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을 남겨두고 스위스행 야간열차를 타다.
프라하 여행 마지막 날. 이 날은 토요일이었다. 길게 여행을 하다 보면 정말 요일 감각이 없어진다.
그 날 하루하루가 중요할 뿐, 요일이나 날짜 감각이 정말 사라진다. 이 날도 토요일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었지. 이 날은 마음먹고 쇼핑을 하기로 한 날. 서유럽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물가가 싼 동유럽이기에 이 곳에서 쇼핑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조식을 또 든든하게 먹고 바츨라프 광장으로 출발했다.
국립박물관 앞으로 쭉 뻗은 바츨라프 광장은 프라하의 주요 번화가이자 근대 역사의 현장이라고 한다. 1968년에 일어난 자유 항쟁 '프라하의 봄'으로 체코에 개혁의 바람이 일어나자 구소련 연방에서는 탱크를 앞세워 바르샤바 조약을 내걸고 이것을 진압하려고 했다. 이것에 분개한 얀 팔라흐라는 학생이 자신의 몸에 불을 질러 항거하여 체코의 억압된 현실을 세계에 알렸는데 그 광장이 바로 이 바츨라프 광장이다. 또 1989년 무혈 혁명인 '벨벳 혁명'으로 소련의 공산세력이 물러나자 시민들이 모두 모여 기뻐하던 곳도 바로 이 곳이다. 이 곳에는 체코를 건국한 바츨라프의 동상이 서있고 그 주변으로는 유명 호텔들과 은행, 백화점, 환전소 등등이 모여있다.
바츨라프의 동상 뒤로 아주 웅장한 건물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체코의 국립박물관이다. 체코에서 가장 큰 박물관으로 체코의 역사와 자연, 문화 등 체코에 대한 이해를 돕는 다양한 전시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하지만 안의 전시품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국립박물관의 외관. 1890년에 완공된 네오 르네상스 양식의 박물관 건물이 시선을 압도하는데, 이것은 체코의 부활을 기원하는 슐츠의 디자인으로 아주 큰 볼거리를 제공한다.
체코를 대표하는 예술가 무하의 작품을 집중 전시하고 있는 무하 박물관. 그의 그림을 아마 한 번쯤은 볼 적이 있을 것이다. 뭔가 타로카드의 그림에서 봤을 법한 그 그림. 무하는 여성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데 아주 탁월했다고 한다. 박물관으로 들어가서 전시를 볼까 하다가 한국에서 열리는 무하 전시회가 더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전시회 관람은 패스를 하고 기념품 샵으로 들어가 스프링노트 한 권을 샀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작은 스프링노트.
여기에 글씨를 쓰면 딱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샀는데 아직 아까워서 하나도 쓰지 않았다. 헤헤.
존 레논 벽화를 보기 위해 열심히 가던 중 나는 또 길을 잃었다.
어딘지도 모르고 일단 걷다가 만난 아저씨.
나에게 환전소가 어디 있냐고 물어봤는데 " 쏘리, 암 스트레인저."
굉장히 안타까워하며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대한민국에서 왔다고 하자 자신은 파리에서 왔다고 했다.
아! 내가 다녀온 파리! 아주 반가워서 나도 파리에 다녀왔다고 말을 하려고 했는데 아 그 당시에 갑자기 떠오르지 않아서 " 어!!!! 나도 파리 갔다 왔어요!!!!!"라고 한국말로 말했다. 그 아저씨는 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아니에요. 영어 짧은 제 탓이죠 뭐. ㅋㅋㅋㅋㅋㅋㅋ
팔라디움 백화점에서 LUSH와 마뉴팍투라 쇼핑을 마치고
저녁에 야간열차에서 먹을 샌드위치를 사고 점심 대신으로 먹은 스타벅스 카페라떼.
다시 찾은 구시가지 광장.
곧 스위스로 향하는 야간열차를 타러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가득 머금고 구시가지 광장을 다시 찾았다. 그곳에는 유럽에서 정말 유명한 비눗방울 아티스트가 퍼포먼스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이 비눗방울을 보며 즐거워했고 어른들은 아이들을 보며 즐거워했다.
프라하는 정말 거리예술의 도시이다.
떠나기가 너무 아쉬웠다.
비 온 뒤 맑음.
여행하면서 날씨 운은 정말 중요하다.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숙소에서 잠깐 쉬다가 이제 대망의 스위스행 야간열차를 타러 프라하 중앙역으로 이동했다. 중앙역까지 도보 10-15분 정도 걸리지만 첫날 도착했을 때 나의 캐리어 바퀴를 위협했던 프라하의 돌길이 생각나서 트램을 타고 가기로 결정.
트램 타는 것부터 쉽지 않다. 반대로 탈 뻔. 진짜 큰일 날 뻔했다. 야간열차를 놓친 전적이 있는지라 아주 긴장 백배였다. 프라하 중앙역에도 1시간 30분 전에 도착해서 하염없이 전광판을 보며 대기를 했다.
프라하에서 스위스 루체른으로 이동을 할 때 먼저 바젤에서 한 번 환승을 해야 한다. 나를 스위스 바젤로 데려다 줄 야간열차가 도착을 했고 플랫폼을 확인하고 나는 이동을 했다. 열차 앞에 있던 역무원에게 표를 보여주며 이 열차가 내가 타야 할 그 열차가 맞냐고 물어봤는데 아 글쎄 이 사람이 확답을 주지 않는다. 내가 지금 야간열차 때문에 얼마나 예민한데 왜 말을 해주지 않는 거야.
" 아 이거 맞냐고 ~!" 한국말로 말을 하자 뒤에서 오던 한국인 커플이 이거 바젤 가는 거 맞다고 몇 번 칸이냐고 물어보더니 자기들을 따라오라고 했다. 나는 역무원을 한번 째려봐주고 그 커플을 따라갔다.
그들은 나중에 소주 먹고 싶으면 자기들 방으로 오라고 했다. ㅋㅋㅋㅋㅋㅋ
내가 예약한 3인실 여성전용 야간열차.
야간열차 내부는 굉장히 좁았다. 나는 다행히도 1층 침대였고 2,3층 침대에는 아무도 타지 않았다.
이렇게 캐리어 하나 들어갔을 뿐인데 꽉 차는 실내.
그래도 혼자 썼으니 다행이야. 캐리어를 2,3층 침대로 올라가는 사다리에 자전거 체인으로 꽁꽁 묶어놓고 귀중품은 모두 캐리어 안으로 집어넣고 자물쇠로 잠갔다. 3인실 야간열차는 6인실 쿠셋과는 달리 카드키로 객실을 잠그고 다닐 수 있다. 안쪽으로도 2중 잠금을 할 수 있어서 쿠셋 칸보다는 확실히 안전한 편이다.
그래도 방심할 수 없으니 내 물건은 내가 지켜야지.
객차 안쪽에 캐비닛 같은 문을 열면 간단하게 세면을 할 수 있도록 물이 나오는 곳도 있고 세면도구와 수건이 함께 비치되어 있다. 객차 인원수에 맞게 비치된 물건들이라 3개씩 비치가 되어있는데 야간열차는 정말 정말 정말 심하게 건조하다. 그래서 목이 너무나도 따갑다.
나는 남는 수건을 물에 적셔서 머리맡에 널어두고 가습기의 효과를 주었다. 그러니 그나마 낫다.
11월 7일 프라하에서 스위스 바젤로 가는 18:30분 야간열차를 타야 했기 때문에 당연히 저녁을 먹지 못한다. 그래서 아까 팔라디움 백화점 PAUL에서 미리 사두었던 크로아상 샌드위치를 꺼냈다. 왕쫄보 야간열차도 무사히 잘 타고 짐 정리도 잘 했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그제야 살짝 풀렸다. 창 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유럽의 모습을 보며 외롭지 않게 음악도 살짝 틀어놓고 다이어리를 쓰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흔들리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내일 눈 뜨면 스위스겠지.라고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