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치료 보조 봉사
6월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집 근처 노인복지관에서 노인분들을 대상으로 미술치료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주 1회 참여해서 그분들과 말벗이 되어드리고 그림 그리시는 걸 보조해 드리는 봉사이다.
오늘로 세 번째 참여를 했다.
오늘은 특히 글로 남기고 싶은 일이 있어 봉사가 끝나자마자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켰다.
안개가 낀듯한 강, 저 멀리 있는 회색 다리, 그 뒤 무성한 나무들.
가장 앞에는 빨간 꽃이 한두 송이 피어있다.
위의 설명과 같은 사진을 12호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려낸다.
가벼운 가이드 정도만 따두면 어르신이 슥슥 채우신다.
가장 멀리 있는 하늘을 채우고, 가장 넓은 면적인 강을 채우고, 수풀을 채우고, 다리를 그린다.
복지사분이 나중에 어르신들의 그림들로 전시를 할 예정이라 작품의 이름을 정해야 한다고 했다.
회색 다리의 색을 칠하고 있는 어르신께 여쭤보았다.
"어르신~ 이거 그림~ 작품명을 정하래요~! 그림 이름! 이름 정해주세요~!"
어르신은 살짝 당황한듯하지만 이내 호기로운 표정으로 대답하셨다.
"이름을 정해야 해? 난 몰라~! 선생님이 정해줘~!"
"안돼 안돼~! 어르신이 다 그린 거잖아요~! 그림 작가가 이름을 정해야지~!!"
어떤 이름을 해야 할지 서로 후보를 정하던 중 다른 봉사자분이 핸드폰을 들고 우리 테이블로 오셨다.
GPT를 이용해서 그림 제목을 한번 정해보자고 하셨다.
사진을 찍어 GPT에 보내서 답을 받았는데 반 고흐가 이 그림을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한 대답이었다.
작품 제목 제안 :
<<고요한 날, 내 마음의 물결>>
"나는 풍경을 보지 않았다.
나는 풍경을 느끼고, 흔들리는 내 마음을 그렸다."
이 그림은 물이 아니라, 마음의 진동입니다.
어르신께 GPT의 답을 읽어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셨다.
그리고 이내 우셨다.
모두가 놀랐다.
"어르신! 우셔요??"
"오래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어 그래.. 내가 그림을 그리면 우리 손녀들이 참 좋아해. '진짜 할머니가 그렸어요?' 한다고. 내가 이런 사진 속 풍경을 좋아해.. 너무 감사해. 이런 느낌을 좋아해 내가.."
나는 풍경을 느끼고, 흔들리는 내 마음을 그렸다.
그림으로 인해 다시금 연결되는듯한 사람과의 온기, 지금까지 외롭고 흔들렸던 어르신의 마음들.
아마 길고 길었던 삶의 나날들을 위로받는 느낌 아니었을까 감히 상상해 본다.
어르신께 더 좋은 말들을 해드리고 싶었지만 그만큼 오래 살아보지 않은 나이기에 서투른 말 한마디로 오히려 상처가 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르신 옆에서 그림을 채워나갔다.
그러나 문득 우리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그냥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우리 할아버지는 서예를 참 좋아하셨는데..
좋은 말 몇 개만 써달라고 할 때도 있었지.
그때 참 좋아하셨는데.
참 좋아하셨는데..
인생은 정말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평온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충만하기도 하고,
죽고 싶기도 하고 살고 싶기도 한 듯하다.
숨도 쉬기 어려울 만큼 힘들던 그때의 나는 예술 속에서 다시 살 수 있었다.
괴로우면 반고흐에 대해 공부했고, 미친 듯이 불안하면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다리가 퉁퉁 붓고 허리가 쑤셔도 미술관, 박물관에 들러 두 번 세 번 작품을 관찰했다.
유튜브로 미술 강좌를 듣고, 책을 읽고,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나는 살아낼 수 있었다.
배우면 배울수록, 경험하면 할수록 예술이 주는 것들은 참으로 고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고귀함을 잘 살려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을 전달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