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감각의 총합이다.

by 비카


우리는 스스로를 견고하고 독립적인 실체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나'라는 이름표를 붙인 채,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현대 물리학과 고대 유식학의 결론은 단호하다.


우리가 '나'라고 믿는 것은 사실 견고한 실체가 아니라, 층층이 쌓인 의식의 파동이 만들어낸 착시일 뿐이다. 당신이 '나'라고 믿는 그 실체는 어디에도 없다. 당신은 그저 '매 순간 일어났다 사라지는 감각의 총합'일 뿐이다.


이를 양자역학과 유식학이라는 불교철학의 정수를 통해 증명해보자.



[유식(唯識)과 양자, 의식이 실재를 빚어내다]


현대 물리학이 마주한 가장 당혹스러운 결론은 "관찰자가 실재를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2,600년 전 유식학이 선언한 '유식무경(唯識無境)', 즉 외계의 대상은 실재하지 않으며 오직 의식(識)만이 존재한다는 통찰과 놀랄만큼 닮아 있다.



1. 관찰자 효과와 식(識)의 변현


이중슬릿 실험에서 전자가 파동으로 흐르다 관찰의 순간 입자로 굳어버리는 현상은 유식학에서 말하는 '식의 변현'과 궤를 같이한다. 관찰하기 전의 중첩된 상태는 아뢰야식에 잠재된 '종자(Seed)'와 같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관찰'하느냐에 따라, 무한한 가능성의 파동은 비로소 우리 앞에 구체적인 현실(현행)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세상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인식 시스템이 빚어낸 정교한 투사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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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양자중첩과 의타기성(依他起性)


입자가 여러 상태로 동시에 존재하는 양자중첩은 유식학의 의타기성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 모든 존재는 홀로 서 있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수많은 인연과 조건에 의지해 잠시 그 상태로 머물 뿐이다. 우리가 '나'라고 믿는 견고한 '자아'나 운명 역시 사실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인연에 따라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유연한 흐름' 속에 있다.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언제든 삶을 재창조할 수 있다는 무한한 자유를 의미한다.




3. 아뢰야식이라는 거대한 양자장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즉각적으로 연결되는 양자얽힘은 개별적인 자아를 넘어선 근원적 의식의 층위를 시사한다. 유식학은 개개인의 의식 밑바닥에 모든 정보가 저장되고 공유되는 아뢰야식이 있다고 본다.


우리가 타인이나 세상을 향해 내뱉는 마음 한 자락이 결코 '남'에게 머물지 않고 즉각적으로 전체 네트워크에 각인되는 이유는, 우리가 근원적인 식의 차원에서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장(Field)이기 때문이다.



� 전식득지(轉識得智), 인식을 바꾸어 삶을 치유하다



유식학은 고통의 원인이 외부에 있는 실체가 아니라 우리의 전도된 인식에 있다고 말한다. 양자역학 역시 실재론의 붕괴를 선언하며 관찰자의 역할을 강조한다. 결국 치유란 외부에 있는 세상을 바꾸려는 헛된 노력을 멈추고, 내 안의 '관찰 방식'을 바꾸는 과정이다.


"세상은 보여지는 방식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보는 방식대로 존재한다."


이 사실을 뼈아프게 자각할 때, 우리는 비로소 과거의 카르마라는 양자적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당신의 삶이 아픈 이유는 그것이 고정된 실체여서가 아니라, 당신의 의식이 그 상태를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 관찰의 시선을 돌려 무한한 가능성의 바다를 마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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