의미에서 내 아이는 이미, 가장 따뜻한 ‘휴민트’로 자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