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와 함께 세상 속으로(1)

7살 딸아이와 함께간 세부 여행기

by 오늘의안녕

영어 교육에 관심이 많은 남편이 먼저 제안했다. 조카들은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도 갔다는데... 우리애도 한 번 보내볼까?

안 그래도 작년부터 친구들은 베트남, 일본에 다녀왔다. 해외여행 노래를 부르던 터였다. 그럼 학교 가기 전 여름에 한번 가볼까? 그것이 발단이었다. 말이 나오자 마자 아이는 이미 출발이라도 한 듯 들떴다. 주말에 강릉 가는 거라도 되는 것 마냥 언제 갈꺼냐 내일 갈거냐 물어왔다. 글쎄... 언제가 좋을까.

둘째가 조금 더 커서 이유식 먹기 전에 얼른 다녀올까? 생각해보니 여름보다는 봄이 나을듯했다. 좀 있으면 낯도 많이 가리고 엄마도 찾을테니... 달력을 보니, 5월엔 가족행사가 많다. 그리하여 가능 한 날을 가늠해보니, 2주가 가능한 것은 다음주부터네?

일주일 후 출발을 염두에 두고 인터넷을 서칭했다. 다행히 비수기라 다음주 가능하단다. 견적도 받고 상담을 진행했는데... 생각해보니 아뿔싸, 나 여권 갱신을 안했네? 갓난쟁이가 있는데 뭐 당분간 가겠어? 몇 번의 여권만료안내문자를 무시한 결과였다.

저번에 아이 여권발급할 때보니 3일이면 나오긴 했는데... 아무리 달력을 봐도 지금보다 적기는 없다. 일단 감행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남겨두고 시작된 여행계획, 보통 여행은 설레는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걱정이 팔자인 내 성격에 혼자 아이를 데려가야 한다는 걱정이 가장 컸고 여권도, 트래블카드도, 이심은 또 뭐지? 공부해야할 것이 산더미 같았다. 혼자라면 비행기도 놓쳐본 전력이 있는 나로서 어떻게든 꾸역꾸역 해내겠지만...

아이와 함께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늘 아이가 보채지 않게 여행 동선을 짜고, 조금 덜 걷게 조금 덜 힘들게 보채지 않게 맞춰주기만 했던 생활에서 밤 비행기, 공항에서의 대기와 여러 번의 이동은 시작도 전에 겁을 먹게 했다. 아이는 이걸 아는지 모르는지 난생처음 떠날 해외에 신이 났다. 신난 아이에게 몇 번이고 떼쓰지 않기, 힘들어도 참기 다짐을 받아두고도 태블릿에 애니메이션받기, 좋아하는책, 공부할책, 색칠하기를 주렁주렁 챙겼다.

아이는 무사태평히 어떤 외국인을 만나고 싶은지, 필리핀 디저트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검색해보고 있다.

오랜만에 가는 여행에 눈이 짓무르도록 이것 저것 찾아보고 있다. 준비할 건 왜이리 많은지... 짐싸기를 제외하고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추천 받은 곳 중 킨더클래스가 있는 곳으로 어학원은 단번에 정했고,

-여권 신청하기(월요일 아침 시청열자마자 신청) -> 나오면 항공권 예약하기

-트래블카드

-이심

-여행자보험

-영문 가족관계 증명서, 출국하는 비행기표

-출발 72시간전부터 이트래블

며칠 간 열심히 준비했더니 출발 전 날은 다음날 시험이지만 공부를 포기한 마음으로 지쳐 있었다. 대충 중요한 것만 챙기자, 나머지는 가서 사야지 해도 퉁퉁 불은 캐리어는 잘 닫히질 않았다.

드디어 출발! 밤 비행기라 아이가 졸려서 힘들어 할 줄 알았더니 힘든 건 내 쪽이었다.

토요일이라 여유 있게 도착하려고 하니 공항에는 이미 5시간 전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간 인천공항은 왜 이리 넓은지... 눈치껏 셀프체크인에 수하물까지 셀프로 부치고 나니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밥 먹는 곳을 찾는 것도 일, 사람이 식당에도 카페에도 미어터졌다. 겨우겨우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끼니를 해결했다. 여기까지도 이미 지침, 내 어깨를 짓누르는 노트북과 태블릿, 책 몇 권, 텀블러와 우산이 옥죄어오기 시작했다. . 다음번에 또 간다면 최대한 간략히 꾸리리... 네 시간을 어떻게 떼우나... 아이는 요리조리 잘 걸어다닌다. 졸립다고도 하지 않는다.

비행기에 탑승하고 40분 정도 출발지연이 되었다. 그때까지도 안자던 녀석... 왜 출발을 안하냐고 아마도 자기 오므라이스를 만드느라 늦는 것 같다고 한다.

“출발하고 천천히 만들어도 되는데... 오므라이스.” 오므라이스가 나오면 깨우라던 아이는 출발까지 장난을 치더니 금새 곯아떨어져서 기내식은 구경도 못했다. 나는 앉아서는 잘 못자는 편이라 혼자 기내식을 먹고 아이의 오므라이스를 조금 맛봤다. 맛은 별로 없었다.


길고도 험난한 여정의 시작, 필리핀에 도착하자마자 더운 여름 기운이 훅 끼친다. 그래도 새벽인데도 힘내서 잘 따라와 주어 다행이다.

여기가 필리핀이야? 강릉 같은데? 아이가 밤의 공항을 보며 말한다.

내일 낮에 보면 달라질걸?

삼 십여 분을 학원 버스를 타고 달려 도착한 곳엔 은은한 전구로 밝혀진 수영장이 먼저 우릴 반긴다. 수영장 바로 앞 1층을 배정 받았다.

조금 습할것같은데? 2층을 올려다보는 나와 달리 아이는 신이나 방방 뛰었다.

우와, 문 열면 수영장이야.

사실 영어에 대한 기대보다도 새로운 세계를 보고 우리나라 밖으로 생각을 확장해보길 바랬다. 그리고 내년에 있을 학교생활에 대비해 적응훈련도...

아이의 새로운 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수줍음을 더 많이 타는 것, 낯선 친구에게는 대화하는 것이 쑥스러운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고자 노력하고 단 한번도 수업에 안가겠다고 하지않고 재미있게 2주를 보내준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아이의 사회생활을 이렇게 옆에 붙어서 지켜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답답한 부분도 있었지만 결국은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는 수 밖에...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사회적 관계에 대한 큰 생각을 하지 않으며 산다. 누가 날 싫어해도 상관없다. 나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는 별로 어울리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 누굴 사귀는 것에 대한 큰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여긴 하나의 작은 공동체와 같은 느낌이다.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고 나면 기숙사 내부에 남은 엄마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하고 아이들이 등원하면 어울려 시간을 보낸다.

초반에는 먼저 사귀어 보려 노력했지만, 학기 중간에 들어온지라 이미 2주 전 들어온 사람들끼리는 친해져 있고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가족끼리 함께 왔다.

먼저 다가가보려고 인사도 하고 몇 마디 붙여보기도 했지만 쉽지 않다. 어쩔 수 없지.

혼자가 되기로 했다. 2주인데 오히려 좋다... 그동안 못했던 독서, 글쓰기 원 없이 해야지.

사실 혼자인게 싫지 않은 스타일이라 쉬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주위에서 들리는 하하호호소리는 온전히 혼자인 나를 허락하지 않았다.

군중 속의 고립. 쉽지 않다. 점차 넣어두려 했던 우리아이의 사회생활이 걱정되었다.

점심을 먹고 나오면 어렴풋이 교실이 보인다. 괜히 지나다니면서 기웃거렸다.

오랜시간 혼자서 고립되어 지내진 않은지... 간혹 혼자 가만히 있는 것 같으면 괜히 마음이 쓰렸다. 하지만 아이는 수업은 정말 재밌다고, 가끔 창으로 비치는 엄마 모습이 보이면 엄마가 심심할까봐 걱정했다고 오히려 그렇게 말했다. 안심이 되었다.

무료한 생활 속에서 나를 구원해 준 건 나의 영어선생님이었다. 처음에는 심심하니까 시간 떼우기 겸, 영어 실습을 하고 싶어 신청했다. 45분씩 세시간, 그러니까 2시간 조금 넘는 수업이 그렇기 힘들줄이야... 내 선생님은 서른 살이었다. 그리고 리액션이 무척 좋았다. 그 맘때쯤의 여자들이 그렇듯 해외의 삶을 동경하고 있었다.

나보다 K드라마를 더 많이 보았고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현재 넷플릭스 실시간 1위라는 약한영웅, 그녀에게 들어서 처음 알았다. 고블린의 윤아가 노란 우산을 썼다거나, 그녀가 한국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 드라마들을 내가 보지 않아서 공감해줄 수 없다는 것이 조금은 미안했다.

해외여행 경험이 없는 그녀가 가장 가고싶다는 곳은 태국, 그다지 비싼 항공은 아니지만 그를 위해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마지막 날이라고 과자랑 내 딸의 머리핀까지 한아름 선물을 안고온 그녀, 관광을 다니며 태국까지 가는 왕복 비행기표만큼을 주말 내 쓰고 다니는 내가 이런 선물을 받아도 되는 건지, 미안함이 앞섰다.

가능하면 그녀가 좋아한다던 짬뽕으로 함께 밥 한끼라도 했으면 좋았겠지만... 외부에서 스탭들을 만나면 안된다는 규율에 따라 아쉽게 작별할 수 밖에 없었다. 언젠가 그곳을 방문하게 된다면... K드라마를 예습하고, 그녀가 좋아할만한 선물을 한아름 안겨주고 싶다. 비행기가 이륙하며 가로등이 총총 박힌 대지가 멀어진다. 멀어지는 불빛을 보며 두고 가는 인연과 챙겨가는 추억을 생각했다. 어쩌면 그녀도알 것이다.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 자신의 집에서는 물을 길기 위해 펌프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가느다란 팔을 가졌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 노래가 있어 늘 행복하다는 그녀. 어려서부터 엄마는 없었지만 이모가 정말 잘 키워줘서 행복하다는 그녀... 짧은 시간동안 우리는 삶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어를 배우는 것이었찌만 교재의 내용이 그랬다. 삶에 대한 물음들. 내가 계속해서 스스로만 가지고 있던 의문들을 누군가와 나누게 된 기회가 된 것 같다. 그건 아마도 한글로 아는 사람과 말하기에는 오히려 어색했을지도 모른다. 짧은 영어로 손짓발짓 섞어가며 나누었던 삶에 대한 가치관, 그리고 그를 설명하기 위해 나조차도 모르던 나의 이면을 발견하던 나.

그 시간들이 짧지만 얼마나 가치있었던가를 생각해보았다. 오역되고 어쩌면 진실하지 못했을 대답들. 그 속에서 내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와 현재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들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성공한 삶이란? 내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노래를 좋아하는가?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순간은?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나는... 나는... 나는

오롯이 나에 대해 생각하고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일들.

늘 드는 생각이지만 여행을 하면 가장 생각나는 것은 그 곳의 아름다운 풍경도, 멋진 건축물도 가장 맛있었던 음식도 아닌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그 곳에서 주고 받은 사람들과의 대화, 미소, 심지어는 언쟁까지도... 그들의 삶이 묻어나는 풍경 속에서 어쩌면 나를 발견한다.

그러고보니 사진 한 장 찍자고 제안하지 못한게 아쉽다. 추억 속의 그녀는 아마도 더욱더 미화될 것이다. 나도 그녀에게 그렇게 기억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