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케이팝 데몬 헌터의 성공은 단순히 하나의 작품이 히트한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비록 한국 업체가 만든 작품은 아니나 이 작품의 성공으로 인해 많은 스튜디오들이 다시금 창작 애니메이션에 대한 노력을 하여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을 노리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다양한 글로벌 타깃 애니메이션들이 기획 단계부터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과거에는 국내 시장을 우선으로 기획하고 나중에 해외 진출을 고려했다면, 이제는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콘텐츠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야심 찬 프로젝트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제작비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글로벌 수준의 퀄리티를 맞추려면 국내 투자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결국 해외 투자사들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
해외 투자에서의 필수 불가결한 단계가 마켓에서의 투자 피칭이다. 그리고 실수 없이 준비해야 할 것이 피칭 스크립트이다.
모든 피칭은 영어로 진행하여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기획안이라도 언어의 벽 때문에 그 가치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면 투자 유치는 물 건너간 일이 된다. 특히 애니메이션은 시각적 매체이지만, 투자 단계에서는 스토리텔링의 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투자자들은 완성된 영상을 보고 투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서와 스크립트를 통해 작품의 잠재력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영어 스크립트가 있으면 해외 투자사들이 작품의 스토리 구조, 캐릭터의 매력, 대화의 재미 등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번역된 개요나 시놉시스만으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작품의 톤 앤 매너나 유머 코드까지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해외 투자사를 상대로 피칭할 때는 한국 투자사와는 완전히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몇 가지 핵심 포인트들을 공유해 보겠다.
문화적 차이를 고려한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한국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문화적 요소들이 해외에서는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위계질서나 집단주의적 사고방식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요소들을 무작정 제거할 필요는 없지만, 해외 투자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적절한 설명이나 맥락 제공이 필요하다.
숫자로 말하는 습관을 기른다
해외 투자사들은 감정보다는 데이터를 중시한다. "재미있을 것 같다"라는 막연한 표현보다는 "타깃 연령층 6-11세에서 90% 이상의 긍정적 반응을 보인 유사 콘텐츠들"처럼 구체적인 수치와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글로벌 트렌드와의 연결점을 찾는다
해외 투자자들은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참조점을 원한다. "한국의 독특한 정서"보다는 "포켓몬의 수집 요소와 마블의 액션을 결합한"처럼 이미 성공한 글로벌 콘텐츠와의 비교를 통해 설명하는 것이 이해하기 쉽다.
제작 역량을 구체적으로 어필한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기술적 역량은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막연히 "기술력이 뛰어나다"라고 하기보다는 "디즈니, 넷플릭스와 협업 경험이 있는 스튜디오"처럼 구체적인 크레디트를 제시하는 것이 신뢰도를 높인다.
수익 모델을 명확히 제시한다
해외 투자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이다. 방송권 판매, 머천다이징, 스트리밍 플랫폼 라이선스, 게임화 등 다양한 수익원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각각의 예상 수익까지 보여줄 수 있다면 더욱 좋다.
리스크 관리 방안을 준비한다
모든 투자에는 리스크가 따른다. 이를 감추려 하기보다는 예상되는 리스크들을 먼저 언급하고, 각각에 대한 대응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오히려 전문성을 보여준다. "제작 지연 시 백업 스튜디오 확보", "타깃 시장 반응이 예상과 다를 경우의 피벗 전략" 등을 미리 준비해 두면 좋다.
질의응답 시간을 충분히 활용한다
한국에서는 발표 후 질문이 많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해외에서는 질의응답이 실질적인 협상의 시작이다. 예상 질문들을 미리 준비해 두고, 질문을 받는 것을 반기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가상의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를 가지고 투자 피칭 스크립트를 작성해 보았다. 참고가 되면 좋겠다
[Animation Investment Pitch Script - English Ver.]
1. Opening Greeting
Good morning, everyone.
My name is [James Park], and I’m the Executive Producer at BlueDot Animation Studio, with over 20 years of experience in global animation content production and licensing. Thank you for giving me the opportunity to introduce our latest IP, which we strongly believe has global franchise potential.
2. Project Overview
Let me introduce our new animation series titled “Lumi & the Dream Explorers.”
It’s a 2D digital animation targeting kids aged 6 to 11, with a total of 13 episodes, each running for 22 minutes.
3. Story Summary
Lumi & the Dream Explorers follows a curious light spirit named Lumi, who travels across children's dreams to help them overcome fears, anxieties, and self-doubt.
Each episode takes place in a surreal dream world where Lumi and her team help one child regain confidence through playful adventure, emotional empathy, and teamwork.
4. Market Position & Benchmark
We designed this show to combine the emotional storytelling of Inside Out with the fantasy appeal of My Little Pony.
The themes of emotional growth and dream-world adventure make it universally relatable and perfect for transmedia expansion – books, games, and toys.
Based on our market research, over 30 global broadcasters are actively seeking animation IPs with emotional wellness and diversity at their core.
5. Production Plan & Budget
The production will take 14 months with a total budget of $2.8 million USD for Season 1.
We are co-producing with a Korean animation studio for pre-production and a Canadian partner for final compositing and post-production.
Our studio holds exclusive global IP rights.
6. Investment Proposal
We are seeking an investment of $1.4 million USD, which covers 50% of the total production cost.
In return, we offer the following profit-sharing model:
50% of international distribution sales will go to investors until ROI is recovered.
After breakeven, investors receive 30% of net profits from licensing, merchandising, and secondary revenues.
Investors will also have the right of first refusal for Season 2.
7. Traction & Validation
We have already secured Letters of Interest from two European buyers and are currently in discussion with a major OTT platform in Asia.
Our teaser video has been selected at the Annecy MIFA Pitch and received positive reviews from international buyers.
8. Why Invest?
We believe Lumi & the Dream Explorers stands out for three reasons:
Emotionally resonant storytelling that travels across cultures
Scalable IP with strong merchandising potential
Experienced global team with proven track records
9. Closing
Thank you for your attention.
We are currently offering early investor packages and co-production credit opportunities.
I’d love to take your questions and share more details, including our production bible and teaser footage.
Let’s build something global — together.
상기 흐름으로 발표를 하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모두 들어가 있을 것이다.
수많은 프로젝트 해외 피칭을 보면서 우리 업체들이 한 피칭중 아쉬웠던 점을 몇 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① 기술력 과시에만 집중하는 프레젠테이션
한국 애니메이션의 뛰어난 기술력은 분명한 강점이다. 하지만 많은 회사들이 화려한 기술 데모에만 집중하다가 정작 중요한 스토리와 캐릭터의 매력을 제대로 어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투자자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얼마나 예쁘게 그릴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이 스토리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가"이다. 기술은 스토리를 뒷받침하는 도구일 뿐, 그 자체가 투자 결정의 핵심 요소는 아니라는 점을 놓치는 것이다.
② 모호한 타깃 오디언스 설정
"전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라는 표현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해외 투자자들에게는 이런 애매한 타깃 설정이 오히려 마케팅 전략의 부재로 보인다.
성공한 글로벌 콘텐츠들은 모두 명확한 주 타겟층을 가지고 있다. 포켓몬은 6-11세, 심슨 가족은 18-34세 성인층처럼 말이다. 물론 실제로는 더 넓은 연령층이 시청하지만, 마케팅과 제작 방향은 명확한 타깃을 기준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③ 국내 성과만으로 글로벌 어필 시도
"한국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거나 "국내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높다"는 식의 어필은 해외 투자자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한국 시장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에게는 오히려 "그래서 글로벌 시장에서는 어떨 것 같은데?"라는 의문만 남긴다.
대신 "한국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일본 시장에서도 테스트해 본 결과" 같은 식으로 단계적 확장 전략을 보여주거나, 해외 시장 조사 결과를 함께 제시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 있다.
④ 수익 모델에 대한 막연한 접근
"캐릭터가 인기를 얻으면 굿즈 판매로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식의 희망적 추측은 투자자들을 설득할 수 없다. 구체적인 수익 채널별 예상 매출, 시장 진입 전략, 경쟁사 분석 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⑤ 질문에 대한 방어적 태도
한국의 회의 문화에서는 질문이 비판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지만, 해외에서 질문은 관심의 표현이다. 하지만 많은 한국 회사들이 투자자들의 질문을 받을 때 방어적으로 반응하거나, "그건 나중에 해결할 문제"라며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실제로 한 회사는 "제작비가 예상보다 많이 들 것 같은데 어떻게 관리할 계획인가?"라는 질문에 "한국 애니메이터들은 야근을 잘하니까 괜찮다"라고 답해서 투자자들을 당황시킨 적이 있다.
⑥ 언어적 한계를 준비 부족으로 덮으려는 시도
영어가 부족한 상황에서 통역에만 의존하거나, 준비되지 않은 즉석 영어로 중요한 내용을 전달하려다 오해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핵심 메시지는 반드시 정확한 영어로 스크립트를 준비하고,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도 미리 영어로 연습해둬야 한다. 언어 실력이 부족하다면 전문 통역사를 활용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이런 실수들을 미리 알고 준비한다면, 한국 애니메이션의 진정한 경쟁력을 해외 투자자들에게 제대로 어필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강점은 살리되, 글로벌 시장의 눈높이에 맞는 전략적 접근이다.
애니메이션 산업의 글로벌화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케이팝 데몬 헌터가 보여준 성공 사례는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더 많은 한국 애니메이션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 첫걸음이 바로 제대로 된 영어 스크립트와 효과적인 피칭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모쪼록, 다양한 한국의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들이 글로벌 마켓에서 보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