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 여자 사람의 싱글라이프는 생각했던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더 이상 ‘알던 남자’들은 유부녀가 된 나를 뚜렷한 이유 없인 만나지 않을뿐더러, 여자 친구란 것들은 뿔뿔이 결혼해 각자의 전쟁터에서 애 낳고 키우느라 안부를 묻기도 곤란해졌다. 월말 부부인 내가 남편 없이 혼자 보내는 어느 주말 밤, 개콘 엔딩 음악으로 한 주를 날릴 순 없다며 호기롭게 집을 나섰다.
영화 <은교>. 책장 읽어 내려가듯 혼자여도 나쁘지 않으리. 혼자 영화보기의 좋은 점은 언제 어느 때든 1인 좌석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상영관 맨 뒷좌석을 향해 계단을 오르는 길에 낯익은 한 남자가 눈에 띈다. 내 오랜 옛 애인이 거기 앉아 있었다. 혼자가 아닌 커플로 말이다. 한때는 함께 결혼을 꿈꾸기도 했지만 이제 와 주절거려 봤자 죽은 아이 고추 만지기일 뿐이다. 서로의 결혼식을 가지 않았으므로 막연히 실체는 없었던 상대방 배우자의 존재를 맞닥뜨린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진짜 결별은 지금 진행 중이다.
그들 역시 나와 한동네에 산다는 소문을 듣고선 혹시 신랑 없이 홀로 장을 볼 때 다정하게 카트를 미는 그 부부를 마주칠지 모른단 불길한 예감이 있긴 했다. 그러나 하필 고무줄 치마와 왱왱이 안경을 풀장착한 오늘 밤 여기 6번 상영관에서 일 줄이야. 유일하게 다행한 점은 그는 나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9천 원짜리 떡 사 먹었다 치고 그냥 집에 가버릴까.’ 복잡한 내적 갈등이 유보된 두 시간 동안 영화는 아름다웠다. 은교를 바라보는 이적요의 세밀하고도 집요한 시선을 대하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문득 저 앞의 두 남녀를 훔쳐보고 싶은 내 관음 욕구도 뻔뻔하게 정당한 권리로 여겨지기에 이르렀다.
엔딩 크레디트가 오르기 시작하자마자 빛의 속도로 내 이성은 조급해진다. ‘지금 빨리 내려가 볼까? 그렇지 않으면 난 죽을 때까지 그녀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길이 없어. 어떤 여잔지 너무 궁금하다고! 하지만 그러다 내가 발각되면 그 망신은?’ 호기심과 두려움의 대차대조표가 급해졌다.
작은 키를 무기 삼아 요리조리 몸을 숨기며 적당한 기둥에 숨어 훔쳐보는 데 성공했다. 허리부터 발목까지 내려오는 블루 맥시 롱스커트가 잘 어울리는 그녀는, 젠장 예. 뻤. 다. 아담한 나와는 전혀 다른 타입의 키가 큰 늘씬한 여인. 도대체 뭘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그녀가 미인이 아니길?
자정을 훌쩍 넘은 시각, 돌아오는 길은 안심되면서도 허전했다. 언젠간 누군가에게, 어딘가에 꼭 털어놓고 싶었다. 그때의 분한 마음을, 적막했던 시간을 가득 메운 폭풍 상념들을, 그리고 완전 범죄에 가까운 오늘의 숨 막히는 심야 추격전을. 이적요의 입을 빌리면 그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랬다. “너희의 지금 그 오붓함이 상이 아니듯, 오늘 밤 나의 찌질함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은 아니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