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1_오후 2시가 졸린 시간대인 건 알지만...

ㅇㅇ을 하실 것까진 없잖아요.

by 읽쓴이
9년 차 마케터의 면접 에피소드. 세상에 별별 사람 많더라고요.

일기예보에서 장마를 예고했다. 하루 종일 비가 사방으로 내릴 거니까 조심하라는 내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에 눈을 떴는데 방안이 온통 컴컴했다. 일기예보가 경고한 것처럼 구름이 낮게 깔렸고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눈 뜨자마자 '면접 일정 조정해 달라고 해볼까?' 생각했지만 고쳐먹었다. 면접 보는 곳은 집과 거리도 가깝고, 규모도 괜찮았고, 업종도 마음에 썩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회사 측 면접관도 오늘 면접 본다고 출근하기 싫은 맘 부여잡고 출근했을 텐데 예의상 면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장마의 첫날. 최대한 깔끔한 차림새로 회사에 도착했다.


면접은 오후 2시. 회사 앞에는 오후 1시에 도착했다. 남은 시간 동안 근처 카페에서 면접 보는 브랜드 공부도 좀 하고, 아이데이션도 열심히 했다. 자기소개 멘트도 좀 다듬었던 것 같다. 1시 50분, 인사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회사 앞에 도착했다는 걸 알렸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한 번 해주시겠어요. 비가 와서 묘하게 내려앉은 분위기에서 면접은 시작되었다. 준비한 내용을 정리해 가며 이야기했다. 처음엔 긴장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너무 밋밋했다. 질문이 나오지 않자 당황스러웠다. 10초쯤의 정적이 흘렀을 땐, ‘내가 지금 잘못하고 있는 건가?’ 싶어졌다. 하지만 아니었다. 질문할 준비조차 안 되어 있는 듯한 그들의 눈빛. 그때 깨달았다. 이 면접, 나만 진지했다는 걸. 내가 자기소개 때 실수를 했나?부터 시작해 왜 본인들 귀한 시간을 이렇게 쓰실까? 생각했다. 겨우 짜낸 질문에 답을 하던 중, 남자 면접관을 바라보았다.


그는 입은 간신히 다물고 있었고, 콧구멍은 점점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렇다. 내적하품이었다. 직장인이라면 회의 시간에 다들 한 번씩 해본 그거였다. 실제로 면접시간은 20분 내외로 무척이나 짧았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는 족히 10번은 넘는 하품을 하였다. 물론 내적하품이었으니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고자 하셨으리라. 20분 내내 내가 그 분과 면접을 보는 건지, 그분의 콧구멍과 면접을 본 건지, 이게 면접인지, 내 하품 참는 인내력을 테스트하는 자리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점심 먹고 오후 2시, 그것도 비 오는 날의 고요한 회의실. 졸린 건 공감하겠는데 질문은 성의 없었고, 면접관들은 매너가 없었던 점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20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면접이 충분했으리라 생각되지도 않는다. 어쨌든 면접은 그렇게 끝이 났다. 질문이 거의 없었기에, 오히려 내가 5~6개를 연달아 물어봤다. 무언가 뒤바뀐 느낌이었고, 허무했다.


엘리베이터까지 마중 나온 그가 내게 건넨 것은 브랜드에서 제작한 시딩키트. 묵직했고 부피가 컸다. 20분 동안 말도 안 되는 면접을 보고 나온 뒤, 그 큰 박스를 우중에 들고 갈 자신도 없고 허무함에 힘이 쏙 빠져서 택시를 탔다. 다행히 건물 앞, 택시에서 내리는 커플이 있어 이어서 탈 수 있었다. 창밖으로 비가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차창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를 멍하니 바라봤다. 머릿속에는 계속 아까 그 콧구멍이 떠올랐다. 뭔가, 참 기운 빠지는 면접이었다. 이력서 한 줄, 한 문장에 공들여 적은 시간들이 너무 쉽게 지나갔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응은 하품이었다.


아니 담당자님, 하품까지는… 좀 아니지 않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