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공채시험이 끝나고
나는 부산행 기차표를 끊어야 했다.
언제까지고 외삼촌 댁에 얹혀 지낼 수는 없었으니까.
서울에 올라올 때처럼, 떠날 때도 외삼촌 식구와 어색한 작별 인사를 나눴다.
짐을 쌀 때까지도 별생각 없이 담담했는데, 지하철로 이동하는 순간부터 양손의 짐이 돌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1년.
나는 그 시간을 온전히 서울에 쏟아부었다.
새로운 걸 배우고,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오디션이라는 것도 보러 다녔다.
무엇보다 생애 첫 공채 시험을 치렀다.
하지만 내 손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서울역을 빠져나가는 기차 안에서 차창밖을 바라보았다.
빽빽한 서울의 건물 숲을 지나 한적한 풍경들이 스쳐 지나갈수록, ‘서울에 다시 올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뚜렷해져 갔다.
부산으로 내려가면 또다시 ‘안정적인 직장’이란 걸 찾아 헤매야 한다고 생각하니 답답했다.
자유롭게 숨 쉬고 싶어서 반대를 무릅쓰고, 신세까지 지면서 간절히 올라온 서울이었다.
그런데 돌아가는 짐가방엔 낡고 쓸모없는 것들만 가득한 것 같았다.
게다가 통장에 잔고는 바닥이었다.
기차 의자에 몸이 꺼져 들어갔다.
만만치 않다.
나 같은 사람은 언제까지 이런 시간을 견뎌야 하는 걸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지만 과연 끝에 가서 웃을 수 있을까.
두려움이 차 올랐다.
그래서였을까.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몸이 아팠다.
위장장애에 극심한 빈혈까지 겹쳤다.
처방받은 빈혈약을 오랫동안 복용했던 것 같다. 동생이 나한테서 “약 냄새가 난다”며 얼굴을 찌푸렸을 정도로.
내 속이 타 들어가는 만큼 부모님의 마음도 새카맣게 탔을 것이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자기 인생을 진창에 처박아 버린 꼴이었다.
남은 건 아픈 몸뚱이 밖에 없는, 그냥 백수였으니까.
그럼에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었다.
고작 1년 남짓 도전하고 끝낼 생각일랑 없었다.
그리고 때로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을 때야 말로 다시 채울 용기가 생기는 법이다.
그 시절의 하루하루는 흐릿하다. 한숨이 켜켜이 쌓인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목소리를 갈고닦을 거라 되뇌었다. 언젠가 마이크 앞에서 크게 웃으며 숨 쉬는 날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