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에는 두 마리의 고양이가 삽니다.
15살, 3.5kg의 하얗고 조그마한 호박이, 그리고 호박이의 아들 라라(14살, 6.5kg)입니다.
제 몸무게(비공개에 대해 양해 부탁드립니다)에 비해 몇 십 분의 일로 작고 작은 녀석들이지만
크기와 무게에 상관없이 저희 집에서만큼은 가장 존재감을 뿜어냅니다.
이번 글에서는 야옹이들의 만행을 널리 알려볼까 합니다.
아마도 많은 집사님들이 동의할 거라 생각됩니다.
고양이는 특이하고 요상합니다.
부르면 오지 않으며, 부르지 않으면 옵니다.
물론, 가끔은 부르면 오기도 합니다.
아주 가끔 내킬 때만요.
고양이는 사람의 음식을 거의 탐하지 않으며 아무리 사료를 쌓아두어도 위가 허락할 만큼만 적당히 먹습니다.
음식을 남기면 안 된다는 생각에 아무리 배가 불러도 늘 위를 채우는 저와는 다르지요.
두 번의 킁킁으로 먹을 음식인지, 팽하고 돌아설 음식인지를 결정합니다.
팽~당한 사료나 간식은 그대로 버려지기도 하지만 더러는 몇 시간 후에 먹기도 합니다.
(역시나 드문 일이라 그저 감사합니다)
수돗물을 똑똑 떨어지게 해 두는 걸 잊으면 '느아앙'하고 울며 다가와 발밑을 맴돕니다.
제가 자리에서 일어나면 반 걸음 앞으로 걸으며 저를 부엌 싱크대로 유인합니다.
소리 없는 우아한 발걸음에 제 발걸음도 조심스러워집니다.
"미안해, 언니가 깜박했어"라는 말과 변명을 알아듣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미안한 건 미안한 거니 사과를 합니다.
행여나 화장실에 응가가 차서 더럽다고 느껴질 때도 어김없이 '느아앙'하고 저를 부릅니다.
때로는 그 눈빛에 '제때제때 안 치우기는~'이라는 핀잔이 엿보입니다.
삽을 들고 감자를(고양이의 쉬아가 굳은 모래가 감자를 닮아 그리 부릅니다.) 열심히 파냅니다.
역시나 미안하다는 말을 곁들이면서요.
저는 고양이들에게 사과할 일이 많은 집사입니다.
감자들이 깨끗하게 제거됐음을 파악한 야옹이들은 그제야 화장실에 쏙 하고 들어갑니다.
치워진 화장실이 마음에 들면 고양이들은 신나게 모래를 팝니다.
그 모래들은 카펫(베란다용 카펫입니다)에 흩날리며 떨어집니다.
그걸 치울 생각에 제 마음도 흩날립니다.
저는 조용히 일어나 묵직한 청소기를 들고 옵니다.
그리고 모래파티가 끝나기를 기다리다 고양이가 화장실을 떠나면 묵묵히 전원 버튼을 누릅니다.
고양이의 부름에 따라나서야 하는 눈치 있는 집사가 됩니다.
고양이의 부름이 있기 전에 알아서 물도 틀어 두고, 화장실도 치우는 부지런한 집사가 되어야 합니다.
작년 봄, 잦은 출장과 긴 여행으로 고양이들을 부모님 댁에 한 달 넘게 부탁드린 적이 있습니다.
두 녀석을 두고 오며, 손이 많이 가는 이 녀석들을 부모님이 잘 돌볼 수 있을지, 저를 찾지는 않을지 걱정했더랬죠. 그리고 이 녀석들이 없을 휑한 집에서 저는 잘 지낼수 있을지도 염려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고양이가 없는 집의 아침은 모래 화장실을 치우지 않아도 되며, 물그릇을 씻고 채우지 않아도 되며,
오늘은 또 어떤 간식을 팽하고 거절당할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평온 그 자체였습니다.
유리병에 미지근한 물을 담고 보리차 티백을 넣어 우린 차의 고소함을 즐길 시간이 있더라니까요.
조용히 베란다로 걸어가 며칠 전 치워둔 채로 그대로 있는 고양이 화장실을 보니 미소가 살짝 번졌습니다.
더 이상 채우지 않아도 되는 사료그릇은 어떻고요.
스크래쳐 가루와 모래가 날리지 않는 바닥이라니요!
하지만 이런 평온함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현관문을 열며 입술이 먼저 '호박아, 라라야'를 외쳤고, 노트북을 열고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야옹야옹 소리가 귓전을 맴도는 것입니다.
밖에서 난 소리인가 하고 창문도 열어보았지요.
하얀 고양이 증후군이 생긴 건지 안경을 쓰지 않은 흐린눈엔 집 안의 하얀 쿠션과 베개와 수건들이 웅크려있는 야옹이로 보일 지경이었습니다.
몸은 이토록 편한데 마음과 정신은 반대의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고양이들에게 길들여질 때로 길들여진 집사란 이런 것일까요.
집사분리불안이라는 게 이런 것일까요.
하루에 서너 번 청소기를 돌리고, 돌돌이를 수십 번 돌려도, 어렵게 고른 사료와 간식들이 버림받더라도,
새벽녘 부스럭 소리에 벌떡 일어나 이 녀석들이 또 무슨 일을 저지른 건 아닌지 집안 곳곳을 살피느라 잠을 설쳐도 좋으니 그저 제 곁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요.
어른들이 말씀하신-
고양이는 요물이 맞습니다.
옛말은 역시나 틀리지 않습니다.
이 요물들은 저를 움직이게 하고 번거롭게 하지만
또 저를 살아가게 하나 봅니다.
그럼 저는 이만
모래삽 들고 화장실 청소하러 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