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와 함께 세상속으로(2)

7살 딸아이와 함께간 세부 여행기

by 오늘의안녕

음식에 관해.

먹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커피가 없으면 못살지만, 마시는 것에 비해 음식은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행하면, 음식을 빼놓을 수 없겠지...

해산물이 풍부한 곳이니만큼 해산물, 바비큐를 잔뜩 먹고 가겠다 다짐했다. 하지만 우리 꼬마의 취향은... 이곳에 와서까지 스테이크, 피자, 파스타였다.

호핑에서 먹은 왕소라가 마지막이 될 뻔하였지만 엄마가 먹고싶은 것도 한번 먹자해서 알레망고 크랩을 먹으러 갔다. 이곳에선 꼭 먹어보아야하는 진흙게라고 한다. 직접 크랩을 골라서 원하는 양념으로 요리해주는 시스템이었고, 늘 그랬듯 이번에도 다 남길까 싶어 직원에게 작은 놈으로 골라줄 것을 부탁했다.

갑옷을 입은 녀석은 단단해보였다. 아이에게 들려 최후의 사진(어쩌면 놈에게는 영정사진이 된)을 찍고 녀석은 주방으로 끌려갔다. 노릇하게 구워진 잿빛에서 주황색으로 잘 익은 녀석을 사진을 찍으면 직원이 망치로 두들겨 깨주었다. 게는 물려서 많이 못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살이 아주 부드러우면서도 짠 내도 안나고 맛있다. 랍스타와 대게의 중간정도 느낌이랄까? 게다가 두툼한 갑옷을 벗기니 보잘것없는 속살, 꼬마도 맛있는지 주는 족족 잘 먹는다.

뿌듯하다. 아이가 이렇게 좋아할 줄이야. 처음부터 큰 놈으로 할 걸... 대부분 아이의 입으로 들어가 조금 많이 아쉬웠다.

그래도 처음으로 메인요리를 남기지 않아 뿌듯했다. 하지만 식당을 나오며 그 중에 가장 맛있었던건 후식으로 먹은 수박주스라는 아이.

파크 몰앞 1층 앞에 많은 식당 중, 일식당을 갈까 고민하다가 필리핀 쿠진이라고 써진 식당에 도전해보기로 한다. 메뉴판을 번역으로 돌려 참치뱃살삼겹살이라는 요상한 메뉴와 그린망고 위드...샐러드를 시킨다.

구우면 뭐든 맛있을 테니... 그린망고는 작년 태국에서 먹어봤는데 생소한 느낌이지만 입맛에 맞았던 기억에서였다.

여행지에서 재미는 메뉴판의 그림을 보고 대충 시켜보기가 아닐까, 사진만 보고 대충 고른 음식이 예상대로 맛있었다면 로또 3등 정도는 된 듯한 기분이다. 맛이 없더라도 특별한 경험이라 생각하고 디저트를 맛집으로 가면 된다.

먼저 그린망고 샐러드가 나왔다. 망고 위에 자잘하게 올라간 것은... 아마도 새우젓?같은 비주얼과 맛이다. 태국에서는 소금을 찍어 먹었는데 여기서는 짭짤한생선과 먹나보다. 이상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고... 하지만 여기 그린망고는 그때보다 너무 신 것 같다. 몇 저름만 먹고 실패.

메인요리가 등장하는데 비주얼이... 조금 무시무시하다? 탄 듯한 갈색 표면에 저 깍둑썰기로 모양을 넣어 구워 활처럼 휘어진 괴이한 비주얼의 요리는... 이번에도 실패인건가...

칼로 가르자 기름진 생선의 속살이 나왔다. 맛있다.

고추와 마늘, 간장소스,를 곁들인 레촌(겉은 바삭하게 튀긴 삼겹살), 그런데 참치뱃살로 만든... 마늘과 고추가 적절히 가미되어 매콤 짭짤한 한국인이 좋아할 만한 맛이다.

밥 한공기를 시켜 맛있게 먹었다. 나중에 가족과 오면 추천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름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한국 돈으로 환산해본다. 1만5천원이 조금 넘는다. 와... 갑자기 티비에서 한 연예인이 한 말이 생각났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그냥 돈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여기서 내가 느끼는 기분이 아닐까? 그래서 동남아 여행을 좋아한다. 달콤한 열대의 과일, 쾌창한 날씨만큼이나 느껴지는 짜릿한 기분. 지금은 원래의 나보다 조금 더 부유하고 조금 더 자유롭다. 살짝 다른사람인 척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유럽 여행을 다닐 때의 나를 생각해본다. 무거운 캐리어를 이고 밥값을 원화로 환산하며 샐러드를 뺄까, 와인을 시킬까말까 고민하던 모습이... 그러고보니 여행지에서 마다 새로운 내 모습을 만난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생계라는 팍팍함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태에서 나오는 내 모습.

자유라는 것을 일시적으로 맛본 내 모습이 좋아서 계속 여행자로 남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흥정에 관하여

아이와 다닌 지라 대부분 그랩을 탔다. 그래도 사람들이 빼곡한 알록달록한 지프니가 달릴 때면 왠지 모르게 눈길이 가곤 했다. 빼곡하게 허벅지를 맞대고 앉은 사람들은 다정해보였다. 어떤 이는 닭까지 안고 있었다. 이국적인 모습이 왠지 낭만적이었달까.

마지막 외출하는 날, 선생님에게 우리의 계획을 알리자 끝나고 가는 거면 동행을 해주겠다고 한다. 땡큐다. 아이와 학원입구에서 선생님을 기다렸다. 일을 마친 선생님들이 우르르 나온다.

같은 유니폼을 입은 몇몇이 함께 탔다. 하나 둘, 아니 자리가 없는데 다른 사람이 오면 신기하게 조금 씩 자리가 생긴다. 여차저차 끼어 타고 가는 길, 밖에서 볼 땐 시원해보였는데 이거 햇빛에 달궈진 차체는 너무 뜨겁다. 금세 아이의 얼굴이 달아오른다. 큰일...

낭만을 즐길 여유는 더위에 삼켜졌다. 아이스크림으로 열기를 달래줄려고 했더니, 아이스크림가게는 테이크아웃만 가능. 더위를 피하는 방법은 에어컨이 켜진 매장으로 도망가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선 매장 내에서도 에어컨을 빵빵하게 안튼다. 역시 숙소가 최고다.

더운 날씨에 아이스크림이 주르르주르륵 녹아내린다... 노란 망고아이스크림의 흔적을 길거리에 남기며 더위와 함께 녹아내린 우리는 목적지였던 키즈카페로 간다.

돌아올 때는 트라이시클을 타보기로 한다. 지프니를 타봤더니 용기가 샘솟는다. 하지만 트라이시클은 흥정이 필요한 터, 그는 먼저 얼마를 줄거냐 물어온다. 그랩보다 살짝 낮은 비용으로 선심쓰듯 말했지만 더 올려부른다. 그럼 차라리 그랩을 부르는 것이 낫다며 손사레를 치자 흔쾌히 오케이하는 남자. 호구잡힌 건가?

밤의 트라이시클은 시원했다. 역시 이 맛에 동남아에 오지. 차와 오토바이 옆을 조금은 위태롭게 지나치지만 거리의 왁자지껄한 소음과, 음식 냄새. 불빛이 바람과 함께 옆을 스쳐 간다.왠지 풍경의 일부가 된 듯하다.

아이는 눈이 스르륵 감기는 것 같다. 와중에 트라이시클 기사는 계속해서 말을 건다.

소리쳐 대답해보지만 잘 들리지 않는다. 내 영어가 굉장히 좋다고 했다. 글쎄?

필리핀은 처음이냐고 묻는다. 보라카이에 가보았다고 하니 참 아름다운 곳이라고 했다. 세부도 못지않게 아름다운 것 같아...

필리핀 사람들은 참 친절하다고 하니, 예스, 필리핀사람들은 참 용감하다고 답해온다.

미적지근한 기분 좋은 바람에 많은 것이 묻히는 밤. 그렇게 우리의 세부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간다.

마지막 날, 밤 비행기라 저녁은 근처의 현지식 레스토랑에 가려고 돈도 뽑아 놨는데 마지막이라 내부 식당에서 밥을 먹어야 한다는 아이. 그래, 그러자. 이 곳에서 푸짐한 한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곳. 아마도 잠자는 시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 아닐까? 덕분에 라면, 떡볶이, 비빔밥, 닭도리탕 그리워하지 않고 2주 동안 잘 보냈다.

밥을 먹고 숙소에서 짐을 싸고 쉬기로 한다.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이 밤에 올 사람이 없는데? 아이가 창밖을 내다 보더니 엄마 선생님이라고 한다. 아까 낮에 내가 준 편지에 대한 답장을 직접 만들어 붙인 하트편지지로 가져다 준다.

고맙기도 해라... 양치를 하던 나는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그녀는 우리를 한 번 씩 차례로 안아주고는 이제 가야한다고 말한다. 작별 인사라도 제대로 하면 좋으련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늘 헤어짐에는 서툴다. 헤어지고 나서야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했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맴돌아 뱉지 못했던 마지막 인사가 떠나지 않는다.

좀 있으니 결국엔 비가 쏟아진다.

이 곳의 비는 무섭게 내린다. 천둥번개, 바람, 세찬 소리가 모든 것을 집어 삼킨다. 소음, 매연, 열기로 가득찼던 대기가 씻겨 내려간다.

우리가 가야하는데 비행기가 뜰 수 있을까? 딸아이는 옆에서 오늘 만들어 온 초코과자를 먹으며 걱정한다. 이제 빨리 돌아가고 싶던 딸도, 나도 떠날 때가 오니 아쉬워졌다. 지켜지지 않을 줄 알지만 꼭 다시 돌아오자는 말을 남기고 쏟아지는 빗 속을 뚫고 방을 나선다.

밤의 풍경이 스쳐지나간다. 이제 곧 추억이 될 풍경들을 눈에 담으며... 곧 이 곳이 그리워질 것을 안다. 아니 벌써 그리워지고 있다. 눈꺼풀이 감김에도 하나씩 천천히 담아둔다.

떠나와야 그것의 소중함을 알 듯 여행은 나의 삶을, 주변인을 사랑하게 만드는 일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곧 우리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지만 지금 떠나는 이곳을 오래도록 그리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