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가진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무엇인가요?
80년 된 찻잔, 35년 된 자동차, 120년이 넘었다는 장식장. 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보통 주택의 현관문은 50년 이상 되었기 일쑤이고, 집안 곳곳에 할머니 대부터 전해져 내려온다는 그릇과 액자가 즐비하다. 프랑스인, 그들은 버리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프랑스인에게 물었다. 당신이 간직하고 있는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이 무엇이냐고.
아들 셋과 딸 하나, 그중 막내딸로 태어나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나는 어릴 적부터 원색의 옷을 입히고 싶어했던 엄마와 끊임없이 싸웠다.
핑크, 노랑, 초록 모두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했고, 검은색과 베이지색 같은 무채색 계열을 줄기차게 고집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넌 참 알 수 없는 애야”라고 말하며 고개를 젓곤 했다.
열한 살의 여름, 새침한 사촌 언니의 검은색 도트무늬 원피스를 보고 한눈에 반한 나는 검은색 꽃무늬 옷을 샀다. 색색의 옷을 입은 친구들 사이에서 세련된 검정 원피스를 입고 있으면 나 혼자 어른인 것 같았다. 그 옷이 작아질 때까지 입고 또 입으며 나는 어른이 된 듯한 기분을 만끽했다.
그리고 올여름, 열한 살이 된 내 딸에게 엄마는 깜짝 선물을 안겼다. 엄마가 내 어릴 적 옷과 장난감을 보관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 옷마저 갖고 계실줄 몰랐던 나는 검정 원피스를 보자마자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23년 만이었다. 그 옷은 딸아이에게 거짓말처럼 꼭 맞았다. 그 여름날의 ‘어린 나’와 ‘나의 딸’이 겹쳐지는 순간이었다.
스물한 살의 나는 젊었고 그 젊음을 마음껏 누려보고 싶었다. 나는 어느 날 벼락처럼 떠오른 생각에 중형 카메라 한 대만을 가방에 넣은 채 무작정 투르키스탄으로 떠났다. 우루무치에서 타클라마칸 사막까지 하염없이 걸었다. 실크로드의 중심인 호탄, 야르칸드, 카슈가르를 지났다. 그렇게 한 달 동안 중국의 신장 위구르를 렌즈에 담으며 때로는 기뻤고 때로는 슬펐다. 프로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그때 처음으로 했던 것 같다.
그 후로도 나는 여러 번 여행을 떠났다. 그것은 자전거로 4달 동안 남미를 횡단하는 것이기도 했고, 인도네시아와 캄보디아의 어느 시골 마을이기도 했다.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젊음의 열병을 나는 온통 필름에 기록했고, 1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어머니가 물려준 반지이다. 외할머니 대부터 전해져온 반지라 족히 40년은 되었다. 어머니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외할머니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것인데 액세사리를 즐기지 않았던 어머니였지만 결혼 전까지 꾸준히 착용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나를 임신했을 때, 딸이라는 걸 알고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이 반지를 나중에 물려줄 수 있겠구나’였다고. 유독 주얼리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보석함을 자주 열곤 했는데, 그때마다 어머니는 “이 반지는 나중에 너에게 줄 거야”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그랬듯, 어머니는 나의 스무 번째 생일에 그 반지를 선물로 주셨다. 그 자리에는 나를 몽슈슈라고 부르던 외할머니도 함께였다. 혹시라도 잃어버릴까 두려워 자주 착용하진 않지만 이 반지를 보고 있으면 나와 똑 닮은 눈을 한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떠오른다.
어머니가 나를 임신했다는 걸 말했을 때 과묵한 아버지는 며칠간 자기 작업실에 틀어박혔다고 한다. 출산을 앞둔 어머니가 아기방을 꾸미기 시작했을 때,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투박한 나무 말 모형이며 원숭이 인형을 가져다 놓았다. 그제야 어머니는 아버지가 지하 작업실에 긴 시간 머문 이유를 눈치챘다고 한다. 작은 말 조각은 무엇이든 손으로 만드는 것엔 재주가 있는 아버지가 본인의 기쁨을 나름대로 표현하는 방법이었던 것. 어머니는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맴돈다고 했다.
원숭이 인형은 내가 다섯 살 무렵까지 어딜 가든 함께했던 ‘치치’이다. 어릴 적 몇 년간 붉은 테의 안경을 쓰고 초점 교정을 해야 했던 내게 친구 사귀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꽤 오랜 시간 치치는 내 가장 친한 친구였던 것 같다. 두 살 터울의 형과 싸우거나 만사가 내 뜻대로 되지 않은 날이면 이 녀석에게 불평을 토로했던 기억이 남아있는 걸 보면 말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집을 떠났고, 대학 졸업 후에는 다른 나라에서 일한 지 오래라 이 우스꽝스럽고도 귀여운 치치를 자주 보진 못하지만, 지금도 내 방 한구석 선반 위에는 이 녀석이 앉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