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툴고 어색한 초보시절을 귀하게 즐기세요.

어떤 작가님의 말 한마디가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있습니다. 감사합니다.

by 장보라

동네 도서관의 강좌 중에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네요. 글쓰기, 그림 그리기, 영상편집까지 세 가지를 배우는 클래스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소설 글쓰기 수업을 들어보고 싶어서 여기저기 검색을 하고 있었거든요. 현직 소설가, 그것도 약간 색깔이 있는 분이어서 그분에게 물어볼 것이 많았습니다. 그림 수업은 자신이 없었지만, 설렁설렁하면 될 것 같았고, 영상 편집은 (저도 좀 잘하는 부분이라) 강사님의 이력이 궁금함을 불러일으켰어요. 그래 신청하자.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한 수업은 글쓰기 수업 후에는 책을 만들고, 그림은 작품으로 도서관에 전시를 한다는 꽤 부담스러운 강의였습니다. 하지만 기획자님의 열정과 선생님, 학생들의 열의에 저도 좀 잘해보자는 마음을 가지고 시작했어요. 사실 동네에서 듣는 수업에 부담을 가지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그림을 그리게 된 날. 저는 정말 숨고 싶었습니다. 내 실력을 잘 알고 있는지라,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림을 그리게 된다는 건 정말 끔찍했어요. 그것도 전업 작가님 앞에서.


"어떡하지?"

"도망갈까?"

"이건 아니잖아!"


이런 생각을 계속하면서 황당해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같이 간 친구가 없었으면 슬~쩍 그만두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때 작가님이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처음을 즐기세요. 그것도 아주 귀하게. 절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입니다. 미술에 대한 지식이 쌓이고, 경험이 늘고, 전업작가가 되고 나면, 초보 시절의 그 느낌이 절대로 나지 않습니다. 그때처럼 막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되어서 아주 힘들어요. 창조성이 가장 높을 지금을 즐기세요. 다시 오지 않습니다."


더 멋지게 말하셨던 것 같아요. 그때 무언가 머리를 띵~ 친 것 같았습니다.

"아 그렇구나. 저분은 저런 생각을 하는구나. 오래 그림을 그린 분이 하는 말이니까, 나중에 나도 비슷한 생각이 나겠지. 믿어보자. 인정하자. 나는 당연히 초보다. 그러니 어떻게 한 듯 무슨 소용인가."





어느 날은 앞에 앉아있는 분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모델이 된 듯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그러니까 그분도 그림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에 똑같이 그릴 수는 없었습니다. 똑같이 그릴 실력도 안되었지만요.


"똑같이 그리는 건 사진입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요. 제가 그림 한 장 보여드릴게요." 하면서 작품을 보여주셨는데 그림의 구도가 너무 특이했어요. 일부러 이렇게 그리기도 힘들어 보였습니다.


"이 그림은 제가 술을 많이 먹고 슥슥 그린 것이라서 선도 구도도 엉망인데, 너무 마음에 들어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이시나요?"


그렇다. 작정하고 계획하고 배운 대로 그리는 것이 멋진 그림이 꼭 되는 건 아니구나.




하루는 밖에 나가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다.


'밖에?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볼 텐데, 똥손 실력이 드러나겠네. 망했다.' 이런 생각으로 밖으로 나갔습니다. 당연히 어색하고 쑥스럽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가끔 여행지에서 그림을 그리는 상상을 하곤 했지만, 정말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안 그릴 수도 없고 도망갈 수도 없어서, 어느 정도 막 그리고 있을 때, 선생님이 옆에 지나가시면서 이 부분은 참 좋다. 이 나무는 이렇게 해보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좋다고? 내 그림이? 여기가?'

저는 좋다는 그 말을 진짜 믿었습니다.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몇 주간의 수업이 끝나고 전시회 그림을 제출하라고 합니다. 저는 완강히 버텼습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내 그림을? 전시를 한다고? 말도 안 돼.'


하지만, 도서관 담당님과 선생님은 저의 스케치북을 보시더니, 한 장을 쭉 뜯어 버렸습니다.


"이거면 되겠다. 잘 그렸어요."


그리고, 그 그림은 리얼하게 뜯긴 스케치북까지 넣어서 액자를 만들었습니다.


아래의 그림이 그것입니다.





도저히 본명으로는 전시를 못하겠고, '비비안장'이라는 닉네임 뒤에 숨어봅니다. 물론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안 보겠지만요. 그렇게 제 그림을 동네 도서관 복도에 얼마동안 전시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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