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옥상을 달려 서울로

by 성우 김태리

어렸을 때는 꿈이 이상하리만치 잘 맞았다.

먼 미래를 예언한다기보다, 그날의 내 심리상태나 다가올 일에 대한 내 기분을 맞추는 정도였다.

잦은 일도 아니었기에, 대개는 “그러려니”하고 넘기곤 했다.


2017년 초봄에 그런 꿈을 꾸었다.

내가 낯선 동네 옥상 위를 날 듯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몸이 너무 가벼워 살짝만 도움닫기를 해도 번개 같은 속도로 몸이 뛰쳐나갔다.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이 흐릿할 만큼 빨라서, 도무지 내 속도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힘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가뿐하고 즐거웠달까.

다만 눈앞에 다가오는 다음 건물 옥상이 눈앞으로 쏟아지듯 들어오는 게 부담이었다.

멈출 수 없었다. 멈추면 이대로 떨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추락보다 무서운 건 멈추는 그 순간일 것 같아서 나는 꿈에서 깰 때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눈을 뜨고는 ‘참 정신없는 꿈이었다’라고 넘겨버렸다.


그날 아침만 해도, 그게 무언가를 예고하고 있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가족 모두가 자신의 일을 하러 간 늦은 아침,

**몬을 켜고 들어가서 일자리를 뒤적이는 것이 백수의 오전 일과였다.

직장은 구해야 하는데, 성우의 꿈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부산에서는 성우 학원이 없었기에, 서울로 가야 한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래서 부산에 살고 있으면서도 서울 이모네 주소로 꾸준히 면접을 잡고 있었다.


이미 부산 알바에서도 몇 번 탈락하며 일머리가 없다는 걸 충분히 깨달은 나는,

돈이 적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려고 눈에 불을 켰다.

그렇게 거짓 주소로 또 하나의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평소라면 스팸이라고 받지 않는 모르는 번호의 전화를, 그날은 이상하게 꼭 받아야겠다 싶었다.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하는 거면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갑자기 덜컥 들었다.

하지만 망설일 수 없었다.

“오늘 **백화점 방송실에서 면접을 보는데 올 수 있겠습니까?”

갑자기? 부산에서 서울까지?

당황했지만 서둘러 기차표를 살펴봤다.

“아, 네. 면접은 몇 시인가요?”

가슴이 광속으로 두근거렸지만 태연하게 되물었다.

제발, 제발, 제발... 늦은 오후여라.

“4시까지 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기도가 통한 걸까. 서둘러 기차를 타면 갈 수 있다!!


전화를 끊자마자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대단한 준비는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준비된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짐을 챙겨 30분도 안돼 나는 기차역에 서있었다.

실제로도 심장이 떨려 심호흡이 크게 나왔지만, 머릿속에서도 마치 “헉헉”거리는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는 피식 웃었다.

나에게도 이런 빠릿빠릿한 면이 있구나.


기차가 속도를 올리자 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집들의 옥상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질주를 하던 아침의 그 꿈이 이런 일의 예감이었다는 걸.


면접장에 도착해서 읽기 실력을 보는 간단한 테스트를 거쳤다.

그리고 한숨 돌린 상태로 이모네 집으로 돌아가 몸을 눕혔다.


그리고 매번 떨어지기만 하던 내게 기적이 일어났다.

방송실 아르바이트에 합격한 것이다.


누군가는 별것도 아닌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달랐다.

그동안 나는 끊임없이 문을 두드렸고, 번번이 미끄러진 끝에 마침내 ‘열리는 문’을 만난 날이었다.

전화가 왔고,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 전화를 받았다.

내가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더라면 그 기회는 그냥 지나갔을 것이다.


우리는 종종 ‘큰 준비’가 되어야만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때로는 멈추지 않겠다는 작은 결심과 전화 한 통을 받을 용기만 있다면 충분한 것 같다.

그 꾸준한 마음 덕분에 나는 옥상을 달려, 드디어 서울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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