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눈이 온 날이었다.
드물게, 정말 드물게 내린 눈이었다.
은행에 입사한 지 겨우 세 달.
부모님이 할부로 사주신 출근용 정장과 구두값이 여전히 빠져나가던 시기였다.
아침의 시작은 매일 똑같았다.
하지만 그날은 출근을 위해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멀리서 들어오는 지하철의 불빛이 유독 눈부셨던 게 기억난다.
스크린 도어가 설치되기 전이라 가장 앞에 서 있던 내 두 눈에 빛이 날카롭게 박혔다.
그 눈부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뭔가 달라졌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회사로 향해야 하는데 도저히 그쪽으로 갈 수 없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골목으로 발길이 향했다.
단지 낯선 길을 걷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오르막길을 올라가는데 두 갈래로 갈라진 길이 나왔다.
그곳에 서서 치밀어 오르는 게 뭔지도 모른 채 눈물을 흘렸다.
눈물은 이내 소리로 새어 나왔고, 꺼억꺼억, 참으려 애쓰다가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울었다.
출근시간은 이미 지나 있었다.
출근한다고 아침 일찍 나갔던 딸이 한 시간 정도만에 다시 돌아오자 엄마가 놀랐다.
고개를 제대로 들기도 힘들어 엄마가 어떤 표정을 지으셨는지는 기억에 없다.
방으로 들어가서 계속 울었던 것 같다.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한 24살의 어른이.
철없던 나는 엄마한테 회사에 전화를 부탁했다.
“아파서 못 나간다고 해줘.”
그리고 또 부탁했다.
“회사... 그만두고 싶어...”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연봉도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누구보다도 아빠가 원했던 안정적인 직업이었다.
그게 문제였다. 내가 원했던 게 아니라는 것.
나는 성우가 되고 싶었다.
어렸을 적 TV속 외화를 보며 ‘저 외국사람은 한국말을 참 잘한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성우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저 TV속에서 내 목소리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네가 무슨 연기를 한다고.”
내가 연극영화과에 가고 싶다고 할 때마다 하던 아빠의 말.
나도 너무 확신이 없어서 그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
내가 겨우 언어를 구사하던 때부터, 성우들의 어린이 동화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질 정도로 들었고
(엄마가 테이프 속 성우 선생님들 목 아프다고 말려서 겨우 껐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 발표수업을 하려고 하면 형식을 꼭 연극으로 준비했으며,
중학교 때는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 극을 발표했었다.
고등학교 때는 어마어마한 덕질로 만화의 세계에 심취해 있었다.
동생이 자려고 자리를 잡으면 눕혀놓고 만화책을 낭독했다.
그리고 심사평을 재촉했다. “어때? 다 다른 사람 같아? 실감 나?”
착한 동생은 늘 잘한다고 해주었다.
카세트테이프에 내 목소리를 녹음해서 듣고, 다시 녹음하고 듣는 걸 반복했었다. 재밌었다.
MP3 대용량이 256MB 시절이던 이야기다.
대학생 때는 주말마다, TV 앞에 앉아 하루 12시간 이상
애니메이션 목소리 연기를 감상했다.
그때는 착한 동생도 화를 냈다.
(본인은 H.O.T를 봐야 했기 때문에... 하지만 만화에 빠진 덕후가 이겼다!!!)
고등학교 졸업식날에는
마이마이를 들고 다니며 빈 테이프에 친구들의 목소리를 녹음했었다.
“넌 무슨 일을 하고 싶어? 난 성우가 하고 싶어!”
라고 공공연히 밝혔다.
이렇게 하면 부끄러워서라도 성우를 꼭 해내겠지 싶었던 거 같다.
20년 정도의 인생을 종합해 봤을 때 나는 만화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말하기를, 그리고 '성우'를 좋아하는 게 확실했다.
그런데 그런 내가, 하루 종일 앉아 있는 직장에서 한 마디도 안 하고 일만 한다고?
점심시간에 겨우겨우 한 마디씩 하는 이 직장에서 평생을?
끔찍했던 거 같다.
지하철이 들어오는 승강장에서, 몸은 출근길에 있었지만 마음은 비명을 질러댔던 거다.
굶어 죽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
그날 눈 덮인 골목길에서 인생 처음으로, 스스로가 내린 첫 결정이었다.
지금도 나는 가끔 그때 그 길 위를 떠올린다.
이례적으로 부산에 눈이 내렸던 날, 낯선 골목, 두 갈래 길.
그날 나는 내 몸을 멈추고,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일생에서 가장 용기 냈던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때 그 결심 덕분에,
나는 용기와 추진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챙길 수 있었다.
지금 여러분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습니까?
물론 여러분께, 저처럼 회사를 때려치우라고 권장하지는 않습니다.
요즘같이 어려운 세상에...
(그 시절엔 면접자들 모두에게 5만 원씩을 교통비로 주던 마지막 시대였답니다.)
그저
‘아, 그래. 그때에는 이런 사람도 있었구나.’ 하고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