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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안녕 Oct 20. 2023

악수

인간성이란?


2023 년. 세계보건기구에서는 금년도 UN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공식석상에서의 악수를 금지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는 지난 2021 년 현대판 페스트로 불리며 전 세계를 강타하여 세계 인류의 30%를 죽음에 이르게 한 신종바이러스로 인한 참상에 대한 조치이다.


종교계에서는 인류종말의 시대를 부르짖으며 혼란을 가중시켰고 정치권에서는 빠르게 확산되어가는 바이러스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의미 없는 탁상공론에 서로를 깎아내리기 바빴다. 그나마 이 사태의 가장 큰 수혜자이자 대처자는 일상용 방진보호복과 항바이러스제를 생활필수품으로 내놓아 범세계적인 기업으로 급성장한 G 였다.


 약 3 개월 만에 급속도로 확산된 빠른 감염속도, 통제할 수 없이 짧은 시간에 사망으로 이르는 치명적인 증상으로 인해 감염자들은 격리되고 살처분되는 가축처럼 버려진 채 죽어갔다. 한 때는 신의 영역까지도 장악했다고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 그들이 맞닥뜨린 통제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경외적인 두려움 - 이는 그동안 믿어온 인간이라는 숭고한 상징의 붕괴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악수를 포함한 타인과의 신체접촉은 터부시 되는 원시적 문물로 전락했다.

“엄마, 나도 7 살인데 이제 바깥에도 나가보고 싶어”

“안돼, 실외는 병균들이 득실거려, 집에서 PO 랑 놀아. 심심하면 VR 게임하고.”

현재 지구는 범세계적인 다국적기업 G 의 관할 하에 바이러스 청정 지역으로 관리 받고 있지만 사람들은 특히나 그들 간의 접촉을 두려워하여 인간을 대체하는 로봇 서비스를 선호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탑재된 인간모사로봇은 간단한 대화상대, 안전한 유아.노인 케어서비스 뿐만 아니라 일정부분의 교육과 사무처리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일상전반에 활용되고 있다. (반 세기전 휴대전화처럼...) 하지만 노아는 PO 가 싫었다. 언제나 하지 말라는 것만 많고 선생님처럼 자신을 가르치려 들기 때문이다.

'로봇 주제에... 엄마 말은 잘 들으면서 내 말은 잘 안 듣는 나쁜 로봇, 하지만 엄마는 누구보다 PO 를 신뢰한다. 심지어 아빠보다도 PO 랑 놀 때 더 안심을 한다니까…'

“엄마 일해야하니까, 가서 PO 랑 놀아. PO 한테 ‘지구는 어떻게 생겼나요?’책 읽어달라고 해. 아니면 우리 노아가 좋아하는 블록쌓기 놀이로 성 만들던가.”

‘아… 또 선생님 같은 PO 랑 놀으라니,차라리 혼자 노는게 더 재미있겠다.’ 이제 다음주가 되면 나도 8 살이고 바깥으로 나가서 다른 곳에도 가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던터라 엄마의 무신경한 반응에 적잖이 실망했다.

PO 를 내방으로 데려간 뒤 블록을 쌓는다. PO 의 차례가 되면 집중하는 PO 의 등 뒤로 가, 정 가운데 위치한 스킨커버를 열고 빨간색 리셋버튼을 오른쪽으로 돌린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엄마가 없을 때 아빠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을 때 하는 것을 몰래 지켜보았다.

이러면 PO 는 갑자기 꺼지면서 재부팅이 된다. PO 가 되기전의 하나의 기계에서 PO 라는 로봇이 되기 위한 개체 기억력 업데이트 는 시간은 1 시간. 내가 엄마랑 정말로 놀고 싶을 때만 사용하는 비장의 무기다.

“엄마, PO 또 꺼졌어. 블록 쌓기 잘 하고 있었는데 PO 때문에 망쳤잖아.그런데 엄마, 나 또 배가 아픈데 엄마 손은 약속 해주라. ”


“벌써 이번 달에만 몇 번 째니. 에휴, 기계도 늙긴 하나보다. 이리와.”

엄마도 PO 도 바보다. 나는 엄마의 따뜻한 손을 느끼며 눈이 스르르 감기는 것을 느꼈다. “엄마, 나 일어났어.” 오늘은 왠일로 엄마도, PO 도 깨우지 않았지만 일찍 눈이 떠졌다. 대답 없는 두 사람을 찾으러 거실로 나온 내 눈에 띈 것은 TV 에서 광고하던 인간을 똑 닮은 신형로봇이다. 우와, 진짜 사람처럼 생겼다.

“노아야, 이것봐. 멋지지? 너가 좋아하는 가수 00 형을 닮은 로봇이야. 그러니까 앞으로 말 잘들을거지?”

“...?” 나는 의아해진 눈을 들어 엄마와 신형로봇을 올려다보았다.

“요즘 맨날 PO 갑자기 꺼지고 고장이 잦았잖아. 주요 부품을 교체하는 것보다 신제품 프로모션으로 신모델 구입이 더 싸대서, 이걸로 바꾸려고. 이름은 네가 지어줘. 이건 열감각 센서가 있어서 체온기능도 탑재했대. 이제 노아 배아프면 엄마손약손도 형아가 해줄거야.” ‘내가 물론 PO 랑 노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PO 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 급작스레 닥쳐온 이별 앞에서 당황스러움에 죄책감이 더해져 머리를 맞은 듯 멍해졌다. 이윽고 먹먹하던 시야가 흐릿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PO 가 다가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랜 시간 내 방 청소를 해주고 나와 블록쌓기 놀이를 하고 매일아침 나를 깨워주던 PO 의 딱딱하고 뾰족한 손.그 손이 내 손을 잡고 가볍게 흔든다. 마치 내 마음을 안다는 듯이, 슬퍼하지 말라는 듯이.

“노아, 그동안 고마웠어. 이게 악수라는 거야.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금지 되었지만 만남과 이별을 기념하는 인사였지.엄마 말씀 잘 듣고 건강하게 새 로봇이랑 잘 지내야해.”

‘헤어질 때까지 가르치려 들다니, 바보 같은 PO. 이럴 때는 제 걱정이나 해야하는 것 아냐.’

PO 는 열기능 탑재 기능이 없는 구형로봇이다. 하지만 그 때 PO 의 손을 잡았을 때에는 여느 금속의 차가운 감촉이 아닌 분명 어떤 온기가 느껴졌었던 것 같다.

2047 년. ‘인류의 사라진 문화’라는 강의를 준비하며 어린 시절 내 친구이자 선생님이었던 PO 를 생각해본다. '인류는 지금도 생존하는걸까?'



(2017년에 습작한 글발견, 이정도면 나 예언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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