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나는 VIP가 된다

가는 곳마다 VIP로 대접받는 나.

by 비비안 정
"Hi, Vivian! Welcome back."




파리의 에펠탑, 영국의 빅밴, 베니사안의 운하, 미국의 헐리우드, 당신이 상상하는 온갖 꿈이 모여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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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태양을 삼켜버리면, 땅에서는 성대한 축제가 시작된다. -by Vivian-


어두워질수록, 화려해지는 곳, 동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는 이국적인 분위기에 더해 카지노보다 매력적인 볼거리들도 가득한 마카오는 내가 좋아하는 도시 중 하나다. 홍콩에서 직통 버스를 타면 집에서 베네시안 호텔 로비까지 1시간 40분이면 도착할 뿐만 아니라, 양질의 서비스를 홍콩 물가의 절반 가격으로 즐길 수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화려한 호텔이 밀집한 코타이 스트립 지역에서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낭만을 느낄 수있는 곳으로 유명한 베네시안 호텔에는 또 다른 숨겨진 보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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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Vivian-


바로 한국 관광객에게 너무 인기가 많아 한국어 메뉴판까지 등장시킨 중국 북방 요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식당 북방관이다. 대기 인원이 너무 많아 1-2시간 이상의 웨이팅이 있지만, 그 맛은 기꺼이 감수할만큼 가치가 느껴질 정도로 훌륭하다. 온라인 예약은 한 달 전부터 풀북이라, 대부분 워크인으로 기다리는 이곳을 나는 쉽게 들어간다. 게다가 남편 생일이라 하니, 디저트로 생일 케이크를 만들어 깜짝 파티를 서비스로 해 주기까지 한다.

tempImagencC1nN.heic 서비스로받은 서프라이즈 생일 축하 by Vivian


주변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직원들이 내 이름을 부르며 반겨주고 최상의 서비스를 받는 걸 부러워하며, 그저 나의 수완이 좋기 때문일 거라 생각하지만, 내 생각엔 다른 이유가 있다.


그 이유가 뭘까?

오늘 그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해외에 산 지 12년 째, 홍콩은 5번째 나라이다. 그 동안 무수히 많은 인종과 국적,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다 보니 정말 가지각색의 취향과 서비스를 경험해왔다. 그 중 고난이도를 꼽으라면 단연 캐리비안에 있는 섬나라, 나의 첫 해외 살이 트리니다드 토바고다. 왜일까? 고객은 왕이라 외쳐대는 한국에 살던 내가 처음 이 나라에서 접한 서비스는 버거킹에서 주문한 콜라를 나에게 던지던 직원이었다. 그 모습은 나에게 적지않은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한 직원은 살던 아파트의 주인에게 컴플레인을 강경하게 대응한 결과 그 집에서 쫒겨났다. 아마도 집주인은 '동양인이 감히 나한테 덤벼?' 정도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사실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게 왜 다짜고짜 불친절한 건지 매번 억울했지만, 상대적으로 큰 덩치에 주눅들어 찍소리도 못하고 가슴 속으로만 울분을 토해냈다. 대부분 구릿빛 피부에 풍만한 체형을 지녔는데, 왠만한 한국인은 그 옆에서 종이 인형 코스프레가 가능할 정도였다. 한국에서 본인이 뚱뚱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이 나라를 추천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오랜 식민 지배를 받아온 탓에 학교에서 주체성을 회복하고자 항상 당당하게 행동하라고 가르치는 데 그 배움이 이상한 데서 싹이 텄다는 것이었다.


백인들에게는 여전히 친절했지만, 그들에게 받아온 업악과 차별에 대한 불신과 분노는 동양인에게 방향을 전환한 듯 싶었다. 백인->트리니다드인->동양인 순이었다. 신기하게도 그들이 생각하는 동양인은 중국인이었다. 한국이 지금처럼 알려지지 않았던 2013년도에 왠만한 해외에 사는 한국인들은 그들의 눈에 다 똑같은 중국인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 나라에서 중국인들의 평판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돈을 벌기만 했지 잘 쓰지도 않고 악착같이 현지인들을 고용하고 무리하게 일을 시킨다는 이미지가 대부분이었기에, 그들의 눈에 나는 그런 중국인일 뿐이었으리라.


무인도에 떨어져도 살 방법이 있다는 말을 들을 적이 있는데, 그게 내 얘기가 될 줄이야. 시간이 지나자 나 또한 그들의 불친절함이 익숙해져버렸다. 영원히 힘들 것 같았던 나의 섬생활에도 마음 맞는 친구가 생기기 시작했고, 소소한 즐거움도 일상 속에서 꽃피었다. 아파트 직원들과도 친분이 두터워지기 시작했고, 더불어 사소한 도움을 주고 받는 일도 생겼다. 고마운 마음에 작은 선물과 카드를 적으려는데, 아뿔싸 !


이름을 모른다. 하..... 그렇게 몇 번이고 도움을 받고 인사를 주고 받으면서 나는 왜 그녀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는 것일까? 스물스물 나의 무심함이 부끄럽게 올라온다. 로비로 내려가 모르는 척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이 나라에 많은 성씨 이야기를 하다 자연스럽게 "아, 그렇지, 갑자기 니 이름이 생각이 안 나네? 뭐였지? " 라며 어렵게 그녀의 이름을 획득하고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이후로 나는 로비를 오고가며 인사할 때마다 그녀의 이름을 힘차게 부르며 말했다.

" 굿모닝, 페트리샤."

사실 자랑도 아닌데, 나는 어렵게 알게 된 그 이름을 뽐내고 싶은 마음에 괜시리 더 큰 목소리를 그녀의 이름을 쩌렁 쩌렁 울리도록 불러대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콘도에 살던 일본인 친구가 나에게 우리집 문앞에 청소를 누가 그렇게 깨끗하게 해 놓냐며 궁금해했다. '엥? 무슨 청소? 청소해야 하는 거였나?' 알고 보니 페트리샤는 알게 모르게 나와 우리 가족이 더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구석 구석에서 우리의 손과 발이 되어 주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로비로 내려가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묻자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돌아서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워서 고마워요.

무교인 나에게 하느님의 찬송가와 부처님의 종소리가 울린 순간이었다


이날부터였다. 누구를 만나든 명찰부터 살피는 습관이 시작되었다.

커피를 주문할 때도, 식당에 갈 때도, 티켓을 살 때도 담당 직원의 이름을 함께 부르며 고맙다고 인사를 전한다. 대부분은 흠칫 놀라곤 한다. 하지만 이내 그 놀라움은 더 나은 서비스로 나에게 되돌아온다. 이름을 기억하고 부른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감사의 의미가 담겨 있다. 사실 처음에는 이름을 몇 번 부르고는 다음 방문 때는 잊곤 한다. 문제는 상대방은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지간히 곤혹스러운게 아니었다. 그 뒤로는 휴대폰 메모장에 직원들의 인상착의와 간단한 내용을 적어두는 게 습관이 되었다.


사채업자가 돈 받으러 가는 것마냥, 나는 장부 대신 메모장을 펼친다. 오랜만에 들른 식당에서 직원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나는 vip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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