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에 걸린 엄마라서 미안해

죄책감#1

by 오라일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공황발작에

한 손에는 종이봉투를 남은 한 손에는 비상약을 쥔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공황전투에 대비한 최선의 방어상태였다.


방어라고는 하지만 사실 공황에 항상 패배했다.

공황이 시작이 되면

최대한 빨리 이 고통이 끝나기를 견디고 견뎠다.


발작이 끝나고 나면,

온몸에 힘이 다 빠지고 눈뜰 힘조차 없어진다.


언제 어떻게 공황발작이 올지 모르니

내 몸은 24시간 비상상태였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의, 식, 주 모든 것을

혼자서 할 수없었다.


혼자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남편은 일을 해야 했고

나는 이런 상태이니

3살 아들은 무방비상태에 놓였다.


그래서,

모두의 생존을 위해,

아들은 시댁에 보내져 시부모님께서 손에 맡겨졌고

친정엄마는 딸 집에서 24시간 딸의 간병을 시작하게 되었다.


가정에서 엄마의 역할이 사라져 버리니

온 가족이 엉망진창 꼬여버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정신과병원에 입원하는 것보단 나을 거라 생각했다.


급성기(6주)에는 사실 기억이 잘 없다.

과호흡으로 찢어질 때까지 종이봉투에 숨을 몰아쉬고

아침, 점심, 저녁, 취침약과 더불어 수시로 먹는 비상약까지.. 매일 약에 취해있었다.

언제 올지 모를 공황발작에 매우 극심한 두려움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매일 24시간 늪에 빠지며 지내다 보니

나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제발 이 고통이, 이 통증이 사라지게 해 주세요.

이것만 외치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매일 밤

잠들기 전 엄청난 공포심에

성경구절을 붙들며 바들바들 떨었다.

정말 무서웠다.

감히 지옥이라 말할 수 있다.


아주 잠시 제정신일 때에는 성경을 찾았고

기도에만 전념했다.

많은 사람들이 죽기 전에는 신을 찾는다고 하지 않는가.

난 이때 하나님께 처절하게 매달렸다.


약에 취해 몸에 힘이 빠져 제대로 글씨도 못썼다.

<옛날 메모장>


그래도 나는

급성기(6주)만 지나면 이 힘듦이 어느 정도 사라질 거라 희망을 가졌었다.


그 희망마저 없다면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급성기가 지난 후

또 다른 큰 산들이 나의 앞길을 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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