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글을 쓰는 기분이다. 곧 떠나는 여행을 앞두고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그런가. 아니면 진로 고민에 아직 확신이 생기지 않아 그런가. 여행을 떠나기 전 홀가분하게 떠나고 싶어 교수님께 면담 신청을 했는데, 그날 따라 기분이 유독 좋지 않으셨는지 1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내내 쏘아붙이기만 하시더라. 내가 저 분과 저분의 조수(?)들의 기분을 맞춰가며 무사히 대학원에 다닐 수 있을까. 아니 입학조차 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이 일이 너무 좋은데, 그래서 학위가 필요한 상황이다. 지금 나는 나이도 있고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아, 모르겠다. 몇 년을 예술가병에 심취해있었어서 그런가. 나는 예술을 할 만한 사람이 절대 못된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그걸 애써 부정하고 있는 건가. 나도 거창한 무언갈 해내고 싶은데 그런 걸 할만한 그릇이 못된다고. 이제야 알게 되다니. 그동안 난 뭘 하고 살아왔던 거지. 무슨 내가 엄청난 무언가를 만들어낼 사람이라고 스스로 믿어왔던 건가. 정말 창피하네.
꼿꼿이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자괴감도 든다. 이십 대 후반에 찾아온 조울증은 삶의 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렸지만, 난 그래도 살아남았다. 버텼다. 못 버틸 줄 알았는데. 이 병이 앞으로의 일을 함에 있어 걸림돌이 될지 모른다는 걸 안다. 면담 중 교수님도 몇 번이나 그 이야기를 하셨다. 그럼에도 난 몇 년을 더 버티겠지. 그렇게 살아남겠지. 전에는 사는 것 자체가 목표였다면 이젠 좀 멋지게 살고 싶어. 그동안 내 삶은 너무 구렸고 지금도 그러니까. 이제와 늦은지도 모르지만. 이젠 뭐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토닥여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