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몰랐다. 내가 그 전시장에서 전시회를 하게 될 줄은
같은 수업시간에 그림을 그리는 분들이 있다. 다들 고수의 자태를 뿜뿜 하고서 그림을 그린다. 멋지다. 나는 아직 이게 이 건지 저게 저 건지도 모르는 왕 초보이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이 믿지 않으시겠지만 저는 물감 종류나 붓 종류, 어디에 그려야 하는지도 아무튼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은 초보입니다.
"장선생님(우리는 모두 이렇게 성에 선생님을 붙여서 부른다. 어색하게 ㅎㅎ) 내일모레 시간 있어요? 우리 인사동 갈 건데, 같이 가자. 전시장 보러"
"예 함께 가요. 인사동 좋져."
그때만 해도 그게 내 전시장이 될지는 몰랐다. 그저 선생님의 개인전 전시장 구경 겸 인사동 나들이 정도로 생각했었다. 인사동은 자주 나가던 곳이어서 부담도 없었고, 동네에서 차로 같이 갔다가 온다는 말에 너무 편하고 좋았기에 흔쾌히 간다고 했다.
날 좋은 날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직 몇 번 보지 않은 사람들이고 그동안 그림을 그리는 공간에서만 보아왔기 때문에 살짝 어색했다. 동네 사람들과의 적당한 거리에 익숙한 나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부대낌이 있었지만 참을만했다.
낯익은 인사동 길이 눈에 들어왔고, 갤러리 H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듣게 된 이야기. 내년에 선생님의 개인전을 이곳에서 한다. 다른 층에는 '두들리에' 제자들 그러니까 우리들도 함께 전시회를 한다는 것이다.
'나도? 설마 나는 아니겠지. 난 아직 한 점도 그리지 않았는데? 머 내년이니까.'
솔직히 그때의 내 맘은 이랬다.
그 전시회에 나는 참석 안 한다. 당연히. 지금 이야기하는 건 그저 듣기 좋은 이야기 일 것이다. 오늘 그곳에 함께 갔으니까 듣기 좋은 말이다. 언제나 그만할 수 있을 거다. 어쩌다 참여를 해도 처음 전시회니까, 작은 그림 한점 잘 완성하면 되겠지. 이런 마음이었다. 그런데 오고 가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3-4점 정도는 걸어야 벽면을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생각보다 넓은데.. 머 이런 이야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건 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보다는 낯선 이 사람들 속에 있는 내가 너무 어색해서 어쩔 줄 모르는 중이어서 깊이 생각하기는 어려운 순간이었었다.
나와 친한 사람들과 하하 호호 걷던 그 인사동 길은 다른 길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날의 그 외출로, 오늘의 나는 정말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장선생님 혈액형이 뭐야? 우리 다 A형인데."
"저도 A형이예요."
"그래? 어쩜 에이스 팀이네. 하하 호호."
그렇게 나는 두들리에의 에이스팀이 겁 없이 되어버렸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전혀 상상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신기하다. 그렇게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허락을 한 일이 내 인생에 있었을까?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얼마나 생각을 많이 하는지 나 스스로도 지칠 정도였다. 그런 내가 이런 큰일을 거절, NO 하지 못하고 YES를 해버린 것이다. 왜일까?
아마도 그건 가슴속에 그렇게 하고 싶었던 그 무엇이 있었나 보다.
"안 해요. 저는 아니에요. 빼주세요."라고 할 수 있는 그 많은 시간이 있었음에도 지금까지 온 걸 보면 말이다.
운영 중인 비카인드 카페에서 멤버들에게 참 많이 한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이 무언가를 할 때,
같이 하자고 할 때,
슬쩍 다리를 넣어보면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그 속에 있는 약간 낯설지만
신나 할 나 자신도 함께.
그러니까 너무 생각 말고 그냥 해보세요."
그런 순간이 나에게 온 것이다. 내가 한 말이 귀에 들렸다. 그래서 거절하지 못하고, 발을 뺄 수 있는 여러 순간들이 있었음에도 지금까지 진행이 된 것이다.
오늘도 그림을 그리러 간다. 지난 시간 바꾼 부분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당장 달려가고픈 생각이다. 시험 준비 기간처럼 전시회 끝나고 여행 다닐 생각만 하고 있지만, 요즈음 나는 꽤 들떠있다. 내 인생에 전혀 없을 것 같은 순간을 앞두고 어느 때 보다도 활기차다. 2025년의 봄은 이렇게 하나씩 채워가고 있다.
Encore:Spring
갤러리 H (인사동)
2025.05.14 ~ 05.19
저의 첫 번째 전시회를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