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식
나는 7년 동안 트레이너로 일을 했다.
운동을 지도하고 식단을 알려주는 사람.
당연히 나는 항상 좋은 몸을 유지하고 있었다.
매끼 양질의 단백질과 적당한 탄수화물 그리고 야채 많이.
탄탄하고 슬림한 몸을 가지고 있던 나는 옷을 사러 갈 때마다 점원들의 환호를 많이 들어봤다.
"어머 연예인이세요?"
"와 수영복 이렇게 잘 어울리는 손님은 또 처음이네요."
그때는 몰랐다. 내 몸이 예쁜 줄.
더 마르고 싶었고, 더 작아지고 싶었다.
170cm 되는 키에 체격이 있는 편이었는데도 바보처럼 S 또는 XS를 바라보고 있었고, 44 사이즈를 원하고 있었다.
피티자들이 식단을 잘 지켜내지 못하면 폭풍 잔소리를 했다.
뒤에서는 이런 생각도 했다.
'이렇게 쉬운 식단을 왜 지키지 못하는 걸까. 이해가 안 가네.'
할아버지가 자살하시기 몇 달 전 트레이너를 그만두고 재택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집에서 12시간씩 공부를 하다 보니 밥을 하는 것이 귀찮아졌다.
배달을 시켜 먹고, 라면을 끓여 먹다 보니 살이 조금씩 올랐다.
트레이너일 때보다 7킬로 정도 찌고 나니 왼쪽 팔에 콩알만 한 피지낭종이 두 개가 생겼다.
그리고 한동안 마른기침을 했다.
이비인후과에 방문하니 식단을 조절하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엔, 음식을 더욱 멈출 수 없었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드는 생각.
'할아버지에게는 맛없는 음식을 주더니 너는 이 맛있는걸 혼자 다 먹어?'
'할아버지도 라면 되게 좋아했잖아. 네가 못 먹게 한 거 기억나지?'
'할아버지는 굶다시피 하다가 스스로 돌아가셨어.‘
'넌 잘도 먹네.‘
'계속 먹어. 계속. 미친 듯이 먹는 거야 그냥.'
원래는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베이킹도 좋아하고 요리도 좋아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음식을 만드는 행위가 너무나도 귀찮고 하기 싫어졌다.
몇 달 동안 할아버지의 식단을 책임져서였을까?
내 음식은 사람을 죽인 음식이 된 걸까.
할아버지는 내 음식이 너무 맛이 없었겠지.
차라리 당뇨신장 환자용 도시락을 인터넷 주문해 드릴걸.
내가 요리한 것보단 더 자극적이고 맛있었을 텐데.
내가 날 위해 요리할 자격이 있을까.
좋은 것을 먹을 자격이 있을까.
전혀 모르겠다.
자격이 없다고 느낀다.
할아버지는 아프시기 전 내가 만든 일반식을 좋아하셨다.
한 번은 유튜브 쇼츠를 찍으려고 빨간 양념의 우족볶음을 해두었는데 냄비 앞에서 혼자 반이나 드셔 버렸다.
쇼츠에 올리기 좋은 큰 덩어리들을 다 드셔 버려서 짜증이 많이 났었다.
내가 만든 빵도 좋아하셨다. 특히 베이글을 정말 좋아하셨다.
한 번은 베이글 6개를 다 할아버지 방에 넣어드렸더니 바로 거실로 뛰쳐나와 너무 맛있다고 고맙다고 최고라고 하셨다.
오늘 어떤 안내문 앞에서 멍을 때리고 있었는데 초점이 안 맞는 내 눈엔 그 안내문에 "용서해 주세요."라고 쓰여있는 것 같았다.
다시 안내문을 보니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나는 용서를 바라고 있는 걸까.
그래서 음식으로 나를 벌주고 있는 것 아닐까.
할아버지를 못 먹게 했으면 나도 못 먹게 하며 벌을 줄 것이지.
왜 스스로에게는 먹는 걸로 벌주는 건지. 치사한 것. 겁쟁이.
트레이너를 그만둔 시점으로부터 1년 반정도가 지났다.
나는 현재 14키로가 쪘다.
저번달부터 다시 운동을 시작했고 어느 정도 감을 다시 찾았다.
하지만 음식조절이 너무나도 어려워 왜 이러지 생각하다 오늘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현대인들의 폭식 및 과식은 모두 스트레스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일이 끝난 후 자신에게 주는 보상으로 음식을 선택한다고 한다.
우울한 일상 속 유일하게 행복한 시간이란다.
나는 단지 그들처럼 보상의 느낌보단.. 위로, 체벌, 고통의 회피 및 상기인 것 같다.
배가 고프면 할아버지가 더 많이 생각나고, 할아버지가 배고파 괴로워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배가 터질 듯 부르면 야위어가던 할아버지에게 너무나도 미안해진다.
외로움도 한몫한다.
미국에서 유학할 때도 음식을 먹을 때만큼은 외로움을 잊고 행복했다.
혼자 있을 때의 자유로움은 음식을 폭식하게 만든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
여하튼 나는 매일매일 인스턴트 음식을 목구멍으로 꾹꾹 내려보낸다.
'인지'가 모든 문제의 첫 단추이다.
나의 폭식원인을 찾았으니 이제 '관찰'을 하면 된다.
충분한 관찰 후에는 여러 가지 '도전'을 하면 된다. 관찰을 통해 얻은 정보로 여러 가지 가설을 세워 다양한 시각으로 도전을 해보는 거다.
얼마나 걸릴지 몰라도 언젠간, 언젠간 '성공'하게 될 것이다.
다시 퉁퉁했던 사춘기 시절로 돌아간 내 몸. (그때보다 오히려 2킬로 더 나가는 중)
이번엔 더 진실되게 사랑해 주며 가꾸어보자.
즐기는 마음으로 할아버지를 보내드리면서 해보자.
마음 조급히 먹지 말고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