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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다락방 May 31. 2023

영국에서 쏘니의 경기를 직관하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7월 중순 남편 회사 출장이 생겼다고 한다.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더니 영국과 프랑스라고 했다. 마침 여름휴가를 맞아 몰타에 오기로 되어있던 남편은 출장을 마치고 몰타로 넘어와 우리와 3주간 유럽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은 몰타대 섬머 캠프를 중간에 마무리하고 가족이 함께 영국, 프랑스, 스위스를 여행한 후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항상 여행하기 전에는 이런 전제가 깔려있었다. 우리가 언제 다시 유럽에 올 수 있겠어? 그래서 여행 계획을 세우기에 어렵지 않았다. 평생 살면서 단 한 번만 유럽에 올 수 있다면 꼭 봐야 하는 몇 가지가 있었다. 축구광인 남편은 영국에서 토트넘 경기를 직관하고 싶다고 했고 그 이유는 손흥민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파리에서 에펠탑을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스위스 융프라우에 올라가는 것이 목표였다. 너무나 명료한 희망 사항 덕분에 우리 가족 전담 가이드인 나는 이번 여행은 참 수월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남편의 바람은 이뤄지기에 고난이 많았다. 2022-23 시즌 토트넘 개막전을 보려면 주말에 영국에 머물러야만 했다. 영국, 프랑스, 스위스로 잡았던 여행 계획을 수수료를 지불해 가며 비행기표와 기차표를 바꿨다. 그리고 다음 관문은 토트넘 티켓을 구매해야 한다. 토트넘 구장에서 하는 개막전이다 보니 당연히 경쟁률이 치열했다. 우선 가족 모두 토트넘 회원으로 가입했다. 왜냐하면 회원 비회원 간 티켓 구매일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확률을 높여야 했기 때문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티켓 구매일에 컴퓨터 앞에서 몇십 번의 새로고침을 했건만 티켓 구매에 실패했다. 저렴한 티켓은 순식간에 마감되었고 그나마 비싼 좌석 티켓도 4명이 함께 앉는 자리는 없었다. 남편에게 미안하다며 이번에는 손흥민 선수 경기를 보는 것은 힘들 것 같다고 했다. 나의 노고를 충분히 알고 있으리라 기대했건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구매대행 사이트에 가서 비싼 티켓이라도 사서 보자며 나를 설득했다. 축구 경기 한 번 보는 데 그런 비용을 쓰다니 나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금액을 남편은 일생에 단 한 번이라는 이유로 쓰겠다고 했다. 저렴한 좌석 티켓을 비싼 가격에 사려니 속이 쓰렸다. 하지만 나조차도 영국에서 손흥민의 경기를 보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구매대행 사이트에서 클릭 한 번만 하면 결제가 이루어지는 단계에서 순간 혹시나 하고 토트넘 사이트를 한번 클릭했다. 이것은 운명이었다. 비록 비싼 금액이었지만 4 좌석이 나란히 있었다. 그날은 바로 기존 구매자들이 티켓을 취소하거나 변경하는 날이었다. 구매대행 사이트에서 구매할 티켓 가격보다 저렴했고 오히려 좌석은 프리미엄이었다. 사실 구매할 때만 해도 우리가 산 좌석이 프리미엄인지도 몰랐다. 그냥 경기장 조금 앞쪽에 위치해서 비싼 좌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경기 당일 구장에 가서야 우리는 놀라고 말았다.

     

우리가 구매한 좌석은 선수들과의 거리도 굉장히 가까웠고 입장하는 게이트도 일반 티켓 소지자와 달리 전용 출입구가 따로 있었다. 경기 전에는 간단한 식사 거리와 간식, 음료, 맥주 등이 무료로 제공되었고 전반전이 끝나고 난 뒤 쉬는 시간에는 쿠키와 음료가 제공되었다. 남편과 나는 시원한 맥주 한잔에 절로 미소가 나왔다. 남편은 모든 게 여보 덕분이라며 고맙다고 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토트넘 선수들이 하나둘 입장했다. 우리좌석은 선수 진출입로와 가까워 아이들은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손흥민 선수 이름을 크게 외쳤다. 비록 손흥민 선수와 눈이 마주친 것은 아니었지만 멀리서 빛나는 태극기를 보고 그도 조금이라도 힘이 나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더 크게 쏘니를 외쳤다. 그날 토트넘은 4:1 대승을 했고 손흥민 선수는 어시스트 하나를 했다. 눈앞에서 그의 멋진 활약을 보다니 진짜 그 감동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내가 이 정도의 감동인데 남편은 어땠을까? 남편은 이제 본인은 여한이 없다며 씩 웃는다. 과연?    

 

토트넘 구장은 2019년에 완공된 최신식 경기장이다. 화장실 조명은 마치 호텔 화장실처럼 깨끗했고 모든 게 새것이라 그런지 반짝반짝 빛이 났다. 사실 초반 티켓 구매에 실패해서 이렇게 런던을 떠날 수는 없지 라는 생각에 경기 다음 날 토트넘 구장 투어를 신청했었다. 직접 경기는 못 보더라도 손흥민 선수가 사용하는 락커에 가서 아이들 사진이라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티켓을 손에 쥔 덕분에 우리는 이틀 연속 토트넘 구장을 방문할 수 있었다. 경기를 관람할 때와는 달리 선수들 락커룸, 인터뷰룸, 운동하는 곳 등 경기장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었다. 진짜 VIP들을 위한 시설을 살펴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언젠가 성공해서 남편에게 토트넘 VIP 티켓을 무심히 툭 던져주는 날이 오기를 혼자 상상해 본다. 

옛다 토트넘 티켓!!




꿈같았던 몰타 1년 살기 더 둘러보기

https://brunch.co.kr/magazine/maltastory


https://brunch.co.kr/@viviland/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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