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는 키즈스크린서밋과 변화하는 애니메이션 투자 시장

키즈스크린 서밋(Kidscreen Summit)은 지난 수십 년간 글로벌 키즈 콘텐츠 산업에서 '기회의 장'이자 '민주적인 비즈니스 플랫폼'으로 기능해 왔다. 이 행사가 산업 내에서 가졌던 독보적인 성격과 특히 중소형 스튜디오에 제공했던 '수평적 네트워크'의 가치가 켰다고 생각한다.

키즈스크린서밋은 일반적인 종합 콘텐츠 마켓(MIPCOM 등)과 달리, 오직 '키즈 및 청소년' 타깃의 콘텐츠에만 집중하는 '버티컬 마켓'이었다. 애니메이션 제작사, 방송사, OTT 플랫폼, 배급사, 라이선싱 에이전트, 완구 기업 등 키즈 산업의 모든 가치 사슬이 한 곳에 모이는 '글로벌 허브' 역할을 수행했다.

대규모 부스 전시 중심의 박람회와 달리, '미팅과 네트워킹' 그 자체에 최적화된 구조를 가졌다. 주로 마이애미의 대형 호텔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개최되어, 참가자들이 물리적으로 밀집된 상태로 3~4일간 집중적인 소통을 이어가는 '캠프형 마켓'의 성격이 강했다.

키즈스크린서밋이 업계에서 사랑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규모의 격차를 뛰어넘는 '접근의 평등성'에 있었다.

행사의 대표적 프로그램인 '스피드 피칭'은 무명의 중소 스튜디오 기획안이 디즈니(Disney), 넷플릭스(Netflix), 니켈로디언(Nickelodeon)과 같은 글로벌 거대 기업의 '커미셔닝 에디터(Decision Maker)'에게 직접 전달될 수 있는 통로였다. 예약만 성공한다면, 작은 스튜디오의 대표가 세계적인 플랫폼의 임원과 1대 1로 마주 앉아 5~10분간 자신의 비전을 설명할 기회를 보장받았다.


키즈스크린서밋은 대기업 임원들이 부스 안에 숨어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공용 라운지, 조식 식당, 심지어 이동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글로벌 플랫폼의 구매 담당자를 만날 수 있었다. 이러한 '물리적 근접성'은 자본력이 부족해 대형 부스를 꾸릴 수 없는 중소 스튜디오들에게 '명함 한 장으로 일궈내는 역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유일한 시장이었다.

애니메이션 산업은 장기 프로젝트가 많아 '사람 대 사람의 신뢰'가 매우 중요하다. 키즈스크린서밋은 중소 제작사가 대기업 담당자에게 단순히 메일을 보내는 수준을 넘어, 자신의 열정과 전문성을 '직접 증명'함으로써 장기적인 파트너십의 물꼬를 트는 '신뢰의 관문'이었다.


그런 키즈스크린이 30년 만에 문을 닫는다. 이건 단순한 이벤트 하나 사라진 게 아니라, 글로벌 키즈 애니메이션 산업 구조가 완전히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이러한 변화에서 느끼는 글로벌 산업 인사이트는 다음과 같다.

시장 통합(consolidation)이 핵심 원인이다. 대형 스튜디오와 스트리머(넷플릭스, 디즈니+, 아마존 등)가 대부분의 콘텐츠를 장악하면서 바이어가 줄고, 자본이 몇몇 거대 플레이어에게 집중됐다. 과거처럼 수많은 독립 제작사가 다양한 방송사·채널에 피칭하고 딜을 따내기 어려워졌다. 예산도 타이트해졌고, 프로젝트 수도 줄었다.

코로나 이후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됐다. 줌 피칭, 이메일·슬랙 협상, 연중 내내 이뤄지는 딜메이킹이 일상이 됐다. 비싼 여행비·참가비를 들여 오프라인 행사에 모일 필요가 사라진 거다. 이 이벤트는 수천 명이 모여 네트워킹하고 프로젝트를 팔던 허브였는데, 이제 그 역할이 약해졌다. 특히 중소·독립 스튜디오와 국제 제작사에게 타격이 크다. 그들은 대형 이벤트에서만 다양한 바이어와 효율적으로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키즈 콘텐츠 수요 자체는 여전히 증가 추세다. 2026년 글로벌 키즈 콘텐츠 지출이 소폭 오를 전망이고, SVOD(넷플릭스 등) 지출도 늘어난다. 하지만 돈이 기존 IP 중심으로 몰리고, 신규 오리지널은 더 보수적으로 투자된다. AI 도입, 숏폼(유튜브·틱톡) 경쟁, 웹툰·애니메이션 IP 라이선싱 확대 같은 새로운 흐름도 보인다. 오프라인 대형 서밋은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중이다. 앞으로는 더 작고 타깃화된 모임이나 하이브리드 디지털 마켓이 대체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꽤 직접적이다.

한국은 키즈스크린 서밋에서 콘진원 공동관을 운영하며 북미 진출의 주요 창구로 썼다. 매년 수백 건 상담과 수천만 달러 규모 수출 상담 실적을 냈다. 2025년에도 920억 원대 상담이 나왔다. 중소 제작사들이 북미 바이어와 직접 만나 공동제작·라이선싱·배급 기회를 잡는 자리였다. 이게 없어지면 그런 기회가 줄어든다.

한국 키즈 애니는 이미 IP 중심으로 강점이 있다(핑크퐁, 뽀로로, 하추핑 등). 웹툰·애니메이션 IP를 활용한 글로벌 라이선싱과 스트리밍 직진출이 더 중요해진다. 대신 MIPCOM, MIPTV, Annecy, 또는 아시아 지역 이벤트(홍콩 필름마켓 등), Banff World Media Festival 같은 대안 행사를 더 적극 활용해야 한다. 디지털 피칭 플랫폼과 직접 네트워킹(링크드인, 슬랙 그룹, 온라인 마켓플레이스)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결과적으로 한국 산업은 두 갈래로 나뉠 가능성이 크다.

대형사나 강한 IP 보유 사는 스트리머와 직접 계약하거나 자체 플랫폼으로 버틴다.

중소 스튜디오는 네트워킹 기회 감소로 해외 진출 문턱이 높아져, 국내 방송·OTT 의존도가 커지거나 합병·도태 압력을 받는다.


전체적으로 키즈스크린서밋 폐쇄는 “오프라인 대형 마켓 시대 끝”을 상징한다. 한국도 이제 디지털 네이티브 방식선택적 오프라인 전략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놀라운 일이지만, 이미 3~4년 전부터 예고된 변화다. 업계는 이걸 기회로 삼아 더 효율적인 글로벌 영업 모델을 빨리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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