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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쓴이 May 11. 2020

너그러운 흙과 손의 세계.

실패가 없어서. 도자기에 빠졌다.


2019. 08. 09 첫 도자기

  원래부터 만들기를 좋아했다. 손으로 사부작사부작 뭔가를 만들고 있으면 잡념이 사라졌고, 크게 잘 하진 않더라도 못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캔들 만들기 같은 것들은 내 오랜 취미였다. 만들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오롯이 내 손의 감각과 결과물만 머릿속에 있다는 점이다.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들 때마다 나는 항상 고요했다. 차분했고. 가장 나다웠다.


 도자기를 처음 만났던 그 날은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둔지 3개월째가 되는 시점이었다. 마침 시간이 텅텅 비어 따분하기도 했고, 블로그를 살피다 우연히 동네 근처에 도자기 공방이 생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천의 번화가 구월동 옆, 아주 작은 문화로. 처음 만나는 낯선 동네였지만 작은 공방 여러 개가 줄지어 이어져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지도 앱을 켜고 열심히 도자기 공방을 찾았다. 희고 너른 간판. 레이스 커튼이 나부끼는 곳이었다. 안에는 작은 강아지가 한 마리 있었고 흙이 묻은 앞치마를 두른 분이 먼저 인사를 건네었다. 공방에 들어가자 작고 아기자기한 도자기들이 한여름의 빛을 받아 더 반짝반짝했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남색 앞치마를 두르고 기다란 나무 테이블 앞에 앉았다. 어렸을 때 다닌 미술 학원이 떠오르게 하는 붓, 조각칼, 나무 도구 같은 것들이 잘 정리되어있었다. 도구들에는 하나 같이 다 시간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것마저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맨 처음 무얼 만들고 싶냐고 물어와 작은 접시와 손잡이가 달린 넓은 접시를 만들고 싶다고 (소심하게) 이야기했다. 둥그런 반죽을 나눠 받고 판판하게 밀대로 밀어주었다. 색을 내기 위해 색소지로 무늬를 만들고 뒤집어서 다시 한번 밀대로 밀어준다. 차가운 흙은 상대적으로 열이 많은 손과 만나면 쩍쩍 갈라지기 부지기수다. 하여 물을 흠뻑 머금은 스펀지를 한번 짜고 표면을 매끄럽게 만져준다. 그렇게 첫 작업이 끝났다.


 다음은 손잡이가 달린 접시 만들기. 마찬가지로 밀대로 밀어 평평하게 만들어 주고 칼로 동그랗게 잘라준다. 이후 길쭉한 모양으로 흙을 밀어 동그란 판에 올리는 코일링 작업을 했다. 생각보다 손이 아주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작업을 하면서 선생님에게 참 많이도 ‘help!’를 외쳤다. 목표하는 바를 이루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차오를 때마다 선생님은 괜찮아요. 이렇게 하면 돼요.라고 하며 보수공사를 해주셨다.


“괜찮아요. 이렇게 하면 돼요.”


 여러 번의 ‘으 망한 것 같아’를 경험할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괜찮아요’였다. 실제로 도자기는 흙과 손만 있다면 다시 얼마든지 보수를 할 수 있었다. 기둥이 찢어졌을 때도, 바닥에 구멍을 냈을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마치 너그러운 흙의 세계에 초대받은 느낌이었다. ‘도자기의 괜찮아요’ 세계는 이렇게 나를 끌어당겼다. 


-


 나름대로 치열한 회사생활을 하며 ‘실수해서는 안된다’라는 강박에 잡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잠시 잠깐 만난 그 두 시간은. 살면서 내가 나를 위로하는 가장 최초의 순간이었다.


“괜찮아요.

조금 갈라져도 괜찮고, 구멍이 나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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