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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다락방 Feb 17. 2023

뭉치 뭉치 이 사고뭉치야!!

사랑스러운 요물

강아지가 우리 가족이 된 후 나는 더 부지런해졌다. 겨울 방학이라 아이들의 삼시 세 끼도 챙기고 쭈니의 삼시세끼 거기다 배변판 치우고 귀 청소, 털 빗겨주기 등등. 둘째의 간절한 요청에 강아지 입양을 허락했고, 본인이 대소변 다 치운다는 확언을 믿었건만 역시나 유효기간은 너무 짧았다. 한두 달 지나니 슬슬 나한테 미루기 시작했다. “엄마 이번에만 치워주세요.” “엄마 나 지금 학원 가야 하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엄마” “엄마” “엄마” 그렇게 강아지는 내 몫이 되었다.

     

아기도 강아지도 조용하다 싶으면 사고를 치는 법. 일단 ‘드르르’ 소리가 나면 뛰어가야 한다. 분명 휴지를 입에 물고 있을 테니. 쭈니는 화장실 휴지를 입에 물고 거실까지 줄행랑친다. 꿀떡 삼켜버린 휴지는 쭈니의 변에서 곧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몇 번 반복하니 이제는 휴지 걸이에 있는 휴지를 몽땅 빼놓고 온 가족이 사용한다. 편리함에서 불편함으로 삶이 조금씩 변하는 이상한 기분이다. 

     

장난칠 휴지가 없으니 이제는 쓰레기통을 뒤진다. 우리 집 휴지통은 센서가 있어서 뚜껑이 열리면 ‘띠리리’ 소리가 난다. 천재 쭈니는 이제 센서 위치도 파악했다. 고개를 들어 센서 정 가운데 코를 댄다. 그러면 어김없이 휴지통 뚜껑이 위로 열린다. 두 발로 휴지통을 지지대 삼아 머리를 최대한 속으로 넣는다. 입에 뭐라도 닿지 않으면 점프한다. 그 소리에 얼른 나는 화장실로 뛰어간다. 가득 차야 버리던 휴지통을 이제는 쭈니가 닿지 않을 정도만 채워 비우기 시작했다. 쭈니 덕분에 또 일거리가 추가되었다. 나의 부지런함도 추가되었다.

     

‘틱틱틱’ 이건 쭈니가 거실과 주방에 깔린 매트를 물어뜯는 소리다. 주방에는 발 매트가 있고 아이들 어렸을 때부터 거실에 깔아놓았던 층간소음 방지 매트를 버리지 않은 것은 신의 한 수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부족해 거실 복도에는 강아지 전용 매트를 깔아 두었다. 점점 가벼워지는 지갑은 쭈니의 귀여움으로 충분히 상쇄된다며 위로 아닌 위로를 스스로 한다. 하지만 매트를 깐 첫날 사고를 치고 마는 우리 쭈니!! 역시 우리 집 뭉치답다. 뭉치! 뭉치! 사고뭉치! 그리고 너무 귀여운 하얀 솜뭉치!

거실 복도 매트를 깔자마자 물어뜯어버렸다. 구멍이 뻥 뚫린 매트를 보고 있으니 가슴속 화도 뻥 터질듯하다. 

“이놈! 이거 비싼 거라고.” 내가 쭈니를 혼내니 둘째가 “엄마 쭈니한테 괜찮냐고 먼저 물어봐야지요? 쭈니야 이거 먹으면 너 배 아야아야 한다. 먹으면 안 된다.” 하며 얼른 강아지를 안아준다. 뭐지? 이 그림? 또 나만 나쁜 엄마가 된 건가?  

    

첫날 사고를 치고 쭈니는 한동안 매트를 물어뜯지 않았다. 하지만 중성화 수술 후 어김없이 조용하다 싶으면 들려오는 ‘틱틱틱’ 소리가 다시 시작됐다. 내가 달려가면 장난치는 줄 알고 쭈니는 도망가기 바쁘다. 내가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면 또 귀신같이 ‘틱틱틱’ 물어뜯는다. 매일 둘이서 끝이 없는 술래잡기하는 기분이다. 나 운동시키려고 작정했나 싶기도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니 슬슬 화가 차오른다. 술래잡기의 패자는 결국 나였다. 내가 세게 박수를 치면 쭈니는 놀란 눈을 하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난다. 하지만 익숙함은 무섭다. 이제는 박수를 쳐도 별 감흥이 없는 눈치다. “이놈”하고 박수를 치면 바둑알 같은 까만 두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눈빛으로 말한다. ‘손뼉 치면 어쩌라고?’ 우리 쭈니가 점점 무서워진다.  너를 어쩌면 좋니!! 사랑스러워 혼낼 수도 없는 이 요물 같은 녀석아!!    


              


쭈니의 견생사 더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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