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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드메르시 Sep 02. 2016

#10, 스위스의 시작,
호수의 도시 루체른으로.

외로운 나를 위로해준 건 내 사랑, 나의 힐링푸드 왕뚜껑.

         



야간열차를 타고 스위스 바젤로 가던 그 날.
알람이 울리기도 전 새벽 일찍 눈이 떠졌다.

창문을 가려주던 블라이드를 걷어 올리자 눈 앞에 펼쳐진 해 뜨는 풍경.
다시 침대에 누워서 잠깐 뒹굴거리다가 일어났다.
바젤에서 오전 8시 4분에 루체른으로 가는 기차로 환승을 해야 했기에 조금 이른 준비를 시작했다. 간단하게 세면을 마치고 짐을 챙기고 있자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나는 2중 잠금 중 하나를 열고 빼꼼 내다보았다. 역무원이 손에 상자를 들고 있다. 야간열차 3인실은 도착 1시간 전쯤 조식이 제공이 된다.  아침을 먹을 시간이 되어 조식을 가져다준 것이다.


야간열차 3인실에 제공되는 조식.


야간열차 3인실에 제공되는 조식.
그 전날 커피, 티 중 어떤 걸 마시겠냐는 말에 커피로 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함께 조식을 건네받았다.





상자를 열어보니 내용이 제법 알차다.
오렌지 주스와 버터, 딸기잼, 치즈, 기호에 맞춰 커피에 넣어먹으라고 크림과 바게트 빵과 부드러운 모닝빵까지. 나는 기차에서 내릴 시간이 다되어가서 간단하게 바게트 빵과 커피만 일단 먹고 나머지는 기차를 환승해서 먹기 위해 챙겨두었다. 향긋한 커피 향이 내 방을 가득 채웠고 기대하지 않았었지만 커피의 맛은 제법 괜찮았다. 간 밤에 흔들리던 기차 안에서 억지로 잠을 청하느라 피곤했는데 커피 한 모금이 기분을 맑게 해주었다.



바젤 역에 무사히 도착을 하고 루체른행 기차로 환승을 했다. 바젤에서 루체른까지는 약 1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데 이동시간이 비교적 짧은 편이다. 그 사이 아까 챙겨 왔던 조식을 주섬주섬 꺼내서 먹기 시작했다.
밖으로 보이는 스위스의 풍경을 감상하며 양볼을 빵빵하게 채워 먹고 있는데 객차를 지나가던 역무원과 눈이 마주쳤다. 왠지 모르게 그는 아주 흐뭇하고 풍성한 미소를 지으며 맛있게 먹고 즐기라고 말했다.
내가 좀 맛있게 먹기는 하지. Thank you.









루체른 역에 도착을 하고 나는 현금인출기를 찾아서 현금 인출을 했다.
스위스는 유로가 아닌 자국 화폐인 '프랑'을 주로 사용을 한다.
그래서 스위스에 머무는 동안 사용할 프랑을 인출을 하고 숙소로 이동을 했다.
체크인이 오후 4시부터라서 일단 숙소에 있는 코인라커에 캐리어를 보관하고 밖으로 나왔다.




루체른 호수.



루체른은 호수의 도시이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호숫가에 위치한 예쁜 도시로 알프스 산을 오를 수 있는 기점이 되는 도시이기 때문에 많은 여행자들의 사랑을 받는 도시라고 한다. 그중 리기산은 내가 여행을 하며 만났던 여행자들이 모두 극찬을 했던 알프스 산이다. 하지만 나는 루체른에서의 일정이 하루밖에 되지 않아서 아쉽게도 리기산을 오르지 못했다. 루체른에 있는 기간에는 그 아쉬움을 크게 느끼지 못했지만 전체 여행이 끝나갈 무렵 그 아쉬움이 크게 다가왔다.


숙소 밖으로 나와서 나는 루체른의 구석구석을 천천히 산책을 하며 즐기기로 했다.
내가 처음 느낀 스위스의 느낌은 '깨끗하다'는 것.
화려한 네온사인의 간판들도, 길거리에 떨어진 쓰레기도, 파리 여행 중 느꼈던 악취도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아주 깨끗한 나라였다. 높은 수준의 시민의식도 한몫을 했겠지만 스위스 자체에서 깨끗한 도시미관을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한다고 한다.







한 없이 맑고 투명한 루체른 호수 위를 여유롭게 돌아다니던 백조들.

정말 손만 뻗으면 쌓이는 곳에 하얀 백조들이 사람을 겁을 내지도 않고 둥둥 떠다니고 있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물 위에서 보았을 때 백조들은 아주 평온하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지만
보이지 않는 물 밑으로는 그 우아한 자태를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발버둥을 친다고.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하라고.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루체른 호수는 정말 깨끗했다. 심지어 보트와 요트가 대기하고 있는 선착장조차도 아주 깨끗했다.
그래서 백조들의 발까지도 아주 잘 보였다.
스위스 백조들의 발은 그렇게 심하게 발버둥을 치지 않았다. 오히려 평안했다.
아무래도 한국의 백조들만 물에 뜨기 위해 그렇게 바쁘게 발버둥을 쳤나 보다.






 '안녕 백조야. 나도 지금 한국에서 백조란다.'라고 생각하며 동지애를 느끼며 함께 찰칵.
 




11월 초의 스위스는 온도는 차가웠지만 햇빛이 아주 끝내줬다.
혹시 그 느낌을 아는가, 더운 여름날, 집에 들어와서 샤워를 한 후
에어컨을 켜고 뽀송뽀송한 이불을 덮고 있을 때의 그 시원함과 따뜻함이 공존할 때의 포근함.  
(물론 엄마한테 들키면 등짝 스매싱은 각오해야 한다.)



11월 초의 스위스는 딱 그 느낌이었다.
쾌적하고 따뜻하고 포근했다.


루체른의 아름다운 카펠교.


루체른의 아름다운 카펠교.

카펠교는 루체른을 대표로 하는 이미지에 자주 등장한다.

카펠교는 호수 쪽에서 쳐들어오는 적들을 감시하는 요새로 1333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카펠교 위를 걸어보기로 했다.
다리를 덮고 있는 나무 지붕을 바라보았는데 그곳에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이게 무엇인지 나중에 알아보니 이 패널화는 17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모두 루체른의 수호성인과 역사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카펠교 옆로는 루체른의 노천 레스토랑들이 늘어서있다.




맑고 투명한 루체른 호수는 아름다운 스위스의 건물들을 비춰주어 장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호프교회.


호프 교회.

이 아름다운 교회는 후기 르네상스 양식의 전형적인 외관을 하고 있는데 대사원으로도 불리는 오래된 대학교회이다. 호프 교회의 1640년에 만들어진 대형 오르간이 있는데 아름다운 음색을 자랑하는 이 오르간은 루체른 국제음악제가 열릴 때, 연주되곤 한다.



빈사의 사자상을 보러가는 길에 발견한 OLD SWISS HOUSE.


빈사의 사자상을 보러 가는 길에 발견한 OLD SWISS HOUSE.


이 올드 스위스 하우스는 루체른의 맛집이라고 한다.
역사도 굉장히 오래되었고 가정집을 개조하여 레스토랑으로 만든 곳인데 실내는 클래식한 유럽풍의 인테리어와 가구, 그리고 식기들이 가득하고 그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압도될 정도라고 한다. 고풍스러운 가정집의 느낌이랄까. 음식의 맛도 아주 맛있다고 다들 극찬을 하더라. 하지만 그만큼 가격이 아주 후들후들하다고 한다.
우리가 한국에서 파스타집을 가면 식전에 나오는 양상추 샐러드, 그것이 한국돈으로 만원이라고 하니 스위스의 물가가 체감이 될 것이다.

그 나라의 경제와 물가를 알아보려면 빅맥지수를 확인해보면 된다.
2016년 1월 기준 스위스의 빅맥지수는 6.44로 세계 1위. 빅맥 햄버거 하나가 7,600원이라는 이야기.
우리나라의 빅맥지수는 3.59  세계 14위로 빅맥 햄버거 하나가  4,200원.

당연히 나는 스위스에서 OLD SWISS HOUSE도 맥도날드도 가지 못했다.
오직 대형마트인 COOP만 이용했다. 나는 가난한 배낭여행객이니까.





빈사의 사자상.


빈사의 사자상.

이 빈사의 사자상을 볼 때는 뭔가 마음이 굉장히 숙연해졌다.
화살을 맞고 슬픈 표정으로 죽어가는 사자 조각상이 암벽 중간에 새겨져 있는 빈사의 사자상은, 1792년 프랑스혁명으로 들끓던 파리의 튈르리 궁전에서 부르봉 왕가의 마지막 왕인 우리가 잘 아는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지키다가 희생된 스위스 용병 786명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덴마크 출신의 조각가 토르발센이 만들었다고 한다.

그 스위스 용병들을 포위하고 있던 시민 혁명군이 퇴각의 기회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신뢰와 신용을 지키며 도망가지 않고 그 운명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슬픈 표정의 사자.



사자는 스위스 용병들을 상징하는데 슬픈 표정으로 고통스럽게 최후를 맞이하는 모습이 묘사되어있다. 사자의 발아래에는 부르봉 왕가의 문장인 흰 백합의 방패와 스위스를 상징하는 방패가 조각되어 있다.
'톰 소여의 모험'을 쓴 미국의 소설가인 마크 트웨인은 이 사자 기념비를
"세계에서 가장 슬프고도 감동적인 바위"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원래 스위스는 지금과 달리 아주 척박한 땅의 가난한 나라였다.
가족들을 깊은 산속에 숨겨놓고 목숨을 걸고 대신 전쟁을 치러주는 용병을 하는 것이 그들의 사는 방법이었다고 한다. 1527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가 로마를 약탈할 때도 오직 스위스 용병만이 마지막까지 교황의 곁을 지켰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바티칸 교황을 지키는 근위병은 오직 스위스 용병만이 할 수 있다고.





빈사의 사자상을 보고 무제크 성벽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가장 높은 곳에 무제크 성벽이 있었기에 나는 구글맵을 켜고 한없이 지도를 따라 올라갔다.




무제크 성벽으로 가기 위해 올라가는 길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늦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노란 은행잎들과 낙엽들이 곳곳을 아름 다게 물들이고 있었고 위에서 내려다보는 루체른 호수의 모습도 평화로웠다. 정말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평화로웠다.


'무제크 성벽으로 가려면 이쪽길로 가세요'라고 적혀있는 이정표.


'무제크 성벽으로 가려면 이쪽 길로 가세요'라고 적혀있는 이정표.

관광객들을 위함일까,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들을 위함일까.
투박한 솜씨이지만 친절함이 가득 담겨 있는 이 이정표를 보는 순간,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무제크 성벽에 있는 탑 중 '자이트 탑'.



무제크 성벽에 있는 탑 중 '자이트 탑'.
이 자이트 탑에는 시계가 있다. 저기 보이는 저 시계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시계라고 한다.




천천히 산책하듯 올라갔더니 어느새 다다른 무제크 성벽.
이 무제크 성벽은 중세 시대에 루체른을 보호할 요새로 만들어졌는데 현재는 북쪽 부분의 약 850m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14세기 초에 지어진 총 9개의 탑이 있는데 지금은 여름에만 문을 여는 전망대로 사용되고 있다.






루체른을 돌아보다가 문득 느낀 것은 스위스 사람들은 가족들과 참 많은 것을 함께 한다는 것이다.
가족과 함께 산책을 하고 아이들과 함께 장난을 치며 휴일을 보내고. 너무나 평화로운 스위스의 배경과 겹쳐져서 그런지 그들의 삶이 너무나 부러웠다.

앞만 보며 치열하게 살아오느라 현재를 잃어버리고 나중이라는 시간을 보험이라고 생각하며 사소한 행복을 놓치며 살아오다가 이제는 그 소중함을 다시 되돌릴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 나에게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 부러웠다. 샘이 날 정도였다.
그리고 다시는 볼 수 없는 나의 소중한 사람이 정말 보고 싶었다.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무제크 성벽에서 내려와 구시가지 쪽으로 갔다. 한국인은 밥심이라고 했던가, 아침 일찍 먹은 빵이 소화가 다 되었는지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앞서 말했듯이 스위스의 물가는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나는 마트를 선택했다. COOP이라는 대형마트는 스위스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고 가난한 여행객들의 배를 채워주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구시가지 내에 큰 COOP이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갔다.

그러나 이게 웬걸. 문을 닫았다. 일요일이라서.




이 날은 일요일. 유럽의 모든 상점들을 일요일에 쉰다. 잠시 그것을 잊었던 것이다. 현실을 직시한 순간, 배가 더 고파오기 시작했다. 편의점 같은 곳도 없다. 숙소에 있는 나의 비상식량은 저녁에 먹을 왕뚜껑뿐.
게다가 내일은 아침 일찍 인터라켄으로 이동을 해야 했기에 내일 먹을 아침과 점심까지 간단하게 챙겨놓으려고 했는데 망했다. 


어떻게 할까 안절부절못하다가 마지막 희망을 걸고 루체른 역으로 가보기로 했다.
설마 기차역에 있는 COOP은 운영을 하겠지 하는 생각에.

한 20분 정도 더 걸어서 루체른 역에 도착을 했고 다행히 작은 규모의 COOP이 있었고 거기에서 장을 볼 수 있었다. 아무리 COOP이라고 할지라도 레스토랑에 비해 가격이 저렴할 뿐이지 전체적인 물가는 비쌌다.
그래서 나는 총세끼의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물, 요거트, 크로아상 2개, 모벤픽 아이스크림, 당이 떨어질 때를 대비해 킨더초콜릿을 샀고 총 9.95 프랑. 11,500원으로 삼시세끼 식사를 해결했다.






장을 봐서 루체른 호수로 다시 갔다.
그 옆에 벤치에 앉아 이 모벤픽 아이스크림으로 이 날의 점심을 대신했다.

빵과 요거트는 내일을 위해 아껴두기로.








오후 3시 30분이 되었고 나는 체크인을 위해 숙소로 돌아갔다.
내가 루체른에서 묶게 된 숙소는 Lion Lodge Luzern.
그나마 저렴한 호스텔이라고 해서 예약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오기 일주일 전 이 호스텔은 무조건 mix room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녀 혼숙이라는 거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또 멘붕이었다.
일행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혼자서 남녀 혼숙 도미토리를 사용하는 것은 뭔가 굉장히 위험천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기에 뭔가 정신없이 너무 바빴기에 바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출발을 하게 되었다.
이 호스텔의 주인은 필리핀 사람이었고 직원들도 모두 필리핀 사람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성전용 룸은 없는지, 오늘 예약한 사람들 중에 한국인은 없는지,
있다면 그들과 같은 방을 쓸 수 있게 해달라고 했는데 단호한 사장은 단칼에 모두 다 NO.




게다가 내 방은 5층이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이놈의 호스텔. 젠장.  짐을 들어주지도 않는다. 낑낑거리고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밟으며 무거운 캐리어와 짐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1등으로 체크인을 했는지 6인 Mix Room에 아무도 없다. 나는 제일 안 쪽 1층 침대에 자리를 잡고 필요한 짐들을 꺼내고 물건 단속을 철저히 했다. 시설도 너무 낡았고 침대에 개인 등도 없고 무서웠다. 잠깐 침대에 누워서 쉬다가 6시가 되었고 나는 저녁을 먹기 위해 내 사랑 왕뚜껑과 햇반을 들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대체 누가 유럽에 한국인이 많다고 한 것인가.
이 넓은 호스텔에 한국인은커녕 나 말고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나는 쓸쓸하게 식당에 앉아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내 사랑. 나의 위로. 나의 힐링푸드 왕뚜껑



내가 힘들 때마다 나는 듬뿍 위로해주던 왕뚜껑.

내 사랑. 나의 위로. 나의 힐링푸드 왕뚜껑.
외롭고 무서웠지만 나는 씩씩하게 햇반까지 말아서 든든하게 밥을 먹었다.



+)

 밥을 먹고 다시 내 방으로 올라가서 여행 정리를 하고 내일 인터라켄으로 이동할 것, 내일 할 일 들을 정리하고
침대에 엎드려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다이어리를 쓰고 있는데 갑자기 방 문이 열렸다.
그러고 들어온 어떤 중동 사람 같은 남자. 이 방을 쓰게 된 사람인가 보다. 그는 나를 보며 깨끗하게 맑게 자신 있게 "HI ♪~" 라며 인사를 했다. 나는 그를 보며 정색을 하고 나의 특유의 낮고 힘 있는 저음의 목소리로 "Hi, "라고 대답을 하고 바로 고개를 돌렸다.
이것은 "나한테 말 걸지마. 나한테 해코지 하면 죽는다."는 어떤 무언의 표현.



그는 나의 포스에 눌렸는지 그 뒤로 정말 조~~~~~~용히 살금살금 움직였다.
진짜 있는 듯 없는 듯 문도 살살 닫고, 가방 지퍼도 천천히 조용히 치이익 열고.
그가 옷을 갈아입는다고 바지를 벗을 때 나는 뒤통수부터 발끝까지 완전 촉을 세우고 긴장을 했지만
그는 이불도 살포시 들어 올리고 조용히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불편해서 잠을 설칠 줄 알았지만 야간열차에서도 잠을 못 자서 그런지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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