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일한다는 것은 제멋대로 일하는 것이 아니다

by vivir

일을 하며 가장 답답했던 순간 중 하나는,

다들 어느 정도 답을 알고 있는데도 아무도 먼저 움직이지 못하는 순간이었다.


회의에서는 방향이 얼추 정리된 것 같았는데,

막상 끝나고 나면 누가 결정하는지, 어디까지 진행해도 되는지 다시 애매해진다.

고객은 답을 기다리고 있고, 일정은 밀리고 있고, 각자 속으로는 같은 답답함을 느끼는데도 괜히 먼저 움직였다가 책임만 떠안을까 봐 한 번 더 눈치를 보게 된다.


그럴 때 사람은 단순히 일이 느리다고만 느끼지 않는다.

내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구조가 내 판단을 믿지 않는다는 느낌까지 함께 든다.


그래서 한동안 나는 자유롭게 일하는 조직을 꿈꿨다.


불필요한 허락 없이 더 빨리 판단하고, 하나하나 설명하지 않아도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책임 있게 움직일 수 있는 조직.

그 감각은 지금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계속 통제 속에 있으면 조용해질 수는 있어도, 살아 있게 일하기는 어렵다.

늘 지시를 기다려야 하고,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지부터 살펴야 하고,

책임의 범위가 선명해질 때까지 아무 판단도 유보해야 하는 상태가 길어지면 일은 점점 형식이 되고 만다.


하지만 오랜 시간 일을 하며 알게 되었다.


자유롭게 일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자유는 단순히 간섭받지 않는 상태가 아니었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내 방식만 고집하고, 내가 편한 속도로만 움직이는 것은 자유라기보다 제멋대로에 더 가깝다.

처음에는 그 차이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사람과 구조가 함께 얽혀 있는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점점 분명해졌다.


우리 일에서는 하나의 판단이 단순히 한 부서의 일이 아니다.


기능 하나를 바꾸는 일도 학습자의 경험에 영향을 주고,

운영자의 피로를 늘릴 수 있으며, 고객이 느끼는 신뢰를 바꿀 수도 있다.

기술적으로는 맞는 선택이 실제 현장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자유롭게 일한다는 것은 단지 손이 빨라지는 일이 아니다.

내 판단이 어떤 사람과 어떤 구조에 닿는지 함께 볼 수 있는 상태에 더 가깝다.


나는 자율성을 책임의 다른 얼굴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책임은 더 많이 떠안는다는 뜻이 아니다.

방향을 이해한 사람이 자기 판단으로 움직일 수 있는 성숙에 가깝다.


누가 보고 있지 않아도 방향을 잃지 않는 것.

누가 세세하게 말해주지 않아도 자기 몫을 아는 것.

자기 방식으로 일하면서도 공동체의 흐름을 해치지 않는 것.


그것이 일을 하며 내가 끝내 놓치고 싶지 않았던 자유의 의미다.


자유는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이 아니라,

전체를 이해한 사람이 자기 판단으로 기여할 수 있는 힘에 더 가깝다.

그래서 성숙한 자율성은 늘 자유와 책임을 함께 가지고 온다.


자율성이 사람을 자라게 한다는 것도 결국 이 지점 때문이다.


늘 누군가의 답을 받아 적는 사람은 실수를 줄일 수는 있어도 자기 기준을 만들기는 어렵다.

반대로 자기 판단으로 움직여본 사람은 맞고 틀리고를 넘어, 왜 그렇게 선택했는지를 자기 안에 남기게 된다.


그 축적이 결국 사람을 단단하게 만든다.

정답을 많이 아는 사람보다, 자기 판단의 근육이 생긴 사람이 더 오래 가고 더 넓게 기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자율성이 중요할수록 더 필요한 것도 있다.

기준이다.


기준 없는 자유는 쉽게 자기중심성으로 흐른다.

“나는 이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는 말이 전체를 흔들 수 있고, “효율적으로 처리했다”는 판단이 사실은 다른 사람의 리듬과 맥락을 지워버리는 일일 수도 있다.


그래서 자유롭게 일할수록 사람은 더 자주 물어야 한다.


지금 이 선택은 정말 일을 더 좋게 만드는가.

나만 편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공동체 전체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가.

내 판단은 다른 사람의 자리와 전체의 흐름까지 함께 보고 있는가.


자율성은 빠르게 움직이는 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기 판단을 스스로 점검할 줄 아는 분별의 힘이기도 하다.


나는 자율성이 강한 사람에게서 특유의 안정감을 느껴왔다.

그 사람은 굳이 통제하지 않아도 방향을 잃지 않는다.

애매한 순간에도 쉽게 숨지 않고, 누군가가 정리해주기 전에 먼저 전체 흐름을 본다.


그렇다고 자기 방식만 밀어붙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이 듣고, 더 넓게 이해하고, 자기 판단을 공동체 안에서 조율할 줄 안다.


그래서 그 사람 곁에서는 일이 덜 거칠어진다.

자유가 그 사람 안에서는 방종이 아니라 신뢰가 된다.


좋은 조직도 결국 이 차이를 알아야 한다.


자율성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불신으로 관리하면 사람은 눈치만 배우게 된다.

반대로 자유를 준다고 하면서 아무 기준도 세우지 않으면 공동체는 쉽게 흩어진다.


그래서 건강한 조직은 두 가지를 함께 해야 한다.


무엇을 위해 함께 있는지 분명하게 말하는 것.

그리고 그 방향 안에서 각자가 자기 판단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는 것.


좋은 리더도 마찬가지다.

방향은 분명히 하되, 모든 답을 대신 주지는 않는다.

그래야 공동체는 수동적인 복종이 아니라 살아 있는 참여를 배우게 된다.


이 지점에서 다시 책임감의 이야기와도 연결된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은 쉽게 자기 몫을 넘어선다.

자율성이 강한 사람은 쉽게 자기 방식에 갇힐 수 있다.


그래서 오래 가는 사람은 둘 중 하나만 강한 사람이 아니다.


자기 몫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 몫을 다루는 방식에서 공동체 전체를 잊지 않는 사람.

자기 판단으로 움직이면서도, 그 판단이 다른 사람과 구조 위에 어떤 결과를 남길지 함께 볼 수 있는 사람.


결국 자유를 바르게 다룰 줄 아는 사람만이 책임감도 건강하게 지킬 수 있다.


돌아보면 자유롭게 일한다는 것은 단지 빨리 움직인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가 보지 않아도 방향을 잃지 않는 힘이고,

정답을 받아 적지 않아도 자기 판단으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이며,

자기 방식으로 일하면서도 공동체 전체를 해치지 않는 성숙한 자율성이다.


나는 결국 오래 가는 사람은 자유를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자유를 바르게 다룰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좋은 공동체는 그런 사람을 더 많이 만들어내는 공동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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