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가 아깝다고 생각이 될 때
그림을 그리기가 편한 세상이다. 나에게도 아이패드가 있다. 물론 처음부터 그림을 그리려고 구입한 것은 아니다. 그럴 생각이었으면 더 큰 것이었어야 했다. 얇고 가벼운 것이 필요해서 아이패드 에어를 구입했다. 이 이상하고 재미있는 기기는 여러 가지를 하게 해 주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 찜찜하게 남아있는 것이 있었다. 그림. 디지털 그림.
'저 예쁜 아이팬슬로 그림을 슥슥 그리면 얼마나 좋을까?'
프로크리에이터를 결재하고 아이펜슬을 들어본다. 한 장 두 장 마음대로 그려보기도 하고, 사진을 보고 똑같이 그려보려고 애를 써본다. 레퍼런스 그림을 화면에 띄우고 위에 똑같이 그려도 본다. 하지만, 이네 펜을 놓게 된다. 여러 번 시도를 했지만, 끝까지 그린 그림을 몇 장에 불과하다. 왜일까? 그때만 해도 내가 그림 실력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에잇!
나는 그 이유를 '두들리에' 화실에서 아크릴 물감 그림을 그리면서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뒤로 가기(UNDO) 때문이다.
손가락 두 개면 언제든지 뒤로 갈 수 있다.
그것도 아주 쉽게.
손가락 두 개로 화면을 툭 치면 뒤로 간다. 그리고 다시 그려본다. 이게 아니지. 또 툭. 그리고 툭. 그리고 툭.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진행되면서 완성 작품이 되지 않고 나는 그만두게 되었다. 아주 여러번
그런데 실제 그림을 그리게 되면 그게 불가하다. 일단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게 되면 돌이킬 수가 없다. 어쩌다 물감이 튀면 급하게 물티슈로 닦아보기도 하지만, 뒤로 돌리기와는 다르다. 물론 아크릴 물감은 완전히 마른 후에 다른 색을 올릴 수가 있다. 그래도 처음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두텁게 되고 느낌이 새것과는 다르다.
새로운 캔버스에 그림을 시작하고는 앞으로 간다. 뒤는 없다. 색 위에 다시 색을 덮어도 그건 또 다른 그림이 된다. 그렇게 그림이 완성될 때까지 천천히 뚜벅뚜벅 그림을 그린다.
너무 작은 것을 그리게 될 때, 정말 확대 기능이 있었으면 하고 바란 적은 여러 번 있다. 아이패드의 확대 기능이 정말 필요한 순간이 있다. 초점이 안 맞는 것 같고 붓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답답할 지경이지만 딱 떨어지지 않는 손맛을 즐기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고 그러고 나서 조금 뒤로 물러나서 보게 되면 예상했던 것보다 괜찮은 결과물로 보이기도 한다.
디지털 기기로의 드로잉 중에 최고의 기능은 복사 붙여 넣기라고 생각한다. 여러 개를 그릴 필요가 없이 한 가지만 잘 그려놓고 계속 사용할 수가 있다. 아주 효율적이다. 그런데 이 한 가지를 잘 그리기가 쉽지 않다. 계속 손가락 두 개를 터치해서 뒤로 돌리고, 자꾸 확대를 해서 자세하게 보고 수정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만약에 인생에 뒤로 가기(UNDO)가 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계속 뒤로/앞으로(UNDO/REDO)를 반복하느라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 언두(UNDO)를 하게 되었을까? 쉬웠을까? 그리고 다시 실행을 하면 이전보다 괜찮을 인생이 되었을까?
이번 전시회를 끝내고 나면 나는 다시 디지털 그림을 그려볼 생각이다. 그 이전과는 다른 나를 만날 자신이 이제는 있다. 용기가 생겼다. UNDO를 누르지 않고 그림을 그려서 완성을 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은 그림을 그리기 전 머릿속에 생각하는 것을 대강 그려보는 용도로만 아이패드를 사용하고 있는데, 본격적으로 디지털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졌다. 이전과는 다른 그림을 그리게 될 나 자신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정말 전시회를 끝나고 나면 어떤 다른 인생이 기다릴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작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참 많이 다르다. 그림을 그리면서 알게 된 인생이야기는 계속됩니다. 혹시 저와 같이 망설이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해보시기를. 어찌 알아요? 내 안의 천재성이 숨어있을지도 하하하
이 그림은 지금 그리고 있는 그림의 러프 스케치를 아이패드로 한 것입니다. 이 것이 어떻게 완성이 되었을지는 전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ncore:Spring
갤러리 H (인사동)
2025.05.14 ~ 05.19
저의 첫 번째 전시회를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