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2
공황의 급성기가 지나갔다.
공황 발작이 하루에 한두 번 정도로 줄어들었다.
발작이 오기 전, 전조 증상을 감으로 알게 되었다.
비유를 하자면
출산할 때 진진통이 공황발작이라고 가장하면
생리통 수준의 가진통이 왔을 때 바로 비상약을 먹으면 발작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도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내가
얼굴만 간신히 빠져나와 숨을 쉴 수 있었다.
늪에서 얼굴을 간신히 내밀었지만
여전히 깊고 무거운 늪이 내 몸을 차갑게 감싸
아래로 잡아당기는 건 여전했다.
내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바로 늪으로 잠식당하는 건 한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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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려 내가 가장 먼저 인지한 것은
'내 아들'
임신 때부터 내내 한 몸인 내 새끼는 내 품에 떠나 있었고
혹여 아이가 보고 싶어 영상통화라도 하면 엄마를 기억해서 찾을까 봐.
그래서 시부모님이 아이를 양육하는데 힘들어질까 봐 아이에게 통화하지 못했다.
시부모님이 매일 보내주는 아이의 영상을 보며
숨죽이며 울었다.
날로 새롭게 커가는 내 새끼
기특하면서 보고 싶고 그러다.. 무섭고.
여러 가지 양가감정들이 나를 괴롭게 했다.
사랑만 해도 시간이 없는 내 아이를.
감히 내가.
어떻게 내가.
이럴 수 있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약한 엄마"
"내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해 아이를 만날 용기도 없는 약한 엄마"
"내 아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라고 매일 절규하는 엄마"
나는 길고 긴 터널에 갇혔는데
이 터널이 언제 끝날지, 끝나는 곳이 과연 있는지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희망이 없는데..
난 지금 당장도 죽을 만큼 힘든데
어떡하지..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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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은 점점 말라죽어갔다.
그렇게 나는 극심한 우울증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