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은화 Nov 23. 2023

잃어버린 꿀잠을 찾아서_번외_1122

19. 배달의 민족을 돌아보며...

소소한 일상기록입니다

불면퇴치 프로젝트

(9월 19일 기록을 다시 정리하다가 배달의 민족 배달 이야기가 나오게 돼 관련 포스팅을 이어갑니다.

그래서 갑자기 시간을 점프하게 되었네요)

2년 8개월 정도 하게 된 배달의 민족 배달 일을 11월말, 12월초에는 마무리를 지으려고 한다.

수입도 그렇고 체력도 점점 떨어져 이로 인해 사고위험도 갈수록 커지고 있는 실정이라 결심했다.

다른 일에 도전해 보려고 한다. 도전할 때가 왔다.


여기에 남기고자 하는 내용은 배달 업무와 관련된 팁과 에피소드 보다는

이 일을 통해 얻게 된 부수적인 재미와 보람(특별한 경험)에 대한 짧은 언급이다.

(이 일을 통해 나는 다른 직업에서는 만날 수 없는 도시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는 총평 아래에서 글을 서술해 본다) 


처음 3개월은 일 외에 다른 건 신경쓸 수가 없었다. 배달 하나도 벅찼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한 건 2021년 4월 4일이었는데, 코로나가 점점 심화되는 시기로 음식배달과 택배 산업이 급성장해 가는 흐름 속에 있었다. 그때 일을 찾던 나 역시 그 흐름 속에 자연스레 빨려들고 말았다.


처음 3~4개월은 쉴 틈 없는 주문과 긴장감, 매일 만나게 되는 낯선 동네에 대한 무지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고 일했다. 당시 배민은 가파른 성장세에 있었기에 배달비 높고, 다양한 프로모션으로 돈 버는 맛이 상당했다. 나는 전혀 알지 못했지만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배테랑 배달러들은 월 사백 만원, 오백 만 원도 거뜬히 가져간다는 소문을 듣기도 했다. 그런가부다 했다. 미친 듯이 일주일 내내 일하면 그럴 수도 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배달원은 많은데 상대적으로 배달료는 적어지고 엔데믹을 지나면서는 주문량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소비자들이 배달음식에 질려버렸던 거다. 그런 차에 배달료 횡포까지 있어 사람들이 불매 비슷한 운동에 동참하기도 했다.  


암튼 그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2년 넘게 한 것은 조용히 혼자 일할 수 있고, 갑자기 시간을 내야할 때 얼마든지 시간을 내고, 쓰고 싶을 때 주저없이 글을 쓰고, 봐야할 공연도 보고, 공공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용이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특별한 경험이 있어서였다.


1. 가보지 못했던 도시의 구석구석을 가보다

사직동, 평창동, 염리동, 아현동, 효자동, 서촌, 한남의 고급빌라, 한성대, 옥수동, 용산동, 하이브 사옥, sm사옥, 고양의 삼송, 효자, 진관동 한옥마을, 향동, 화전의 군인아파트 등 생전 처음 가보는 동네도 많았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다니 감탄을 불러오는 곳도 많았고, 아직도 이런 곳이 존재함에 씁쓸함을 느낀 곳도 적지 않았다.(여기에 사람이 살긴 살아?!!)


2.  다양한 아파트를 체험하다

(무너져가는 구식 아파트부터 초호화 아파트를 다 경험해 보다)

평생 아파트에 살아보지 못한 내가 매일매일 새로운아파트를 경험하며 대한민국이 왜 아파트 천국인지를 몸소 체험했다. 그럼에도 결론은 살고 싶지 않음.


3. 대학 교정의 아름다움

대학 기숙사로 배달도 많이 했는데 특히, 이대와 연대 기숙사에 안락함과 화려함에 놀라기도 했다. 명문대의 진가가 기숙사에서 확 느껴졌다. (내가 사랑하는 길 중에서 연대 뒷쪽 숲길의 아름다움은 빠질 수가 없다.)

다른 곳에 있다가 대학 교정에 들어오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대학이 가진 자유와 순수함이 사람을 편하게 하는 것 같았다. 그들 자신은 잘 모르겠지만 대학은 인생에서 가장 순수하게 공부하고 사랑하고 도전할 수 있는 곳임을 다시금 실감. 새삼 대학이 더 소중하게 다가왔다.

‘그대들이여, 더 누리시오!’


4. 도시의 샛길 발견 (비밀통로와 지름길의 발견)

바쁜 배달일을 반복하다 보면 정직하게 가지 않고 골목길이나 내비에 나오지 않는 길을 활용할 때가 많다. 이 지식이 자동차 운전을 할 때도 큰 도움이 된다.


5. 내 머릿 속에 맛집 리스트

데이트에 있어서 배달 구역이 속한 동네에 가면 별로 당황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근처 맛집 다섯 군데 이상은 알고 있다.

주방상태, 위생상태, 실제적인 인기 정도도 훤히 알기에 굳이 핸드폰을 꺼내 검색하지 않아도 된다.

2년이 넘게 쌓은 맛집 데이터가 머리와 몸에 배어 있다.


인기있는 신촌의 스테이크 집이 하나 있다. 그곳은 배달만 한다. 아주 음침하고 어두운 곳에 위치했는데, 그곳에서 쥐가 나오는 걸 난 몇 번 봤다. 하지만 그곳은 언제나 인기가 많았다. 앱으로는 알 수가 없다.


6. 오토바이 실력 업데이트

 처음 오토바이 운전할 때는 하도 천천히 달려서 정비소 아저씨에게 진지한 조언을 듣기도 했다.

‘막 땡겨서 달리라고! 막!!'

내가 너무 천천히 달려 기름이 불완전 연소한다고, 엔진이 다 타들어가게 확 땡기라고!

   

지금은 부앙부앙 엔진 소리 즐기며 신나게 달린다. 엔진 거칠게 다루는 재미에 타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 귀 아플 정도의 데시벨은 아닙니다 ^^)

   

7. 떠도는 사진가

새로운 곳을 하루에 한 번씩은 경험하다 보니 사진기록이 많다. 이쁜 포스터, 낙서, 이쁜 카페, 공원, 미술관, 멋진 노을뷰, 구름 뷰, 멋진 건물, 오래된 건물, 이상한 건물, 재밌거나 괴상한 이미지 등을 찍어 인스타에 올렸다. 틈틈이 사진 찍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런 부가적인 직업적 보너스가 내게는 있었다.

이 특별함으로 인해 수입은 계속 하향세를 탔지만 오토바이를 놓지 않았던 거 같다.

에휴...

이젠 본래의 오토바이 라이딩으로 돌아가려 한다.

에휴...

+

재미난 깨달음 하나는, 사람들이 올라가기 힘든 산자락 아래는 엄청나게 잘 사는 사람이 살던가, 지독하게 가난한 사람들이 산다는 것이다.

중간 계급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