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문고와 향의 문학적 의미를 중심으로
1. 서론
스에쓰무하나는 겐지모노가타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우스꽝스럽게 묘사되는 인물이지만, 실은 친왕의 딸로서 고귀한 혈통을 지닌 황족 여성이다. 스에쓰무하나는 물정에 어둡고 세련되지 못한 태도, 아버지 히타치노미야의 사후 극심한 빈곤으로 비참하게 몰락한 처지, 긴 코에 코 끝은 홍화처럼 빨갛게 물든 생김새로, 語り手, 겐지, 묘부 등 소설 안팎의 인물들로부터 안타까움과 조롱의 대상이 된다. 末摘花권에서는 스에쓰무하나와 겐지의 만남이 그려지는데, 그녀는 높은 신분과 고귀한 혈통 이외에는 특별한 점을 갖추지 못한 인물임에도, 겐지는 ‘묘한’ 이끌림으로 인해 스에쓰무하나와 인연을 맺게 된다. 겐지는 첫 밤을 보낸 후 새벽이나 이른 아침에 보내야 하는 後朝의 편지를 저녁 무렵에나 보낼 정도로 스에쓰무하나의 부족한 자질과 용모에 실망스러움을 느끼면서도, 늦게 얻은 딸을 귀하게 여겼을 부궁 히타치노미야의 마음을 안쓰럽게 여겨 그녀를 끝까지 돌보겠다고 결심한다.
蓬生권에서는 스에쓰무하나와 겐지의 재회가 그려진다. 겐지가 스마(須磨)로 유배를 떠나 있는 동안 그녀를 방치했던 겐지는, 귀경 후에도 특별히 마음을 주었던 연인이 아니었기에 잊고 있었지만, 스에쓰무하나는 겐지가 떠난 후 극심한 빈곤을 해소하기 위해 세간살이나 뜰의 나무들을 팔아 넘기자는 뇨보들의 권유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자신을 규슈에 뇨보로 데려가려는 악의에 찬 이모의 강권도 뿌리치고, 부궁으로부터 물려받은 집과 자신의 생활양식을 그대로 지켜 나간다. 겐지는 겐지가 찾지 않는 동안 더 없이 빈궁한 처지로 전락해 있던 그녀를 또 다시 ‘묘한’ 계기로 찾게 된다. 겐지는 결국 그녀를 니조히가시노인으로 이주시켜 평생 거두게 된다.
末摘花권과 蓬生권에서 겐지와의 첫 만남과 재회를 이끄는 ‘묘한’ 계기를 제공하는 오브제로 거문고(琴)와 향(香, 薫)이 등장한다. 이 오브제들은 스에쓰무하나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당시 기준에서도 매우 고풍스럽고 귀족적인 가치를 내포한 것들로, 고귀한 신분만이 익히고 향유할 수 있는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즉, 스에쓰무하나의 신분과 처지에 대한 이해를 돕는 요소일 뿐 아니라,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 맺어진 것은 스에쓰무하나 본인의 자질이나 용모의 뛰어남이 아닌, 그녀가 물려받은 고귀한 혈통과 부궁 히타치노미야의 영적 이끎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본고에서는 그러한 관점에서 거문고(琴), 향(香, 薫)이라는 오브제의 문학적 의미와 역할에 대해 구체적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2. 본론 (1) 스에쓰무하나와 거문고
겐지는 유가오가 죽은 후 함께 있을 때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천진한 연인을 갈망하여 여러 여성들을 물색하는데, 사에몬 유모의 딸이며 스에쓰무하나와도 친척관계인 묘부의 주선으로 히타치노미야케를 찾게 된다. 겐지는 미야케에서 귀하게 길러졌으나 부궁의 죽음으로 거문고를 벗삼아 불우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스에쓰무하나의 가련한 처지를 동정하며, 한편으론 폐허 속에 갇힌 애처로운 히메라는 일종의 환상을 품고 그녀에게 흥미를 갖는다.
죽은 히타치노미야가 만년에 얻어, 몹시 귀여워하며 귀하게 키워왔던 히메기미가 어딘가 불안한 모습으로 홀로 남겨져 버린 것을 어쩌다보니 겐지에게 말씀드리자, 겐지는 "딱한 일이구나." 라고 동정하고, 마음을 쓰며 물으십니다. 묘부는 ① "마음씨나 기량 등, 자세한 것은 잘 알지 못합니다. 조용히 생활하며 사람과의 사귐도 없이 있으므로, 무언가 용무가 있는 저녁 등에 거리를 두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거문고를 친한 이야기 상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씀을 드리니, 겐지는 "거문고는 삼우 중 하나이나, 또 하나는 히메기미에게는 맞지 않겠구나." 라고 말씀하시고 "그 거문고를 나에게 들려주지 않겠는가? ② 히타치노미야가 그러한 방면에는 실로 조예가 깊으셨으니, 히메기미도 보통의 솜씨는 아닐 것이다."라며 친근한 모양으로 이야기를 하십니다.
- 스에쓰무하나(末摘花)권
작품 외적으로 볼 때, 고대 일본에서 거문고(琴)란 대륙으로부터 전해진 유서 깊은 악기로서, 귀족이나 황족 등 최상류층에서나 향유하는 문화로 취급되었다. 이 장면에서는 그러한 암묵지가 십분 활용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우선 ①과 같이 스에쓰무하나의 혈통 이외에 다른 어떤 특별한 점을 들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녀가 거문고를 벗삼아 지낸다는 것 만을 내세운다는 점은, 당시에도 고귀한 혈통과 거문고 연주는 상호 관련성이 있다는 것이 상식이었다는 점을 암시한다.
거문고를 높은 신분 고유의 교양으로 여기는 태도는 蓬生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귀족에서 수령 계급으로 전락한 이모가, 자신의 계급 하락에 대한 집안의 멸시 등에 대한 복수심으로 언니의 딸인 스에쓰무하나를 자녀들의 뇨보로 데려가려 하는데, 이모는 ③과 같이 말하며 스에쓰무하나의 특기로 거문고 연주를 들고 있다.
고귀한 혈통이면서도 이렇게까지 몰락할 숙명이었기 때문일까? 마음씀씀이가 다소 저속한 이모였다. ‘내가 이렇게 못지 않게 멸시를 당하였으니, 어떻게 해서든지 이런 미야의 집안이 영락할 데로 영락했으니 히메기미를 내 딸들의 하녀로 삼고 싶구나. 마음 씀씀이 등 고풍스러운 면도 있지만 참으로 안심할 수 있는 후견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여, ③ 이모는 “가끔 이리로 오세요. 거문고 소리도 듣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하고 아뢰는 것이었다.
-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 요모기우(蓬生)권
스에쓰무하나의 거문고 연주는 뛰어난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 末摘花권에서 묘부에 의해 여러 차례 강조되고 있는 바, 이모가 거문고 연주를 핑계대는 것이 그녀의 연주 기량이 뛰어나서라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이모가 수령 계급과 결혼해 신분이 낮아진 것에 대해 열등감을 가졌다는 점에서, 스에쓰무하나의 거문고 연주를 거론한다는 것은 당시 기준으로 거문고 연주 자체가 고귀한 혈통만이 가진 특별하고 드문 소양으로 여겨진 까닭일 것이다.
또한 겐지는 ②에서 죽은 히타치노미야가 거문고에 조예가 깊었음을 상기하며, 그 딸인 스에쓰무하나의 솜씨 역시 뛰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되고, 이는 폐허 속에 갇힌 고귀한 혈통의 가련한 여인이 거문고를 능란하게 연주하는 모습으로 그의 마음 속 시적 환상을 더욱 부풀리는 결과를 낳는다. 이런 환상은 묘부가 그토록 주저함에도 불구하고 겐지가 히타치노미야케의 방문을 강행하는 추진력으로 작용한다.
이처럼 거문고는 스에쓰무하나가 황통을 이은 고귀한 신분이라는 점을 드러냄과 동시에, 겐지로 하여금 부궁 히타치노미야의 교양을 상기시켜 스에쓰무하나에 대한 환상을 강화하는 장치로서, 결국 두 사람의 만남이 성사되게 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2. 본론 (2) 스에쓰무하나와 향(香)
겐지는 거문고 소리를 듣고 돌아오던 길, 도노추조가 자신의 뒤를 밟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두 사람은 모두 스에쓰무하나에게 구애의 편지를 보내며 은근히 경쟁을 벌인다. 그러나 물정 모르는 스에쓰무하나는 누구에게도 답장조차 하지 않고, 경쟁심 때문에 초조해진 겐지는 계속해서 묘부를 재촉한다. 답장이 없는 것에 불쾌함과 의아함을 가진 채 무려 두 계절을 흘려보낸 뒤, 마침내 가을이 되어서야 겐지는 묘부를 채근하여 다시 스에쓰무하나를 방문한다. 겐지는 여전히 스에쓰무하나에 대해 일종의 환상을 마음에 품고 있기에, 기민하지도 재치가 있지도 않은 스에쓰무하나의 반응을 “풍류가 지나쳐 현대풍의 젠 체하는 사람보다 고상하다” 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하며, 그녀와의 대면을 기대한다.
겐지는, 히메기미의 신분을 생각하시면, 「풍류가 지나친 현대풍의 젠체하는 사람보다는 훨씬 고상하다」 고 생각하시면서, 주위로부터 자꾸만 재촉을 받아, 조금씩 다가오는 히메기미(姫君)의 모습이 고즈넉하고 ④ 정말로 그리운 읍의향(裛衣香)이 풍겨오며, (ひっそりとして、裛衣香がまことに好ましく薫って来て、/ 原) いとなつかしう薫り出でて、) 거리낌없이 대범하게 계시기 때문에, 「역시 예상대로군」 이라고 생각하십니다.
-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 스에쓰무하나(末摘花)권
고대 일본의 향 문화는 향기를 옷에 배도록 하는 훈의가 대표적인데, 옷을 펴서 걸친 다음 그 아래 향을 피워 향기가 배도록 한 뒤 입는 방식이다. 특히 헤이안 시대에는 왕궁에서 고가의 향료를 중국에서 구입하여 사용했으므로 이 시기 향 문화는 제왕과 귀족 등 상류계급의 전유물이었다. 따라서 옷에 향내가 배도록 훈의를 했다는 것 자체가 귀족 이상의 높은 신분에게나 가능했던 행위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④에서 겐지가 휘장 너머로 다가와 앉은 스에쓰무하나로부터 읍의향(えいこう)이 풍겨오는 것을 맡고는 “역시 예상대로”라고 말하는 것은, 그 향기가 겐지가 갖고 있던 환상에 부합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즉, 고귀한 신분의 히메기미 다운 향기를 풍기는 만큼, 그에 걸맞은 자질과 용모도 갖추었을 것이라는 겐지의 기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또한, 이 향기를 묘사하는 원문을 살펴보면, ‘いとなつかしう薫り出でて’라고 하여, 향기가 뭔가 익숙하고 친숙해서 마음에 끌리는, 그리운 느낌을 주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첫 대면임에도 그 향기가 친숙하고 그리운 느낌을 준다는 건, 겐지 자신도 황자로 태어난 황족이며, 스에쓰무하나 역시 친왕의 딸로 황족의 피가 흐른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향을 가까이할 수 있는 신분, 나아가 황족이라는 공통점을 매개로, 겐지가 스에쓰무하나에게 동류 계급으로서 동질감을 느꼈다는 의미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겐지가 동류계급으로서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라는 추측에 대한 확신은, 겐지가 두 번째 방문한 날, 스에쓰무하나가 방한을 위해 입고 있던 향내가 밴 흑담비 가죽옷에 대한 묘사의 원문으로부터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다. ⑤에서 보듯, ‘清(きよ)ら’라는 단어가 사용된 점이 눈에 띈다. 물론 이 단어는 스에쓰무하나의 가죽옷을 수식하는 것으로 향을 꾸며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清(きよ)ら’는 사치스럽고 호화스러운 최고의 아름다움을 일컫는 고어로, 겐지모노가타리에서는 황족의 혈통을 가진 인물에게만 사용되는 단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두 사람의 처지는 너무나 다르지만, 실은 동류계급에 속한다는 점이 명확해진 것이다.
옅은 홍색의 표면이 심하게 바래진 우치키(袿)를 한 겹 두르고, 그 위에 원래의 색이 남아있지 않은 거무스름한 우치키를 겹쳐 입고, ⑤ 겉옷으로는 흑담비의 가죽옷으로, 매우 멋지고 향내가 배어 있는 것을 입고 계십니다.(表着には黒貂の皮衣で、まことに立派で香がたきしめてあるのをおめしになっています。原)表着には黒貂の皮衣、いと清らに香ばしきを着たまへり。) 고풍스럽고 유서 깊은 옷이지만, 역시 젊은 여성의 옷으로서는 어울리지 않고, 과장된 느낌이 대단히 눈에 띄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가죽옷이 없으면 또 추울 것 같은 얼굴빛인 것을 겐지는 가엾게 보십니다.
-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 스에쓰무하나(末摘花)권
겐지가 계급적 동질감을 느낀다는 점은, 스에쓰무하나가 묘부를 통해 보낸 와카와 설빔을 보는 장면에서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묘부는 “옅은 다홍색으로 한 번 염색한 옷처럼, 가령 당신의 기분이 옅더라도 히메기미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 없으면”라고 생각합니다.
“두 분의 사이가 걱정이다.” 라며 정말로 세상물정에 익숙한 듯, 혼잣말을 하는 것을 보고, 겐지는, “능숙하지는 않지만, 히메기미가 적어도 이 정도의 노래라도 지을 수 있으시다면” 이라고 ⑥ 거듭 안타깝게 생각하십니다. 히메기미의 신분이 높기에 딱하여, 그 명예를 손상시키는 일은 역시 꺼려하십니다. 사람들이 찾아오자, 겐지는 “숨겨두자. 이런 것은 보통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라고 한숨을 쉬십니다
-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 스에쓰무하나(末摘花)권
스에쓰무하나가 보낸 와카는 맥락을 알 수 없어 겐지를 어리둥절하게 하고, 보내온 의상은 낡아빠지고 색감은 천박하여 전달한 묘부와 선물을 받은 겐지를 도리어 부끄럽게 만들 정도다. 그럼에도 겐지는 ⑥과 같이, 스에쓰무하나의 귀한 신분과 명예를 위해 어설픈 와카와 의상 선물의 흠도 덮어주려 애쓴다. 이는 동류 계급의 동질감에서 기인한 배려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겐지는 그녀를 끝까지 돌보기로 결심하지만, 스에쓰무하나의 부족한 자질과 용모에 실망하여 애초에 그녀를 찾은 것을 후회하며, “나 자신 이외의 사람은 하물며 참을 수 있을까, 내가 이렇게 가깝게 느낀 것은 돌아가신 친왕께서 불안하셔서 히메의 가까이에 오신 혼으로서 인도하시는 것이리라.”(末摘花권 P.42)라고 언급한다. 결국 겐지의 입을 빌어, 겐지가 그녀를 찾게 된 것이 딸을 걱정한 부궁 히타치노미야의 영령이 이끈 운명적 결과라는 점을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스에쓰무하나와 겐지의 재회가 그려지는 蓬生권에서는 거의 동시에 일어난 두 개의 사건을 통해, 그리운 향기와 부궁 히타치노미야의 이끎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⑦에서 겐지는 소나무에 등나무가 감겨 핀 꽃의 바람에 실려온 향기에 스에쓰무하나를 떠올린다. 이 대목의 원문을 살펴보면, 여기서도 풍겨오는 향기가 ‘なつかしく’하다는 표현이 나타나, 末摘花권의 첫 대면 장면에서 나온 ‘いとなつかしう薫り’에 호응하고 있다.
큰 소나무에 등나무 꽃이 피어있고 달빛이 보드랍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⑦ 그것이 바람과 함께 훅 향기를 풍기며 오는 것이 그리운 느낌의, 뭔가 아련한 향기였습니다.(それが風と共にさっと匂って来るのがなつかしく、何かほのかな香りです。原)風につきてさと匂ふがなつかしく、そこはかとなきかをりなり。) 귤나무의 향기와는 또 달라 운치가 있으므로, 수레에서 살짝 내려와 보시니, 버드나무도 한층 길게 늘어뜨러져 있어, 토담도 무너져 방해가 되지 않아, 그대로 어지럽게 늘어져 있습니다. 전에 봤던 기분이 드는 나무라고 생각하셨더니, 어쩐지 그 히타치노미야의 저택이었습니다.
-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 요모기우(蓬生)권
이와 거의 같은 날에 스에쓰무하나는 낮잠을 자다 꿈에 부궁을 보고는 슬퍼한다. 평소 청소할 사람도 없어 먼지가 쌓인 채 지냈으나 부궁의 모습을 본 김에 여기저기 닦아내게 하는데, 이것은 그날 밤 방문할 겐지를 맞이할 준비가 된다. 즉, 겐지가 바람에 실려온 그리운 향기로부터 스에쓰무하나를 떠올리고, 스에쓰무하나가 꿈에 부궁 히타치노미야를 본 일은 동일 선상에 있는 사건이다.
히메기미 입장에서는 한층 더 근심이 늘고 있던 무렵으로, 풀도 죽어있으셨습니다만, 낮잠을 잘 때 꾸었던 꿈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뵈었기 때문에, 잠에서 깨고 나서 실로 그 꿈이 잊혀지지 않고 슬픈 생각이 들어, 비가 새어 젖은 행랑채 끝 쪽을 손으로 닦게하고, 여기저기 거처를 정리하게 하셔서 평범한 모습이 되셔서는, “돌아가신 분을 연모하는 눈물로 소맷자락이 마를 새가 없는데, 심지어 거칠어진 처마의 물방울까지도 더해져서, 한층 젖습니다.”라고 읊고는, 너무나도 애처로운 때였습니다.
-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 요모기우(蓬生)권
재회의 순간에 스에쓰무하나는 향이 배게 하는 당궤에 넣어두었던, 이모가 주고 간 옷을 입는다. 당궤는 부궁 히타치노미야가 남긴 유산 중 하나로, 안에 물건을 넣어 향이 배게 하는 가구다. 語り手는 그 향이 ‘いとなつかしき香したる’, 즉, 매우 그리운 느낌을 주는 향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히메기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라고 생각하며 기다리고 살아온 바람이 이루어져 기쁘지만, 참으로 부끄러운 모습으로 만나게 되는 것도 실로 창피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다이니노기타노카타(이모)에게 받은 의복 등도 불쾌하게 생각했던 사람과 관련된 물건이기 때문에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⑧ 이 나이 든 시녀들이 향이 든 중국식 궤에 넣어둔 것이 굉장히 그윽한 향이 스며든 것을 올려서,(この老女たちが香の御唐櫃に入れて置いたので、まことに懐かしい香りに染みていますのをさし上げましたので、原)この人々の香の御唐櫃にいれたりけるが、いとなつかしき香したるを奉りければ) 어쩔 수 없이 갈아입고 낡아 찌든 휘장을 끌어당기고 계십니다.
-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 요모기우(蓬生)권
결국 겐지에게 그리운 느낌을 주고, 스에쓰무하나를 떠올리게 한 그 향기는, 부궁이 남긴 가구와 도구에 배어 있는 ⑧의 향기와 같은 것이다. 이로써 양 권에서 반복되는 ‘그리운 향기’의 의미가 명확히 드러난다. 두 사람의 첫날 밤과 재회를 이끄는 계기로 작용한 이 향기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스에쓰무하나의 신분, 유서 깊은 친왕가의 전통에서 비롯된 고귀함이 존재하는 증거이며, 바로 그 고귀한 혈통을 물려준 부궁 히타치노미야의 영적 유산인 것이다.
3. 결론
스에쓰무하나는 높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자질과 용모는 물론, 교양 면에서 당시 귀족 문화에 부응하지 하지 못하는 인물로, 특히 부궁이 돌아가신 뒤에는 극심한 경제적 곤궁 속에 살아가는 여성이다. 그러나 스에쓰무하나는 뛰어나지는 않으나 거문고를 연주할 줄 알고, 낡고 더러워질지 언정 향내만은 짙게 밴 옷을 입곤 한다. 즉, 스에쓰무하나의 거문고와 향은 당시 시대상을 고려할 때, 매우 높은 신분만이 향유할 수 있는 것으로, 영락하여 과거의 영화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으로도 훼손되지 않은 황족의 유서 깊은 혈통을 의미한다.
또한, 거문고는 처음으로 겐지가 스에쓰무하나를 카이마미(垣間見)하러 오게 하는 계기가 었으며, 겐지에게 그리운 느낌이 들게 하는 향기는 두 사람의 첫 밤과 재회를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의지할 곳 없는 스에쓰무하나에게 겐지라는 든든한 후견인을 데려다 놓은 것이 바로 거문고와 향이며, 그 이면에는 고귀한 혈통을 물려준 부궁의 영적인 힘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겐지가 末摘花권에서 스스로 말한 것처럼, 부궁 히타치노미야의 유산 혹은 영향력이 두 사람의 인연을 이끌어 준 것이다.
이상과 같이 末摘花권과 蓬生권에서 스에쓰무하나와 겐지의 만남과 재회를 이끈 ‘묘한’ 계기를 제공하는 오브제로서 거문고(琴)와 향(香, 薫)의 의미를 고찰해 보았다. 주제의 명확성을 위해 거문고와 향의 문학적 의미에 한정하여 다루었으나, 거문고와 향이 상징하는 황족, 귀족의 유서 깊은 혈통과 그에 걸맞은 교양이 따라주지 않은 경우의 공허함, 몰락한 미야케의 비참한 생활상의 적나라한 대비를 통해, 당시 사회경제적 측면까지 시야를 넓혀 본다면, 작품의 풍부한 해석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 대학원 일본문학세미나 기말과제 - 스에쓰무하나마키 및 요모기후마키에 대한 6000자 이상의 비평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