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가장 소중한 것을 떠올리더라.
이번 주제가 유난히 내게 어려웠다. 지하철을 탈 때는 지하철이 없었을 경우를 상상하고, 셔츠를 자주 입으니까 셔츠가 없었다면, 다이어리를 쓸 땐 다이어리가 없었다면… 바다를 보러 여행을 갔을 땐 바다가 없다면을 상상했다. 그래도 뾰족한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 주변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만약에 ㅇㅇ이 없었더라면’이라고 글을 쓴다면 뭐라고 쓰실 것 같아요?
도자기 선생님은 반려견을 생각하고, 남편은 나를 떠올렸다. 또 누군가는 ‘돈’이라고도 했다.
도자기 선생님은 반려견 ‘봉이’가 없었다면…이라고 운을 떼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아마 저는 죽었을 것 같아요.라는 극단적인 말을 웃으며 했다. 농담 반 진담 반 같았다. 남편은 아내(그러니까 글쓴이 본인)가 없었다면…이라고 입을 뗐다. 난 그 말 뒤에 은근슬쩍 미소가 감도는지, 깊은 고민이 따라오는지 민감하게 캐치했다. 남편은 사뭇 진지하게 네가 없었다면 나는 여행도 안 가고, 잘 웃지도 않고, 그냥 게임만 했을 거 같아. 네가 있어서 나는 행복해졌는데, 없으면 행복이 뭔지 잘 몰랐을 것 같다고 했다. 이번엔 내가 눈시울이 붉어졌다. 맞다. 남편은 내가 없으면 인생 진짜 심심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누군가는 돈이라고 답했다. 만약에 돈이 없었다면 인생이 처절하고, 빈약했을 것 같다고. 어렸을 때는 가난해봐서. 그게 얼마나 사람 비참해지는 줄 알아서, 지금은 스스로 삶을 지켜낼 수 있을 만큼 돈을 버는 삶이 너무 소중하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물었을 때 모두 진지하게 고민하고 답해주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사람들은 모두 본인에게 아주 소중한 것이 사라졌을 때를 가정한다는 거였다. 그렇다면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만약에 없어지면 치명적일 것 같은 것은 무엇일까. 대체안이 있는 지하철이나, 셔츠 이런 거 말고. 내 인생에 진짜로 없으면 안 되는 것… 음, 사랑.
사랑을 잘 표현하고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나는 삶 곳곳에 스치는, 때로는 둔탁하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고, 애타게도 하는 사랑을 사랑한다. 사랑을 사랑해서 사랑이 없으면 괴로울 것 같다. 살 수 없을 것 같다. 폐지를 줍는 할머님이 무거운 리어카를 끌고 있을 때 뒤에서 밀어주는 행인에게서 느끼는 인류애, 뜨거운 여름 벽을 가득 메운 능소화를 찍어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주는 다정함. 사람이 많은 곳에서도 우리 가족이나 내 애인만 보이는 마법 같은 사랑. 밥은 먹었냐는 메시지에서 느껴지는 온기. 누군가를 축하해 주는 마음에서 오는 사랑. 누가 너무 미운데, 진짜 미워할 수는 없는 애증까지 - 모든 사랑은 내 인생을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만약에 사랑이 없었더라면, 나는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사랑하고 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