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연습하지 않은 자, 말할 자격도 없다.

by 성우 김태리

카메라가 정면에 있었다.

조명은 너무 뜨거웠고, 앞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은 윤곽조차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기괴한 분위기였다.


입이 바싹 말랐다. 동화 구연을 하는 도중, 결국 멈춰 버리고 말았다.

멀쩡하게 다음을 준비하는 척 웃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나는 대회에 나갈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대에 올라 막상 입을 떼자마자 단전에서부터 떨림이 올라왔다.


그렇다. 나는 준비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악몽이냐고? 안타깝게도 이건 등골이 서늘해지는 '체험기'이다.

방만하게도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도 여유를 부렸다.

지금 생각하면 쫓아가서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다. 정신 차리라고.


부산에 내려온 뒤에도 나는 그저 퍼져 있을 수 없었다.

또 한 번 대회 수상을 노렸다.

나는 무려 ‘최우수상 수상자’니까 쉽게 또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자만심이 나에게 끔찍한 경험으로 돌아왔다.

서울까지 올라간 대회였고, 영상까지 남는 무대에서 나는 처참하게 바스러졌다.

그 무대에서 '절어'버리다니. 너무 숨고 싶었다.

‘목이 탄다’라는 말이 그날 뼈에 사무치게 와닿았다.

나는 누구나 받는 참가상을 받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너무 창피해서 반성을 할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또 한 번 실수를 하고 만다.

여전히 수상이라는 목표로 나는 부산에서 열리는 시 낭송대회에도 나갔었다.

시에 대한 애정도 없이 ‘일단 아무거나 짧은 시’로 골랐다.

그리고 그럭저럭 낭송했다고 생각하며 우쭐해했다.


헌데 내 뒷 무대에 올라온 나이 지긋한 어머니의 시 낭송을 들었을 때,

나는 낭송할 때 보다 얼굴이 더 달아올랐다.

그분은 온몸과 마음을 다해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낭송하셨다.

낭랑한 목소리 속의 에너지가 멀뚱히 서있던 내 몸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렇게 그 에너지에 빨려들 듯 넋을 놓고 들었던 거 같다.

결과는 뻔했다. 그분은 대상을 받았고, 나는 또 참가상을 받아 들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반성했다.

나는 ‘수상’이라는 외적 목표에 몰두한 나머지, 멍청하게도 연습 자체를 가볍게 여겼다.

본말이 전도된 준비였다.


결과만 탐했을 뿐, 그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소홀히 했다.

며칠 동안 이불킥에 몸부림을 치며 깨달은 건,

외적인 목표가 아닌 진심 어린 간절함이야 말로 가장 큰 힘이라는 것이다.


그 일들 이후로 나에게 ‘대충 하는 연습’은 존재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완성이 될 때까지,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파고드는 습관이 생겼다.


일단 연습일 때는 실수해도 좋다. 실패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니까.


하지만 무대 위에서는, 마이크 앞에서는 절대 그럴 수는 없다.

나는 새로운 일이 생길 때면 마음속으로 되뇐다.

실패를 충분히 하자, 그리고 실전에서는 겸손하게 최선을 다하자.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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