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병이 곧 오려나 봐요
큰아이가 중학생이 된 이후 계속 인스타그램을 깔아 달라고 졸랐다. 나의 대답은 “안돼”였다. 왜 안 되냐고 묻는 아이에게 인스타그램은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말과 함께 네가 모르는 사람과 DM을 주고받다가 범죄에 휘말릴 수도 있고 여러모로 득보다 실이 많아서 허락할 수 없다고 했다. 나의 답이 성에 차지 않았는지 아이는 비교 화법을 꺼내놓았다. “나만 인스타 없다고!” 마음속으로 솟구쳐 오르는 한마디. ‘어쩌라고!’를 삼키며 아이에게 1학기는 안 되니 2학기에 다시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고 말했다.
어느새 8월, 여름방학이 끝나간다. 지난 주말 뜬금없이 아이가 물었다. “엄마 인스타 생각해 봤어?” 아이의 물음에 “아직 2학기 안 되었어”라는 말로 위기를 모면했다. 곧이어 “엄마는 인스타 하잖아”라는 반격이 시작되길래 “나는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야.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야” 하며 눈을 흘겼고 아이는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 버렸다. 도대체 인스타가 뭐길래 너와 나를 이렇게 흔들어 놓는지 정말 핸드폰 없던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마흔 넘은 나조차 뭐가 진실이고 뭐가 허상인지 구분할 수 없는 가상의 세계에서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다. 온갖 포장으로 도배된 허상의 실체는 당사자만은 알고 있을 뿐 외부에서는 보이는 대로 보고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보이는 대로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소용돌이친다. 다 잘 사는 것 같지만 정말 부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웃고 있지만 매일 행복한 건 아닐 거라는 마음이 영역을 확장하며 나의 시간을 혼란의 소용돌이로 빠트린다. 알 수 없는 후회는 금세 차오르고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애꿎은 시계만 쳐다본다. 이런 혼란스러운 마음을 아이는 알지 못한다. 울타리 너머의 세상이 궁금한 아이를 언제까지 가로막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최대한 버티고 싶다. 욕심을 내서라도.
보이는 대로 보지 않을 용기가 나에게도 있었다면 오히려 쉬웠을 결정인지도 모른다. 그깟 인스타가 뭐라고 한번 해보라고 말하지 못한 건 어쩌면 내 마음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바라보는 아이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듯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도 나와 같은 시선일 수는 없다. 어쩌면 아이는 나보다 더 나은 분별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끔은 이 시간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바랄 때도 있다.
몇 해 전 영어 회화 수업에서 여든을 바라보는 노부부를 만난 적이 있다. 자녀들이 성인인데 모두 한집에서 산다며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자녀들이 어릴 때는 두 분이 너무 바쁘게 살아서 가족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았고, 아이들을 살뜰히 챙겨주지 못했는데도 자녀들이 잘 자라주었다며 늘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자녀들에게 잘해 주지 못한 과거에 대한 후회보다 자녀와 함께 하는 일상의 기쁨을 누리는 노부부의 모습에서 여유가 흘러넘쳤다. 이십 년 후 나는 어떤 일상을 누리고 있을까? 먼 훗날의 일상이 그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곧 나에게 닥쳐올 일상은 선명하게 그려진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인스타 노래를 불러 댈 아이의 목소리가 벌써 내 귓가에 맴도는 것 같다. 아이를 전적으로 믿어주고 기다려줘야 하는 힘이 내 안에서 솟아나기만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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