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너무 그리운 몰타
몰타 새벽 6시 도시락과의 전쟁
일단 한국 급식 만세!! 먼저 외쳐본다.
아이 둘 데리고 몰타에서 1년 살기 하면서 가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 무엇이냐고 누가 물어보면 새벽 6시 기상해서 도시락 싸는 일이었다고 대답한다. 물론 도시락 싸는 일은 몸이 힘든 것이지 마음이 힘든 일은 아니다. 마음이 힘들었던 일들은 너무 많아서 도시락 싸기처럼 단번에 떠오르지도 않는다.
한국은 유치원부터 초등, 중등, 고등까지 급식이 잘 되어있어서 아이들 도시락 걱정이 없다. 가끔 소풍 갈 때 한 번씩 싸는 김밥 정도는 우스운 12년 차 엄마가 되었으니까. 그리고 결혼 후 새벽 출근하는 남편 아침을 차려준 기억은 더 없다. 회사에 가면 아침, 점심, 저녁을 다 주는 남편 회사가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고로 나는 한국에서 새벽 기상할 어떠한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몰타에서 의도치 않은 미라클 모닝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이들 등교 시간은 7시 40분이다. 학교까지 걸어가야 하니 7시 20분에는 집을 나서야 하고 그러려면 7시에는 아이들 깨우고 아침도 먹여야 한다. 거기다 도시락까지 싸야 하니 엄마인 나는 새벽 6시에 일어나야만 했다. 새벽 6시 기상이 누군가에는 미라클 모닝이 되겠지만 나에게는 도시락 지옥을 맛보는 시간이었다. 몰타 1년 살기 후 한국에 돌아와 가장 좋았던 일 중 하나도 역시 도시락 지옥에서 해방된 것이다.
몰타 도시락 지옥을 한번 둘러보면, 일단 도시락을 싸기 위해서는 장 보기가 먼저다. 누가 유럽은 선진국이라고 했던가? 몰타의 쇼핑문화는 한국보다 5년쯤은 뒤처진 곳이다. 클릭 몇 번만 하면 새벽에 문 앞에 딱 배송되는 한국의 온라인 쇼핑은 주부들에게 천국이다. 하지만 몰타는 온라인 배송보다 오프라인 소매점이 더 발달했다. 좀 더 신선하고 싼 식자재를 구하려고 하면 과일가게 한 번, 냉동식품점 한 번, 큰 마트 한 번, 정육점 한 번을 들러야 도시락 장 보기가 끝이 난다.
한국에서 안 쓰던 바퀴 달린 장바구니를 사게 되었고 아이들 등교하고 나면 양쪽 어깨에 장바구니를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한없이 멀고 고단하기만 했다. 하지만 장 보느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하루 만보 걷기쯤은 식은 죽 먹기가 되었다. 그 덕에 몰타에서 다이어트를 할 필요가 없었고 결혼 12년 만에 비키니도 입어 보게 되었다. 또한 지중해의 따가운 자외선 덕분인지 한국에 돌아와서 한 건강검진에서 나의 비타민 D 지수는 3배가량 높아져 있었다. 몰타에서 만난 엄마들은 하나같이 몰타에 와 살이 빠졌다고 하니 누가 다이어트를 하고 싶다고 하면 몰타 살기를 강추해 본다.
도시락 메뉴를 살펴보면 가장 많이 싼 메뉴는 삼각김밥과 샌드위치다. 학교에 간 첫 주에는 아이들에게 외국 친구들은 도시락으로 무엇을 싸 오는지 물어보았다. 어떤 아이들은 식빵 한 장에 오이, 당근을, 어떤 아이는 요플레랑 과일을 싸 온다고 했다. 편식을 안 하는 아이지만 친구가 당근을 먹는 것을 보니 자기도 생당근을 싸달라고 해서 싸준 날도 있다. 역시나 그날 집에 오자마자 하루면 충분하다면서 다음에는 원래대로 도시락을 싸달라고 했다.
아이들이 빵을 좋아해서 샌드위치나 토스트 같은 빵 종류의 도시락은 처음에는 1시간이 걸리더니 나중에는 30분만 투자하면 도시락 2개쯤은 뚝딱 완성했다. 편의점에서 파는 삼각김밥만 먹어봤지 매일 삼각김밥을 싸게 될 줄이야. 삼각김밥 안에 볶은 김치, 참치, 그리고 진미채 등 매일 내용물만 조금 바꿔서 싸주면 아이들은 남김없이 다 먹고 빈 통만 집으로 가져왔다.
학생 시절 엄마가 싸주던 도시락의 노고를 그제야 알게 되었다. 도시락을 싸면서 그 시절 엄마의 고단함에 감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매번 도시락을 깨끗이 비우고 오는 아이들에게는 내일은 더 맛있고 건강한 음식에 사랑까지 듬뿍 담아 도시락을 싸주리라 다짐했다.
몰타에서 새벽 6시, 내 귓가에 울리던 알람이 그리워진다. 도시락 지옥마저 지나고 보니 선물 같은 시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몰타에서 꿈같았던 시간을 그리워하며 오늘도 그날의 기억을 떠올려본다.
비비작가의 어쩌다 몰타 조기유학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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