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대체 몇 번째 경신인지 믿을 수 없던 저는
그 숫자를 조용히 응시했습니다.
비트코인이나 주식이면 팔짝팔짝 뛰어 보이겠으나
슬프게도 이건 체중계의 숫자였습니다.
지난 명절, 엄마 집에서 2주 동안 머무는 동안
제 삶의 슬로건 마냥 걸어둔 '먹고 놀고 자고'의 여파가
이제 온 것인지, 아니면 겨울 내내 밤마다 팝콘을
손에 붙든 이유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둘 다 혹은 더 많은 이유들이 있을 것입니다.
겨울은 원래 살찌는 겨울이라고들 하지만,
이건 해도 너무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 더 이상은 높아지는 숫자를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손은 이런 마음과는 달리
여전히 배달 어플과 달콤하고 짭짜름한 팝콘(주의: GS편의점에서 파는 영화관 팝콘은 절대 먹지 마세요)에 닿아있었지요.
아직 바람은 차지만 거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쨍한 볕은 겨울이 끝나가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이렇게 봄이 오고 있는데 제 살들은 제 몸에 딱 붙어
겨울잠을 자고 있습니다.
이제는 깨워서 내보내야겠습니다.
그게 제가 살 길인가 싶으니까요.
때때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발 저림, 이유 없이 무거운 어깨, 아침이면 동그랗고 뽕뽕하게 부은 얼굴,
과식이 불러온 더부룩함-
모두 제가 먹는 음식 때문이겠지요.
1인 가구에게 배달음식은 쾌락을 주지만
안락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봄이 온답니다.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어느새 불어난 제 살들과는 이별을 고하고
건강하고 맛있는 집밥과 만나보기로 했지요.
마침 정월대보름이니 오곡밥도 짓고
나물도 무쳐보기로 합니다.
엄마가 따서 말려 보내준 제주 고사리는 3시간을
물에 담가놔도 불지 않아
몇 번이나 유튜브와 블로그를 검색했다지요.
명절이나 제사 때 엄마가 만드는 걸 본-
참기름 쓱, 소금 톡톡, 국간장 쪼르르, 깨 톡톡으로
마무리되는 나물 무침은 그리 간단하게 흉내 낼 수 있는 요리가 아니었습니다.
오곡솥밥, 콩나물 무침, 시금치 무침, 당근 볶음(결국 고사리는 다음날 끝냄)을 하고 나니 어느덧 3시간이 지나있었습니다.
밥 한 끼를 이렇게까지 먹어야 하나라는 자괴감을 느끼며 한 술 떠먹은, 찰지고 따뜻한 오곡밥은
자괴감을 자신감으로 바꿔놓았습니다.
'내가 만든 음식이 이리 맛있나' 하는 자만심도 덤으로 따라왔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저는 1주일 동안 배달앱을 열지 않습니다.(엄청난 일입니다)
대신 나물들을 담아둔 용기 뚜껑을 열고 닫았지요.
비빔밥도 해 먹고, 너무 많이 만들어 유독 많이 남은 당근 볶음으로 당근 김밥도 만들어 먹었습니다.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와도 냉장고 안의 제 손 맛이 깃든 음식들을 꺼내어 먹는 부지런함이 장착되었습니다.
배달어플은 그렇게 제게서 잊혀 가고 있습니다.
제가 저를 그저 아무렇게나 내버려 둘 때의
가장 큰 신호는 체중계의 숫자입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신호가 있을까요:-)
생각나는 대로 먹고, 먹고 싶은 것만 먹고, 배가 불러도 먹습니다.
단 걸 먹으면 짭짜름한 것도 먹어야 하고
매운 걸 먹으면 느끼한 걸로 중화시켜야 했죠.
양과 정도가 선을 넘었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지요.
그 선이 너무 넘어가기 전에 되돌아오려고 하지만
때로는 그렇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지난겨울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두세 가지 일을 하느라 퍼져버린 몸은 귀찮음만을 달고 있었으니까요.
봄이 오고 있음이, 사소한 요리들이
저를 출발점에 데려다준 듯합니다.
아무리 다이어리에 적고 아무리 마음을 잡아봐도 되지 않던 다이어트와 배달음식 끊기는
이렇게 우연히 시작되었습니다.
얼마나 지속될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시작이 반이고,
그 반에 저는 이미 혼자 봄날의 어느 벚꽃 속을 거닐고 있답니다.
두꺼운 패딩 속에 감추기 급급했던 제 살들을 봄이 오면 어쩌나 했는데 이제는 봄을 기다려봅니다.
어서 오렴, 봄아
+
딱 한 달 동안 건강한 요리(?)와 적당한 운동(걷기)으로 봄을 준비해보려 합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싱그러운 봄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