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숙제를 앞두고
저번주 목요일, 경기도에서 주최하는 '더불어 숲' 행사에 다녀왔다.
자조모임을 참여하다 알게 된 행사인데 경기도 자살 유가족이 한 곳에 모여 맛있는 것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아로마 테라피도 하는 그런 행사였다.
갈까 말까 고민을 하다 신청 시기를 놓쳤지만 담당 선생님께서 신경 써주셔서 참여를 할 수 있었다.
보건소에 모여 5명, 4명 팀을 나누어 차에 탑승했다.
이동하던 중 기사님께서 질문을 하셨다.
"오늘은 어떤 행사인 건가요?"
담당 선생님께서는 우리에게 재질문을 하셨다.
"여러분, 기사님한테 말씀드려도 될까요?"
감사한 질문이었다.
선생님의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모두 흔쾌히 좋다고 대답을 했고, 선생님은 기사님께 답을 해드렸다.
"가족이나 주변인의 자살로 자살 유가족이 된 분들의 모임이에요."
난 사실 걱정을 했다.
가벼운 궁금증으로 질문을 한 기사님이 사색이 되어 말 수가 없어지면 어쩌지?
'자살'이라는 것을 너무 무겁게 여긴 나머지 우리를 불편해하면 어쩌지?
하지만 기사님의 대답은 나의 걱정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아 그렇군요. 오늘 무슨 행사인지 궁금했어요. 저는 자폐가 있는 자녀를 키우고 있어요. 저와 같은 부모를 위한 모임도 있어요."
뜻밖의 대답이었다.
그런 모임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어 신기하기도 했고 저마다 아픈 손가락을 가지고 사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할아버지가 자살을 하기 전까지는 세상에 큰 관심이 없던 나였다.
깊은 슬픔을 경험한 이후 보이는 것들.
깊은 슬픔을 느낀 사람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서로의 존재들.
종류는 다른 슬픔이었겠지만 동지애가 느껴졌달까.
이동하는 1시간 내내 웃음꽃이 피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셨고 나는 뒷좌석에서 조용히 들으며 웃고 있었다.
행사장에 도착했더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와있었다.
듣기론 200명 정도의 자살 유족들이 모였다고 들었다.
말도 안 되는 숫자다.
200명이라니.
200명의 자살 유가족을 만나는 공간이라니.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웃으며 대화를 하고 쿠키를 먹고 있지만 어딘지 모를 멍한 표정.
나는 저 표정이 뭔지 너무 잘 안다.
삶의 의미를 잃어본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눈빛.
곧 행사가 시작되었고 호텔 뷔페에서 맛있는 음식도 양껏 먹었다.
다른 유족들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나까지 행복했다.
그러다 마음 한편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먹을 자격이 있는가.'
나의 죄책감이 만들어 낸 소리겠지.
열심히 먹고 있지만 눈물과 함께 음식을 꾹꾹 삼키는 걸 알고 있기에 행복한 마음은 금방 응원하는 마음으로 변했다.
중간중간 화장실에 갈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꿈같았고 위로가 되었다.
식사 이후에는 특강을 듣고 정해진 그룹끼리 모여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조모임을 진행하듯 대화를 한 후에는 소감 발표 시간이 있었다.
번쩍 손을 들어 소감을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부끄럽고 용기가 나지 않아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었다.
다섯-여섯 명 정도 소감을 발표했을까, 진행자가 물었다.
"진짜 마지막 소감발표 들어볼게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분 계실까요?"
아.. 마지막.
그 단어에 나도 모르게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수줍게 일어나 마이크를 받고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2조였기에 가장 앞에 있는 테이블이었는데 넓은 콘퍼런스 방에 혼자 서 뒤를 돌아보니 20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날 보고 있었다.
이내 나의 시선은 바닥에 떨어졌다.
마이크를 입에 대고 조용히 말을 시작했다.
"저는.. 작년에 할아버지를 보냈습니다. 부모님도 아니고, 저의 자식도 아닌데 그런데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곳엔 다양한 유족분들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이렇게 힘들었는데 다들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 상상도 안 갑니다.
처음에는 주변인들에게 할아버지의 자살을 숨겼습니다. 사인을 숨겼어요.
그러다 주변인들에게 할아버지가 자살을 했다고 말하기 시작했어요. 그게 두 번째 단계였습니다.
세 번째 단계는 자조모임에 참여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오늘 보니 다들 대화도 잘하고 잘 웃으시고 뷔페에서 음식도 맛있게 드시더라고요.
하지만.. 혼자 있는 집에서는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실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온 모든 분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몇 초간 정적이 흐르더니 다들 박수를 치고 사회자는 진행을 이어갔다.
뒤죽박죽 횡설수설 울먹이며 한마디 한마디 이어갔지만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는 후련함은 나를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눈물을 훔치며 다시 자리에 앉으니 주변에 있던 분들이 응원을 해주셨다.
"정말 멋있어요!"
"오늘 꼭 필요한 말이었어요. 이 자리에 온 게 대단하다는 말 정말 필요했어요."
사람들에게 내 마음이, 의미가 전해졌는지 알 수 없었는데 응원들 덕분에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내가 내뱉은 소감은 나에게 한 말이기도 했고 컨퍼런스 룸에 있던 다른 유족들에게 한 말이기도 했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있는 모든 자살유가족에게 한 말이기도 했다.
난 사실 요즘 움직이지 않는 돌이 되었다.
그림도 그리지 않고, 학도 접지 않는다.
글도 쓰지 않고, 미술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는다.
할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정리가 되어가 이제 수용의 단계에 돌입했다.
정신없이 나를 휘젓던 혼란의 시기는 끝난 것이다.
이제 편한 날만 남았구나 라는 생각도 잠시.
정말 큰 숙제를 앞두게 된 것이다.
'나'
유소년 때는 엄마의 폭언과 폭력, 가족과의 관계에서 오는 고립감,
청소년 때는 유학생의 외로움과 가디언의 억압,
대학생 때는 방황의 시기와 홀로 서는 고통,
성인 때는 잃어버린 무언가를 후회하는 매일매일의 시간들.
수십 년의 괴로운 세월을 버티기 위해 나는 나 자신과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고 저절로 내면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가 날 이해해주지 못했다면 난 아마 돌아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내면을 들여다볼 줄은 알았지만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게 내가 앞둔 크디큰 숙제이다.
지금까지는 내면의 감정들을 다룰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왜 매일같이 괴롭고 우울한 지조차 몰랐으니까.
그냥 스스로를 남들보다 많이 예민하고 유별나고 특이한 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 내면의 문은 너무나도 많이 열려버렸고 이젠 마주해야만 할 때가 왔다.
할아버지 생각만 하며 근 1년간 열심히 달려왔는데 모든 게 끝난 줄 알았더니 더 크고 어려운 숙제가 내 앞에 떡하니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니 움직이지 않고 웅크려 일본 애니 진격의 거인만 보고 있다.
두렵다.
나의 깊은 내면이 나는 두렵다.
아마도 심리상담을 함께 겸하며 이 여정을 계속하게 될 것 같다.
오늘 오랜만에 글을 씀으로 인해 스스로 용기가 조금은 생겼길 바라며 횡설수설한 오늘의 글을 마무리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