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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데몬헌터스와 킹오브킹스에 대한 부러움과 부끄러움

케이팝 데몬헌터스(케데헌)와 킹오브킹스의 글로벌 성공에 따라 나에게도 여러 곳에서 의견을 묻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오래간만에 애니메이션 장르가 주목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즐겁다.

그런 대단한 프로젝트들이 우리 한국에서 제작하거나, 배급했으면 좋았겠다는 의견도 많았다.

다양한 애니메이션 프로젝트의 제작과 투자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 왔고, 많은 프로젝트의 투자 타당성 심사등에도 참여하는 나에게도 정말 많은 반성할 점을 주는 기회였다.


케데헌은 사실 한국 회사에 투자 제안이 왔었고, 킹오브킹스 역시 한국 회사에 배급 요청제안을 했었다. 하지만 거절당했다.

많은 이들이 거절한 담당자의 콘텐츠를 보는 눈을 원망하기도 하고, 책임을 묻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20년 이상 콘텐츠 사업을 해온 내 눈은 어땠을까? 나는 그들이 놓친 기회를 비판할 수 있을까?


1. 100% 거절했을 콘텐츠, 그러나 성공의 역사를 쓴 두 프로젝트


모든 성공한 콘텐츠의 이면에는 수많은 '거절'의 흔적이 남아있다. 제작자의 책상 위에는 재정적 어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만이 가득했을 것이다. 반면, 투자자나 배급사의 책상 위에는 안정적인 수익을 약속하는 수많은 사업 계획서와 함께, 가끔은 너무나도 황당해 보이는 아이디어들이 올라올 것이다.

만일 내가 상기 성공한 두 콘텐츠의 투자나 배급, 혹은 지원사업을 제안받은 담당자 라면 투자, 배급, 지원사업을 통과를 시켰을까?

당시의 나는 그 아이디어들을 가차 없이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황당한 아이디어'들은 훗날 전 세계를 열광시키는 콘텐츠가 되었다. 모든 콘텐츠는 '성공 공식'을 따라야 한다고 믿었던 나의 통념을 완전히 깨부순 두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이다.


2. K-POP 3D 애니메이션, 투자자의 논리를 산산조각 내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바로 <K-팝데몬헌터스>이었다. 5년 전, K-POP을 기반으로 3D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제안을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투자자라면 냉정하게 이렇게 분석했을 것이다.


- 시장성 불확실성 :

K-POP의 주력 소비층은 10~20대 여성 팬덤이었다. 3D 애니메이션의 주력 소비층과는 명백히 달랐다. 두 시장의 교차 지점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거액의 제작비를 투자하는 것은 엄청난 리스크 일 것이다.

애니메이션 팬이 K-POP을 좋아할지, K-POP 팬이 애니메이션에 열광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 기술적 리스크:

3D 애니메이션은 초기 기술 개발 비용이 막대하다. 일반적인 3D기술 수준으로는 K-POP 아이돌의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자연스럽게 구현하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일 것이다. 모션 캡처나 렌더링 기술 등 여러 난관을 극복해야 했고, 이는 곧 제작비 상승으로 이어지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3D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분야이다. 몇 년 전에 만든 3D 영상이 촌스러워 보이는 장르이다.

제작기간 중에 이미 촌스러워 보이는 현상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 IP 확장성 회의론:

투자 심사에서는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Use)'를 통한 IP 확장성을 중요하게 본다. 하지만 K-POP과 애니메이션의 결합은 기존의 성공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2차, 3차 저작물로의 확장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아이돌 굿즈와 애니메이션 굿즈는 전혀 다른 시장이었고, 이 둘을 하나로 묶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시도처럼 보였을 것이다.


- 제작비의 회수 확률:

케데헌의 제작비는 한화 1천억 원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다. 애니메이션 퀄리티를 보면 그럴만하다. 하지만, 그 돈을 들여서 만들어도 도저히 그 돈을 리쿱할 방법이 나한테는 안 보인다.

한국에서는 80분 애니메이션을 제작한다고 하면, 아마 60억 원 이상 제작비 써내면 환자 취급을 받을 것이다. 1천억 원은 한국에서 애니메이션 사업 하는 사람들이 본적도, 만져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는 돈이다.

들은 적도 없는 투자비의 리쿱 계획을 어떻게 세운다는 것인가

그 받은 60억원도 어떻게든 사업적 적자의 위험을 헷징 하기 위해서 중국 OTT 사에 재투자를 제안했을 것이다. 그 경우 중국에서는 중국 문화를 넣어달라고 했을 것이다. 그럼 그 케데헌은 마라탕, 중국만두, 베이징덕, 치파오 입은 캐릭터들이 많이 나오는 콘텐츠가 될 것이다.


이런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을 거쳐, 케데헌은 투자 담당자의 책상에서 내려와야 마땅했다. 하지만 그 프로젝트는 '버츄얼 아이돌'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며 전 세계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결국 투자의 성공을 증명했다.


3. 종교 애니메이션, 배급 시장의 금기를 깨다


두 번째 프로젝트는 '킹오브킹스'였다. 종교를 주제로 한 장편 애니메이션의 배급을 제안받았을 때, 배급 담당자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난색을 표했을 것이다.


- 흥행 불확실성:

배급사는 최대한 많은 관객을 확보해야 한다. 종교라는 주제는 특정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열광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지만, 그 외의 대중에게는 진입 장벽이 높았다. 보편적 흥행을 기대하기 어려웠고, 이는 곧 극장 상영을 통한 수익 창출이 어렵다는 의미였다.

한국에도 크리스천이 정말 많지만, 아무리 많아도 전 국민의 30% 일 것이다. 나머지 70%를 버리는 애니메이션을 배급하고자 하는 배급사는 없을 것이다.


- 사회적, 정치적 민감성:

종교는 사회적,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와 얽히기 쉽다. 배급 과정에서 특정 종교에 대한 편향성 논란이 불거지거나, 다른 종교 단체로부터 반발을 살 경우 배급사의 이미지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었다. 이러한 잠재적 위험은 배급 결정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콘텐츠 제작자나 배급사는 관성과 같이 종교, 정치, 정치적 올바름등의 시류성 주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 글로벌 시장의 제약:

각 국가마다 다른 종교적 배경과 문화적 금기가 존재한다. 한 국가에서 성공하더라도 다른 국가에서는 배급이 어려울 수 있었고, 이는 글로벌 시장으로의 확장에 큰 제약이 되었다. 배급 담당자 입장에서는 '안전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했다.

당시의 배급 담당자들 역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 것이다. 종교 애니메이션은 '타부'였고, 그들의 판단은 보수적이었지만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킹오브킹스'는 보편적인 휴머니즘과 희생이라는 메시지를 통해 종교적 장벽을 허물었다. 특정 종교의 교리보다는 삶과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며 전 세계인의 공감을 얻는 데 성공했다.


4. 합리적 판단의 한계, 그리고 크리에이터의 통찰력


두 사례는 합리성과 논리를 기반으로 한 의사결정이 때로는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투자자와 배급사는 데이터와 시장 트렌드를 분석하고,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데 익숙하다.

이러한 접근은 보편적인 성공을 예측하는 데 효과적이지만, 혁신적인 콘텐츠의 가능성을 알아보는 데는 한계를 드러낸다. 그들은 과거의 성공 공식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려 했지만, 이 두 프로젝트는 그 공식을 완전히 무시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한국에서 애니메이션 제작을 하는데 필수인 정부지원사업의 경우도 단언하건대, 상기 두 프로젝트를 누군가 가져와서 제안했다고 한다면 높은 확률로 지원을 받지 못할 것이다. 최소한 나는 만약 내가 상기 프로젝트를 정부지원사업 심사위원 앞에서 피칭해야 한다면, K-팝이나, 종교와 같은 주요 테마를 절대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콘텐츠는 제작자의 통찰력과 집념에서 탄생한다. '케데헌' 제작자는 K-POP 팬덤의 잠재력을 애니메이션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고, '킹오브킹스' 제작자는 종교적 메시지를 넘어선 보편적인 감동이 전 세계 관객에게 통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들의 크리에이티브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세상에 없던 이야기를 만들어내겠다는 강한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콘텐츠를 심사하고 판단하는 일이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가진 지식과 경험이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심사자의 역할은 '가능성'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가능성을 뚫고 나아가려는 크리에이터의 '집념'과 '확신'을 읽어내는 능력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역시 크리에이티비티를 수익성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힘들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뼈저리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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